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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승미 Jan 04. 2023

육아는 마치 겨울바다

혹독하지만 아름다워.


한여름의 열기가 식지 않은 밤.

아기가 잠들면 슬금슬금 방에서 나와

끈끈한 몸을 씻고,

냉장고에서 차가운 맥주를 꺼내

TV 앞에 웅크리고 앉았다.

<마녀사냥>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프로그램이었다.

사연자가 미궁에 빠진 연애 사연을 보내면

신동엽, 성시경, 허지웅, 유세윤이 상담해준다.

이런 프로그램은 결혼 후 보는 게 훨씬 재밌다.

애끓는 연애사란,

내가 당사자일 땐 지옥의 진창에라도 빠진 듯

괴롭고 고통스럽기 짝이 없지만

멀찍이서 관전하기엔 그만큼 쏠쏠하게 재미있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아기를 좋아해서

빨리 결혼하고 싶다는 게스트가 있었다.

그 순간 맥주가 안 넘어갔다.

지금 뭐라고 했어?

내 마음을 알아주듯

신동엽 오빠가 서늘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기 때문에 결혼하고 싶다…
그게 약간 '겨울 바다' 같은 거예요.
영화 속에 나오는 (낭만적인) 겨울 바다.
실제로 가면 되게 춥고!
깡패 만나서 돈도 뜯기고!

컨디션이 유독 안 좋았던 어느 날,

무거운 몸을 이끌고 식사준비를 하는데

내 다리를 부여잡고 당장 안아달라 울부짖던

우리 집 깡패가 떠오른다.

낮에는 함께 잠들었다가 아기가 먼저 깼는데,

좀 더 누워있고 싶었던 내가 계속 자는 척을 하자

곧바로 머리끄덩이를 잡혔다.

그래도 더 버텼더니

얼굴에 뚫린 구멍이란 구멍에 손가락을 쑤셔 넣으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그 후 거실로 나와 놀잇감을 가지고 놀다

제 맘대로 안되자 짜증을 내며

아무렇게나 던져버렸는데,

하필 내 얼굴에 맞아

가뜩이나 돌출된 광대뼈가

벌겋고 얼얼하게 부어올랐었다.


누군가를 붙잡고 울부짖고 싶었던 날이었다.

겨울 바다는 혹독해.


혹독하지만 아름다웠지…

라고 마무리 해야겠지?




나의 사랑스러운 깡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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