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토마토 주스
그래서 자취하면서도 끝까지 포기할 수 없었던 것은 내 습관 같은 '과일'이었다.
엄마는 이런 나를 잘 알기에 늘 계절별로 자취방에 과일을 택배로 보내주셨다.
사과, 오렌지, 참외, 키위 등등
최대한 빨리
내 자취방 냉장고는 오래된 편이라 성능이 그리 좋지 못했다.
신선한 것도 그 냉장고에 들어가는 순간 금방 상해버리는 매직을 보여주는 어마무시한 냉장고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냉장고가 아예 없는 것보단 낫다는 마음으로 사용해 왔다.
그리고, 택배로 배송 오는 과일들은 대부분 대용량이다. kg 단위로 배송된다.
(10알, 15알로 싼 가격에 배송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래서 다 먹지 못하고 빨리 상할 위험성이 높기에 매일 과일을 부지런히 먹어야만 한다.
이번에 우리 집에 배달온 과일이자 채소는 토마토이다.
비닐봉지 세 개에 토마토를 소분해서 냉장고에 넣어두었다.
그런데 빌어먹을... 토마토를 먹을 시간이 없었다.
나는 연기과에 재학 중인 대학생이다.
연기과는 매 학기 말마다 정기공연을 올린다.
그래서 주로 중간고사보다 기말고사 기간이 더 미친 듯이 바쁜데, 아예 집에 들어오지 못하는 날도 있다.
공연이 임박해질수록 텐투텐은 일상이 되고, 그보다 더할 때도 있다. 아침 7시에 나가 막차를 타고 집에 들어오는 경우가 태반이다. 그러니까 자취방은 아침만 먹고 나가고 잠만 자는 공간이 될 때가 많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삼시세끼 식후 땡 과일 루틴은 지켜지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냉장고 속 토마토가 썩어가고 있는 걸 나는 까맣게 잊은 채 공연이 끝나고 방학을 맞이했다.
여름 방학을 하고, 그제야 열어본 냉장고에서는 토마토들이 살려달라고 외치고 있었다.
이런 젠장... 토마토는 꼭지 부분 주위로 썩어가고 있었다.
어떤 것은 썩어가다 못해 아주 문드러져 아예 먹지 못하고 버려야 하는 것도 있었다.
하지만 이대로 이 토마토들을 모두 버릴 순 없었다.
썩어가는 토마토 재생 프로젝트를 시작하지!
토마토를 살리는 아주 간단한 방법이다.
주로 한번에 토마토 4개를 꺼낸다. 상한 부분이 많거나, 크기가 작다면 사진처럼 6개 꺼내도 된다.
저렇게 꼭지 부분을 위주로 썩은 부위를 과감하게 칼로 잘라내고 멀쩡한 부분만 남긴다.
그리고 믹서기를 꺼낸다.
믹서기에 한입 크기로 잘게 썬 토마토들을 잘 담는다.
모두들 대충 감이 왔는가?
나는 토마토주스를 만들 것이다.
믹서기에 무언가를 직접 갈아보는 건 처음이라 떨렸다.
1. 토마토를 깨끗하게 세척한 후 꼭지 부분을 썰어낸다.
2. 토마토를 작게 한입크기로 모두 자른다.
3. 믹서기에 담는다. (주로 믹서기에 무언가를 갈 때는 3분의 2 정도만 담는다. 너무 욕심내서 많이 담지 않는다.)
4. 생수를 토마토 양의 반 정도만 넣어준다.(묽은 토마토 주스를 원한다면!)
(*만약 토마토를 원액에 가깝게 마시고 싶다면 물을 더 적게 넣으면 된다. 토마토 양의 3분의 1 정도)
5. 꿀을 대충 눈대중으로 서너 번 짜준다. (*기호에 맞게 더 달달하게 먹고 싶다면 더 많이 넣어도 된다.)
6. 믹서기에 토마토의 형체가 다 없어질 정도로 곱게 갈아준다.
완성!
+) 추가적으로 토마토 껍질이 씹히는 게 싫다면 믹서기에 갈고 난 후, 채에 한번 거르고 마시면 목 넘김에 걸리는 것이 없어 좋다. 하지만 나는 껍질과 토마토 씨가 씹히는 게 나쁘지 않아 채에 한번 더 거르는 과정을 거치지 않는다. 귀찮기도 하고...ㅎㅎ
나는 믹서기를 처음 써보는 터라 사용 방법을 잘 몰랐다.
믹서기의 본체와 합체시킨 후, 믹서 버튼을 누르면 되지 않을까? 하고 예상한 후 콘센트에 전선을 꽂자마자 믹서기가 열심히 작동되기 시작해 깜짝 놀랐다.
이 믹서기는 버튼이 장식이었던 것이다.
아무리 버튼을 눌러대도 믹서기 작동이 멈추지 않아 전선을 뽑아 강제 종료 시켰다.
알고 보니 이 믹서기는 본체와 믹서기 통을 연결시키는 순간 작동이 시작되고, 해체하면 믹서기 작동이 끝나는 그런 시스템이었다.
((신문물 영접에 살짝 쫄았었다))
이렇게 하면 지금 당장 마실 토마토 주스 한 컵과 내일 마실 양까지 완성된다.
그래서 나머지 한잔은 텀블러에 넣어 냉장고에 보관해 둔다.
매일 아침마다 건강하게 한 컵 마시고 시작하면 기분이 꽤나 상쾌하다.
토마토주스는 어떤 것과 먹어도 꽤 잘 어울리지만, 프라이팬에 식빵 하나 바삭하게 딱 구워 꿀을 발라 함께 먹으면 더욱 맛있다.
금방 줄어드는 토마토 양
내가 토마토를 먹는 속도보다 토마토가 썩어가는 속도가 빠를 때는 토마토를 그냥 먹는 것보다 주스로 갈아 마시는 편이 훨씬 더 빠르다.
내가 삼시세끼 밥을 먹고 후식으로 토마토를 먹는다고 한다면 하루에 먹을 수 있는 토마토 개수는 단 세 개다.
그런데, 주스로 갈아 마신다면 한 번에 최대 6개를 갈아 단 두 번 마시면 6개가 해결된다.
그것도 아주 맛 좋게! 말이다.
토마토가 썩어가기 시작하면 아무리 썩은 부분을 잘라내고 먹는다고 하더라도 식감이 흐물거릴 가능성이 높다. 좋지 않은 식감으로 토마토를 먹을 바엔 식감을 느끼지 않고 마시는 편이 훨씬 좋다.
번외
나는 토마토 주스 말고도 시도해 본 방법이 있었다.
'토달볶'이라고도 불리는 이 음식의 레시피도 간단하다.
내 이전 글에 소개된 스크램블에그와 토마토의 결합이니 말이다.
토달볶은 이번에 썩어가는 토마토를 심폐소생술 하기 위해 태어나서 처음으로 먹어보게 된 요리였다.
간을 잘 맞추면 꽤나 나쁘지 않은 맛이고, 프라이팬에 볶아서 다시 태어나는 토마토의 따뜻하고 흐물거리는 맛도 나는 개인적으로 괜찮았다. 아침에 간단히 먹기에 좋다. 영양에도 좋은 편이고...
그런데, 내가 만든 이 토달볶의 비밀이 하나 있다.
앗... 아침에 급하게 만들어 먹느라 토마토를 세척하지 않고 그냥 만들었다.
그걸 반쯤 먹고 나서 알게 되었다.
이런... 우웨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