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을 많이 타고 사람을 좋아하는 전형적인 막내상이었던 나에게 독립은 미치도록 잘 맞지 않았다.
하나부터 열까지 낯선 것들을 나 혼자 해내는 삶도 쉽지 않았고, 고된 하루를 보내고 집에 돌아왔을 때 온기 하나 없이 차가운 방바닥에 늘 불이 꺼져있는 어두운 집안은 나를 고립시키기에충분했다.
모든 것이 낯선 공간에서의 삶은 조금도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집에 와도 내 집이 아닌듯했다. 늘 늦은 시간에 귀가하느라 내 뒤에 누군가가 오는 인기척이 느껴지면 마음이 조마조마했고, 집에 들어와서도 혼자 지내다 보니 늘 불안했다. 행여나 집 밖 복도에서 누군가의 발소리가 쿵쾅쿵쾅 들리기라도 하면 괜스레 겁이 났다.
하루를 보내고 집에 들어왔을 때 늘 반겨주는 가족이 하루아침에 사라진 외로움은 말로 설명할 수 없을 만큼 고통스러웠다. 나는 어릴 적에 내가 학교 다녀오면 늘 맛있는 간식을 만들어 나를 기다려주셨던 엄마가 있었다. 그리고 학교에서 재미난 일이 있어도 속상한 일이 있어도 참새처럼 사소한 이야기들을 쉴 새 조잘대며 나의 하루를 나눴다.
그 당연했던 행복이 사라짐으로써 비로소 나는 서툰 어른이 되었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나는 쉽지 않은 대학 생활을 보냈다. 대학에 입학하니 지방출신인 친구들끼리만 놀고, 서울 친구들은 그들끼리만 노는 은근한 문화가 있었다.
그 속에서 함께 있어도 차별받고 외로운 느낌을 받았다. 서울에서 마음을 나눌만한 친구가 한 명도 없었고, 매일같이 마음은 힘들었다.
그래서 도망치듯 한 학기만에 휴학을 결정하고 다시 본가로 돌아왔다.
위로받고 싶어 온 집이었다.
다시금 가족의 따스함을 느끼고 싶었다.
나는 기독교계열의대학교를 다녔다. 그래서 매주 일주일에 한 번씩 '채플' 예배 수업을 듣는다. 기본적으로 기독교 계열학교 라고 해서 학생들이 모두 기독교 종교를 갖고 있는 건 아니다. 기독교뿐만 아니라 나처럼 무교인 학생들도 많고 다른 종교를 가진 학생들도 많기에 목사님의 설교를 귀 기울여 듣지 않는 학생들이 대부분이다.
나 또한 관심이 없는 이야기 여서 인지, 귀 기울이려고 노력해도 목사님의 설교에는 자꾸만 눈이 감긴다.
하지만, 딱 하나 이 이야기가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가족 간의 대화와 위로는 바깥에서의 어떠한 고난과 역경도 다 이겨낼 수 있게 하는 엄청난 힘을 가진 행위이다.
목사님은 가족들과 오늘 아침 다 같이 식사하고 온 사람?이라고 물으셨다.
아무도 손들지 않았다.
나이를 먹을수록 가족들과 다 같이 얼굴을 마주 보고 앉아 식사를 하는 빈도수가 점점 줄어들기 마련이다. 바쁘고 시간이 안 맞아서, 독립을 해서 등등 다양한 이유로 가족들과 함께하는 시간은 줄어든다.
하지만, 마주 앉아 식사를 함께 하며 오가는 가족들과의 대화는 위로가 되고 그로 인해 바깥에서의 어떠한 힘든 상황도 가족들과 함께 하는 한 순간으로 인해 다 이겨낼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는 그 말이 참 공감됐다. 어릴 적에 늘 집에 오면 엄마가 계셨고 가족들과 함께하는 그 순간이 여전히 내 기억 속에 따뜻한 순간으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순간을 다시금 느끼고 싶고 내가 받았던 상처들을 치유하기 위해 다시 온 본가였다. 그런데 내 바람과는 달리 나는 본가에 다시 돌아온 걸 미치도록 후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