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찻집에 문을 열고 한 여자가 들어온다. 햇빛이 뭉근하게 스며드는 창가 자리에 앉아있는 남자가 보인다. 잔뜩 긴장을 한 채 조금은 굳은 얼굴로 안절부절못하던 남자는 찻집 문이 열리는 소리에 입구를 응시했다.
단발머리에 단아한여자, 그녀에게서 후광이 비치는 듯 이 공간에선 그 어떤 누구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남자에겐 오로지 그녀와 둘 뿐인 것만 같다. 서서히 그에게로 다가서는 그녀이다.
쿵. 쿵. 쿵
심장이 요동치기 시작하는 남자이다.
‘제발 이 여자가 내 선 자리 상대이기를’
남자의 간절한 바람이 통한 듯 그녀는 점점 그에게로 다가온다. 남자는 앞서 말했듯 첫눈에 반했고 자리에 그녀가 앉자마자 딱 한마디로 포문을 열었다.
“저랑 결혼합시다.”
이게 웬 생뚱맞은 프러포즈란 말인가? 태어나서 처음 본 여자에게 만나자마자 엑셀을 시속 120km로 밟아버린 이 로맨스 영화의 주인공은 우리 아빠이다. 그렇게 아빠는 35년 인생, 첫눈에 반한 여자를 만나 3개월도 채 되지 않아 결혼에 골인했고 토끼 같은 두 딸을 낳아 올해로 결혼 26년 차를 맞이했다.
이 결혼이 성사될 수 있었던 건 단 하나, 아빠의 적극적인 구애뿐이었다.
참하고 예뻤던 스물일곱의 엄마에겐 많은 선자리들이 들어왔다. 1990년대 말, 여자 스물일곱의 나이면 결혼이 딱 적절했던 터라 엄마는 선자리를 마다하지 않았다. 그 과정에서 엄마가 만난 남자는
지루한 남자, 재는 남자, 꼴값 떠는 남자, 책임감 없는 남자, 집안에 1년에 제사만 12번 있는 남자 등등...(아빠의 멘탈을 위해 대충 이 정도에서 줄이겠다.)
이미 엄마를 지나친 아웃된 남자들이 많았다. 외모, 직업, 성격(책임감), 경제력등등 결혼은 생각보다 따져야 할 조건이 많다. 다양한 이유로 결혼에는 적합하지 않다는 엄마의 판단에 의해 거절되어 왔던 수많은 남자를 누르고 당당히 아빠는 엄마의 옆자리를 차지했다.
첫 만남, 아빠는 뜨거운 유자차를 주문했고땀을 뻘뻘 흘리며 긴장한 듯 유자차를 여러 차례 삼켰다.
'그냥 시원한 주스나 시키지'
이게 엄마의 속마음이었다. 아빠는 자신보다 8살이나 어린 엄마의 마음에 서툴고 순수한 모습을 보여주며 예상외로 모성애를 자극한 걸까?
아빠는 매번 결혼하자는 말로 엄마를 찜해두고 일사천리로 결혼을 밀어붙였다. 아주 적극적이고 꽤 전략적이게 말이다.지금의 아빠에게선 전략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다. 때론 엄마에게 의지하고 때론 해야 하는 일을 전략 없이 경상도 남자답게 그냥 냅다 밀어붙이곤 한다. 그런데 26년 전의 아빠는 일명 '당신이 날 가져야 하는 이유'라는 작전을 게시했다. 장점만 가득히 엄마에게 어필하고 단점은 없다는 듯 은폐하는 고도의 전략으로 아빠는 승부를 봤다. 그리고 만난 지 무려 3개월 도 채 되지 않은 시점에 아빠는 결혼식장에 입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