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ir of the dog

어쩌다, 해방촌

by 조헌주

하루 일과를 마치고 그냥 집에 가기는 적적한 날, 친구를 불러 내기도 그렇고 혼자 부담 없이 갈 수 있는 그런 장소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일본 드라마 <심야식당>처럼. “하루가 저물고 모두가 귀가할 무렵 나의 하루가 시작된다.”라고 말하는 진실한 주인장이 있는 곳이면 더더욱 좋고. 그곳이 편안한 바(bar) 라면 늦은 시간에도 갈 수 있고, 집과 가까우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 그런데 집 앞에 정말 그런 바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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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촌에 있는 바의 역사를 읊어볼까. 내가 술맛, 아니 맥주 맛을 알게 된 것은 지금으로부터 10여 년 전이다. 애초부터 ‘술은 취하려고 마시는 거야.’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친구들은 술맛을 느낀다고 하면 이해를 하지 못한다. 하지만 나는 맛을 느끼기 위해 맥주를 마신다. 지금은 편의점에서도 다양한 맥주의 맛을 볼 수 있지만 그때만 해도 맥주가 다양하지 않았다. 이곳이 이태원 근처였기에 그나마 바에 가면 특이한 맥주들을 만날 수 있었다. 10년 전에 갔던 독일 출장에서 난 맥주의 맛을 알게 되었고, 그때부터 바에 가면 다양한 종류의 맥주를 탐닉하게 됐다.


그때만 해도 해방촌에는 있는 바는 필리스와 오렌지트리가 전부였다고 도 할 수 있다. 그 이후 하나씩 바가 생기기 시작했다. 필리스는 아직도 건재하고, 오렌지트리는 없어졌다. 두 바만 있을 때는 해방촌 거리도 조용했었다. 상업지구가 아닌 주거지구의 성격이 강했기에 10시만 되어도 거리는 조용하고 어두웠다. 지금은 오히려 밤에 많은 사람들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아기자기한 바들이 한참 생기기 시작할 때, 난 새로운 바에 가서 다양한 맥주 맛을 보는 것을 서슴지 않았다. 그리고 분위기가 맞는다는 생각이 들면 단골이 되었다. 애정을 가지고 드나들었던 바가 없어질 때는 속상했다. 그래도 그 자리엔 계속 새로운 것들이 들어찼다. 하지만 예전만큼 정이 가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공간은 주인의 성향을 고스란히 나타낸다. 주인이 편안하면 그곳은 또 가고 싶은 곳이 되고, 주인이 별로면 한 번 가고 발길을 끊는다. 그렇게 바를 하나 가도 분위기와 자리 등을 체크하는 그런 예민함을 발휘하는 내가 편안하게 갈 수 있는 그런 바와 주인을 만났다. 그리고 다행히 그 바는 없어지지 않고 꽤 오랫동안 자리하고 있다. 남의 가게가 이렇게 나의 삶에 영향을 줄 줄이야….


그 바의 이름은 hair of the dog이다. 이름도 특이한데, 간판에 강아지 한 마리만 그려져 있어 궁금증을 자아냈던 곳. 직역하면 ‘개의 털’이기에, 그 이름이 바의 이름으로 적당할까 생각할 수 있으나 hair of the dog은 해장술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이미 알고 있었다면 당신은 술 천재로 인정한다. 먼 옛날 ‘개에 물리면 그 개의 털을 상처에다 대면 낫는다.’는 미신이 있었는데, ‘독에는 독으로 다스린다.’라는 뜻으로 해장술인 것이다. ‘술은 술로 깬다.’는 그런 의미겠지. 그건 바로 술을 아침까지 계속 마신다는 뜻이다. 바 주인 입장에선 더없이 좋겠지. 이런 뜻을 알고 나니 왜 이름이 해장술인지 이해가 간다.


hair of the dog이 생기고 나서 언제든 술을 마시고 싶을 땐, 그리고 이야기를 나누고 싶을 땐 부담 없이 그곳으로 간다. 거기엔 <심야식당>의 주인장 버금가는 주인장 엠제이가 있었기 기도 하다. 혼자 와도 어색하지 않은 곳. 그리고 이곳에 있다 보면 모르는 사람도 친구가 된다. 주인장의 역할 때문이기도 하고, 그 분위기로 손님들이 앞장서서 경계를 허물게 되는 것이기도 하다. 이 작은 공간에서 해방촌에 사는 각 국적의 사람들을 만난다.


이곳은 해방촌의 사랑방이다. 이곳에 오면 해방촌의 소식들을 다 들을 수 있다. 이곳에서 난 궁금했던 앞집 남자에 대한 소식을 전해 듣기도 했고, 혼자 왔던 친구에게 말을 걸어 친한 친구가 되었다. 그리고 이곳에서 가장 통쾌했던 만남은 구 남자 친구를 우연히 만났던 일이다. 어떻게든 말을 붙이며 대화를 하려고 했던 구 남자 친구에게 아주 차갑고 냉정한 태도로 무시를 해 주었다. 그 짜릿한 기분은 경험해 본 사람만이 안다.

요즘 난 건강을 위해 술을 잘 마시지는 않아도, hair of dog은 오래오래 해방촌에서 잘 버텨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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