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해방촌
어쩌다 오게 된 해방촌이었는데, 이 동네를 좋아하게 됐다. 그리고 이곳에 자리를 잡고 산 지도 오랜 시간이 지났다. 나랑 맞는 장소에서 살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만약 나랑 맞지 않는 곳이었다면 어떻게든 난 이사를 가려고 시도를 했을 것이다. 해방촌의 많은 변화와 함께 나도 많은 일들을 겪었고, 다양한 경험을 했다.
깊은 외로움을 느꼈던 적이 있다. 누군가와 함께 하면 괜찮아지겠지 생각했고, 의지했다. 그렇다고 외로움이 해소되는 건 아니었다. 그저 나 자체로 충만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건강하고 혼자여도 행복할 때, 누군가와 함께여도 행복한 것이었다. 그저 나 자체로 충만하고 행복한 상태를 만들기로 했다.
어느 여름날, 선셋이 지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갑자기 걷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운동화를 신고 산책에 나섰다. 나의 동네 뒷산은 남산이었기에 난 남산을 올랐다. 30분 정도를 걸어 올랐을까 서울 시내 경치를 볼 수 있는 장소가 나왔다. (이곳은 산책할 때 내가 제일 좋아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선셋 시간에 맞춰 가면 서울 타워와 함께 멋진 사진을 찍을 수 있다.) 그런데 하늘이 정말 환상적이었다. 다행히 휴대폰을 가지고 가서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한참을 넋을 놓고 하늘을 바라봤다. 그리고 벅참을 느꼈다.
그다음 날이 되었고, 같은 시간이 다가올 무렵 난 갑자기 궁금해졌다. 하늘이 어제와 같은 색깔일까. 순전히 그 호기심 하나로 난 또 산에 올랐고 전날과는 다른 색의 하늘을 볼 수 있었다. 어제의 하늘이 진한 주황빛이었다면 오늘의 하늘은 옅은 분홍색과 보랏빛을 띠고 있었다. 그리고 같은 시간에 같은 각도로 사진을 찍었다. 한눈에 그 사진들을 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인스타그램에 올리기 시작했고, 그렇게 계속 50일을 산책을 하며 기록을 했다.
걷는 시간을 따로 만들어 산책을 하면서 많은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전에 보이지 않던 자연이 보이기 시작하고, 자연의 아름다움을 느끼며 행복해하는 나를 발견한다. 그리고 산책을 하다가 고민하고 있는 것들에 대한 해답이 보이기도 했다. 예전에는 심심해서 이어폰을 끼고 뭘 들으면서 다녔다면 지금은 온전히 나에게 집중하며 걷고 있다. 생각지도 못한 뜻밖의 선물을 매일 받는 기분이다.
해리슨은 “한 시간 동안의 사색은 착한 일을 하지 않은 일주일 동안의 기도보다 귀중하다.”라고 말했다. 많은 성공한 사람들과 작가들이 산책하는 시간을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고 말한다. 걷는 시간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아 보여도 이 시간을 통해 아주 중요한 삶의 가치를 얻게 되는 것 같기도 하다.
한 가지를 목표로 했던 일을 지속하면서 어떤 성취감을 느끼면 다른 것에도 도전하고 싶은 열망이 든다. 매일 남산을 산책하는 건 나의 습관으로 자리 잡았고, 난 한 달에 한 가지씩 작은 습관을 시도해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처음엔 아침에 일어나서 스트레칭을 10분 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스트레칭을 한 달을 하고, 그다음엔 명상, 그리고 하루에 한 권 책 읽기, 유산소 운동 등 하나씩 도전을 하다 보니 나만의 하루 루틴이 완성되고 있었다. 그렇게 하나씩 좋아하는 것들로 하루를 채우다 보니 좀 더 시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일어나는 시간을 5분씩 당겼다. 지금은 새벽 4시 30분에 일어나고 있고,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70일째 지속하고 있는 중이다. 이 루틴은 평생을 유지해 보려고 한다. 요즘 전에는 하지 않았던 것들을 하는 나를 발견하고, 나의 생각과 행동들이 바뀌는 것을 경험한다.
프리랜서로 오랜 시간을 살아왔기에 시간을 내가 잘 관리하지 않으면 그냥 버려진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시간을 관리하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나를 아끼고 사랑하면,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시간을 채우게 되고, 그럼 시간은 알아서 관리가 된다. 이제는 나를 힘들게 하는 것들에 신경 쓰지 않고, 좋은 사람들만 만나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렇게 내가 좋아하는 장소에서 난 오늘도 좋아하는 일들을 하며 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그곳이 해방촌이라 참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