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주나라 Jul 11. 2024

공주님의 밥상 차리기 대장정

내 손으로 요리하기로 결심한 이유

나는 공주님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나는 공주처럼 컸다.


딸 둘 있는 집안에 막내로 태어나서 고생 한번 하지 않고, 오냐오냐 컸다.





태어나보니 우리 집은 아파트에 살고 있었고, 대단한 부자는 아니었지만 부모님의 노력으로 감사하게도 자식인 나는 경제적으로 그리 큰 부족함을 느끼지 못하고 컸다.


엄마는 허약체질인 아빠와 결혼함으로 인해 자식인 두 딸들에게 그 영향이 적게 가길 바라며 몸에 좋은 것만 늘 직접 만들어 먹이셨다.


남들 흔히 다 가는 카페에도 가본 적이 몇 번 없었고, 햄버거 피자 치킨 등등 배달 음식을 시켜 먹은 기억은 아예 없다. 솔직하게 말해서 어릴 적 중국집 배달 몇 번이 다였다. 그마저도 손에 꼽을 정도....






또한 아빠는 우리 집 여자들을 참 귀하게 여기셨고, 집안에서 힘쓰는 힘든 일과 비교적 더러운 화장실이나 음식물쓰레기 등등의 청소는 모조리 아빠가 도맡아 하셨다. 딸들 고생시키는 일은 죽었다 깨어나도 못 보셨다.


그리고 엄마는 우리 자매가 초등학생 때까지는 가정주부로 일하셔서 늘 내가 집에 오는 시간에 맞춰 삼시 세 끼는 물론 건강한 간식까지 만들어 집에서 기다리셨다. 그리고 내가 고학년이 되자 엄마는 다시 엄마의 삶을 찾기 위해 일을 하며 워킹맘 생활을 하셨지만 그때에도 변함없이 우리 가족의 삼시 세 끼를 한 끼도 거르지 않고 꼬박꼬박 챙겨주셨다.


그랬던 터라 나는 손하나 까닥하지 않고 편안한 삶을 살아왔다.

이 편안한 삶이 영원할 것이라고 착각한 채로 말이다.


















그리고 나는 스무 살이 된 후, 자취를 시작했다.

나는 자취를 시작하고 하루아침에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었다.


공주의 삶에서 평민 아니 노비로 한순간에 전락하고 말았다. 사실 내가 나를 그렇게 만든 셈이었다.






난 요리에 소질 없어.

늘 내가 입에 달고 살았던 말이다. 내가 고등학생 때 타지 대학 진학을 꿈꾸자 엄마는 그때부터 내게 요리를 조금씩 알려주려 하셨다.


"떡국 한번 끓여보자."

"떡볶이 한번 만들어보자."


그런데 나는 굳이 지금 내가 그걸 해야 하나? 하는 오만한 생각에 매번 거절했다. 그리고 엄마의 요리를 도와주는 일이 어릴 땐 즐거웠지만 내가 해야 할 나이가 될수록 세상에서 가장 귀찮은 일이 되었다.


그런데 엄마는 포기하지 않으셨다. 요리연습을 하느냐 마느냐로 엄마와 트러블이 생겼었고 나는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았다.





"매일 배달시키고 외식할 순 없어. 너 혼자 살면 먹거리 해결하는 게 얼마나 힘든 줄 알아? 안 배워 가면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 혼자서 만들어 먹을 줄 알아야 해!"


엄마의 주장이었다.(사실 다 맞는 말이었다)


하지만, 그 당시의 나는 눈곱만큼도 이해하지 못했고, 아직 혼자인 환경에 내던져지지 않아 체감하지 못했다.


"엄마, 나는 돈을 많이 벌 거야. 내가 좋아하는 일이 곧 잘하는 일이니까. 난 돈 많이 벌어서 요리해 주시는 분 부르면서 살면 되잖아. 엄마처럼 돈 있어도 안 쓰고 직접 요리하면서 힘들게 살고 싶지 않아."


"그래 니 똑똑다!"

그렇게 결국 사건은 종결되었다.

엄마는 내 고집에 두 손 두 발 다 들고 말았다.














그렇게 잘난 척을 해대던 스무 살 성인이 된 나의 능력치는 다음과 같았다.

생활력 : 꽝
요리 경력 : 무
할 줄 아는 요리 : 라면 끝
할 줄 아는 집안일 : 설거지, 방청소 끝
자취 경력 : 1년
최근에 가장 많이 먹은 음식 : 마라탕

엄마가 우려했던 일이 발생했다. 나는 자취 1년 내내 라면과 즉석식품 조리 이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고, 냉동실에 있던 엄마 음식 파먹기가 끝이 나면 또 엄마에게 반찬을 보내달라, 국을 보내달라... 를 반복했다.


그리고 대학 학교생활을 했던 터라 점심은 사 먹는 일이 허다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이 생활이 질리는 순간이 왔다.


더 이상 바깥음식을 먹고 싶지 않았다. 따뜻한 집밥이 먹고 싶었다.



학교 생활을 할 때 주로 먹었던 음식은 10000원 이하의 저렴한 음식들이었다. 나름 돈낭비를 하지 않으려 상한선을 직접 정했다.


그래서 국밥, 김밥, 순두부찌개, 마라탕, 규동 등등을 번갈아 가며 먹었다.





<혼밥 할 때 주로 먹었던 메뉴>



<단짠단짠 디저트>


<치킨, 피자, 햄버거>



<그리고 고기, 고기, 또 고기>



<마라탕, 마라탕, 마라탕....>


<술과 단짠 단짠 메뉴들>

자취 1년째 몸이 드디어 망가지기 시작했다.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었다. 자취를 시작하고 처음 저런 음식을 사 먹을 때는 한없이 자극적이 게만 느껴졌던 음식들이 이제는 내 입에 딱 맞는 음식이 되고 말았다.


달고, 짜고, 맵고에 어느새 길들여졌다. 그리고 그보다 더 자극적인 맛을 원한다.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 돈만 있다고 모두 해결되는 건 아니구나. 이렇게 살면 더 이상 안 되겠다. 40대쯤 되면 망해버린 내 식습관 때문에 무슨 병이라도 걸려 죽겠구나.












더 이상은 이렇게 살 순 없어!!!


내가 요리를 하고자 하는 의지가 없었던 가장 큰 이유는 타지에서 학기 동안 학교 생활을 해왔지만 한 학기하고 1년을 휴학하고 본가에서 지냈다. 그리고 복학 후 두 학기를 연속으로 다녔다. 하지만 그 마저도 방학인 두 달 동안은 본가에 내려와 생활했다.


즉 나는

4개월 타지생활 ->1년 본가->4개월 타지생활->2달 본가->4개월 타지생활


틈만 나면 본가에서 생활해서 요리를 해 먹을 이유를 느끼지 못한 것이다. 늘 편하게 살았던 내 인생에 성인이 되어서도 본가라는 찬스를 줄곧 써왔다. 홀로서기를 하지 못했다.


그러다 이번 학기가 끝나고 언제까지 엄마 주머니 속에 들어가 사는 아기 캥거루가 될 수 없기에, 여름방학이 시작되며 나 스스로를 환경에 내던지기로 결심했다. 본가에 내려가지 않았고, 내 자취집에 머물며 알아서 환경에 내던져지니 요리하기 시작했다.


돌이켜 보면 나는 핑계가 많았다. 자취하다 보니 냉장고가 작아서, 싱크대가 좁아서, 시간이 없어서 등등....


하지만 이제는 방학도 했겠다. 차고 넘치는 게 시간이다.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공주님의 삶을 살았던 내가,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히며 살았던 내가, 내 손으로 건강한 한 끼 밥상 차리기의 대장정이 시작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