1999년 1월, 성황리에 결혼식을 잘 끝마치고 신혼여행을 왔다. 그런데 이틀 전의 결혼식을 후회한다.
이틀 전의 결혼식을 후회하는 1월의 신부는 우리 엄마이다.
90년대 말, 제주도 신혼여행이 유행했을 당시의 일이다. 엄마와 아빠는 성황리에 결혼식을 마치고 신혼여행을 떠났다. 신혼여행 사진촬영을 위해 엄마, 아빠 그리고 사진사 한 분이 동행했다. 꽁냥꽁냥 함께 말을 타고 제주 바다를 거닐며 둘은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그 평화를 깨는 바로 '갈치대첩'이 일어났다.
점심 식사 시간, 미리 예약해 둔 식당으로 갔다. 그런데 예약할 당시 주문했던 음식과는 다르게 갈치조림이 나와있었다. 식당 사장님의 착오로 인해 같은 가격의 다른 메뉴가 나왔던 것이다. 본인이 주문한 메뉴가 나오지 않았다며 갑자기 버럭 화를 내는 사진사와 그 옆에서 잔뜩 심통 난 아빠까지 엄마는 중간에서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다. 엄마가 예약을 한 게 아니었기에 어떤 식당인지도 모르고, 어떤 메뉴인지도 모른 채 갔는데 나온 음식 앞에서 화를 내며 자리를 벅차고 나가는 사진사와 그 옆에서 따라 심통을 내며 나가는 아빠. 덩그러니 남겨진 엄마는 그 덕에 갈치조림 한 입을 먹어보지도 못하고 아빠를 따라 식당을 나왔다.
'아니 배고픈데 그냥 아무거나 좀 먹지. 별 것도 아닌 일에 열을 내고 난리야....'
엄마는 마음속으로 이 말을 삼켰다.
생각보다 고단했던 일정 탓에 피곤하고 배가 고파 다들 예민한 상태였다. 엄마는 입맛만 다신 채 식당을 나와 아빠에게 화를 풀라며 회유했지만 아빠는 이미 화가 단단히 나버린 상태이다. 결국 빈속으로 영문도 모른 채 엄마는 화가 난 두 사람을 데리고 다음 일정을 소화했다. 제주도에 왔으니 배를 타는 건 기본이다. 엄마는 배에 올라탔고 아빠는 잔뜩 화가 난 상태였지만 이내 출발하며 급격하게 울렁이는 배에 엄마의 무릎을 베고 넋다운 되고 말았다.
"여보... 나 죽는다"
화가 나서 입도 뻥긋 안 하더니 배가 출발하자 어지럽고 속이 울렁인다며 어쩔 줄을 몰라하는 아빠였다. 화가 잔뜩 났지만 체통이고 뭐고 없다. 빈 속이라 더 울렁이는 속에 정신을 못 차리는 아빠를 보살피다 다시 육지로 내린 엄마는 멍하니 생각했다.
"아... 나 결혼 잘못했나 봐. 연상 아니고 연하 아니야?"
1966년 12월 생, 찰떡같이 믿고 결혼했던 엄마는 뒤통수를 거하게 맞았다. 아빠는 알고 보니 1965년 생이었고 출생신고를 늦게 해 한참 늦게 주민등록증에 생년월일이 올라와 있었던 거다. 7살 차이인줄 알고, 궁합도 사주도 다 보고 결혼했는데... 신혼여행 다녀오고 혼인 신고를 다 하고서야 아빠는 이제야 사실은 8살 차이란다. 나이도, 생일도, 띠도 모든 게 달라진 아빠 앞에서 엄마는 한번 더 생각했다.
"이거 사기결혼 아니야? 아... 나 결혼 잘못했나 봐"
신혼부터 지금까지 25년째 이어오는 집안의 월례행사가 있다. 특히 입조심, 그리고 휴일을 조심해야 한다. 가족 모두가 휴일을 맞은 날 다 같이 외식을 하거나 옹기종기 집안에 모여 앉아 특식을 먹은 날 월례행사가 열린다.
"여보 나 죽는다!!!!!!!"
아빠는 머리를 부여잡고 벌러덩 바닥에 누우며 죽는다고 소리친다. 신혼 초 월례행사임을 알 턱이 없는 엄마는 정말 무슨 큰 병이라고 걸렸을까 싶어 아빠를 지극히 간호했다. 그런데 아빠는 설레발을 치며 자신이 큰 병에 걸린 것 같다고 불안하게 말을 한다. 급기야 대학병원에 가서 MRI라도 찍어볼 거라고 밀어붙이는 아빠였다. 그렇게 아빠는 25년 전 지금도 물론 큰 값이 나가지만 그 당시 물가로는 더 비쌌던 MRI를 거액을 주고 찍었다. 뇌에 종양이라도 생긴 것 같다고 말했던 아빠의 말과는 달리 병원에서는 딱 한마디 한다.
아무 이상 없습니다.
한마디로 그냥 단순 소화불량이라는 것이다. 휴일이나 입방정을 떤 날에 아빠는 매달 월례행사로 꼭 체한다. 단순 소화불량으로 체한 거지만 아빠는 큰 병이라도 걸린 것 마냥 온갖 오두방정 설레발을 친다.
"내가 이렇게 해서 오래 살겠나"
"당신... 내가 죽으면"
"아이고 나 진짜 죽는다"
등등
매번 열리는 월례행사로 인지하고 엄마와 나는 매우 평온해진다. 약 먹고 체한 혈을 뚫어주는 지압을하고 하루 자고 일어나면 다 괜찮아진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아빠만 빼고 말이다.
매번 새로운 사건이 터지는 결혼은 현실이다. 이렇듯 결혼을 잘못했다는 엄마의 생각과는 달리 26년째 한 지붕 아래 함께 살아가는 엄마와 아빠이다. 물론 지지고 볶으며 말이다. 이 글은 글을 쓰는 딸에게 던진 엄마의 한마디로 시작된 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