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이 글을 읽고 있다면, 아마 곧 몽골로 떠날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떠나는 이유가 뚜렷하지 않아도 괜찮다.
그저 지쳐서 쉬고 싶거나, 아무 말 없이 멀리 가고 싶거나,
그냥 잠시 멈춰 서고 싶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나 역시 그랬다.
거창한 계획도, 대단한 각오도 없이 떠났지만,
그 여행은 내 삶의 리듬을 완전히 바꿔 놓았다.
첫날, 거친 도로 위를 달리던 푸르공의 진동이
몸을 흔들고 마음을 흔들었다.
표지판 하나 없는 초원을 기사님은 감각으로 달렸고,
우리는 네비게이션 대신 하늘과 지평선을 믿는 법을 배웠다.
정해진 길은 없었다.
우리가 가는 길이 곧 길이 되었고,
그 단순한 진실이 내게 이상하게 큰 위로가 되었다.
게르의 밤은 불편했다.
전기는 일찍 끊기고, 바람은 천장을 흔들었다.
하지만 그 불편함 덕에 나는 오히려 ‘살아 있음’을 느꼈다.
찬물에 닿은 피부가 온도를 기억했고,
어둠 속에서 별빛은 더 가까이 다가왔다.
여행 중에 나는 자주 하늘을 올려다봤다.
북두칠성의 자루 끝을 따라 북극성을 찾으며
길을 잃는다는 건 어쩌면 새로운 길을 그린다는 뜻이라는 걸 배웠다.
고비의 모래언덕에서는 한참을 망설였다.
내려가고 싶었지만 겁이 났다.
결국 친구의 썰매를 빌려 활강했다.
짧은 그 미끄러짐 속에서 알았다.
용기란 두려움이 없는 게 아니라,
두려움을 안고도 몸을 움직이는 마음이라는 걸.
그래서 당신도 망설이는 순간이 오면,
그냥 미끄러져도 괜찮다.
유목민의 게르에서는 뜻밖의 공연이 열렸다.
몽골 전통악기를 상상했는데,
울려 퍼진 건 드럼 소리와 ‘강남스타일’이었다.
낯선 비트에 모두가 박수를 치고 웃었다.
나는 프랑스 여자와 손을 잡고 춤을 췄다.
삶은 계획이 아니라,
그때그때 주어진 리듬에 몸을 맡기는 일이라는 걸
그날 나는 배웠다.
만약 당신의 여행에서도 예기치 않은 일이 벌어진다면
당황하지 말고, 그냥 그 장면 속에서 춤추길 바란다.
테를지의 숲길을 말을 타고 달릴 때,
햇살이 나뭇잎 사이로 쏟아지고,
공기는 시원하고 마음은 따뜻했다.
그때 나는 깨달았다.
사진보다 오래 남는 건,
눈으로 본 풍경이 아니라
그 순간의 온도와 그리고 숨결이라는 걸.
그러니 당신도 풍경을 찍으려 카메라를 들 때,
가끔은 렌즈를 내리고 오감으로 느끼길 바란다.
그 장면은 평생 당신 안에 남을 테니까.
여행 막바지에 따뜻한 물이 나오는 게르에 도착했다.
이틀 만에 샤워를 하며
나는 기술이 주는 따뜻함에도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
몽골은 내게 ‘자연이 전부는 아니다’라는 걸 가르쳐줬다.
불편함이 있었기에 편안함의 가치를 배웠다.
문명과 자연은 서로를 대립시키지 않는다.
그저 같은 인간을 완성하는 다른 얼굴일 뿐이었다.
울란바토르로 돌아오자, 길 위의 사람들이 낯설었다.
그동안 나는 발굽 자국과 모래길만 보며 달려왔으니까.
높은 건물과 불빛이 안도감을 주었지만,
골목 한쪽에서 트렁크를 열고 고기를 손질하던 남자의 모습이 오래 남았다.
평화로움과 생의 날것이 함께 존재하는 나라.
그게 몽골의 진짜 얼굴이었다.
바쁘게 살다 보면, 멈추는 일이 쉽지 않다.
그럴 때 나는 종종 떠올린다.
멍하니 바깥 풍경을 바라보는 몽골에서의 나를.
그리고 문득 생각했다.
누구에게나 한 번쯤은 이런 여행이 필요하다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하루,
끝없이 같은 풍경이 이어지는 시간 속에서
비로소 자신을 들여다보게 되니까.
그래서 이제는 안다.
여행은 끝났지만, 몽골은 여전히 내 안에 머물러 있다는 것을.
삶의 속도가 너무 빨라질 때마다
그곳의 바람이 나를 잠시 멈춰 세운다.
조용히 숨을 고르고 다시 걸음을 내딛을 수 있게.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당신도 언젠가,
자신만의 몽골을 만나길 바란다.
세상의 속도보다 나의 속도를 따르며,
멈춰 설 줄 아는 용기를 배울 수 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