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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승미 Jan 11. 2023

육아 아이러니 그리고 깨달음_엄마니까 인내하라?

그냥 보통의 이기적 인간


지속적인 피로감에 마음이 산란했다.

아침부터 지민의 작은 실수에

(‘실수’ 라고는 하지만 갓 돌 지난 아기에게 ‘실수’라는 단어가 어울리기나 할까)

버럭 화를 내고, 솟구치는 짜증에 한참이나 씩씩거렸다.


첫 낮잠을 재우고 아기 옆에 누워있을 때

일상이 다람쥐 쳇바퀴 도는 듯하다는 생각이 불쑥 들어오더니

맘을 다스릴 새도 없이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전업엄마를 하면서 세련되게 가꾸지 못하는 외모도 아름답다고 생각했지만,

그날은 거울을 보니 한숨만 나왔다.


아기를 데리고 여행하는 건 힘들 거라고, 모두들 고생한다더라고, 그러니 안 가는 게 더 좋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시간적 여유가 부족한 남편의 직업이 문제라고 탓하며

그 힘들다는 여행이라도  다녀와보고 남들처럼 힘들었노라 툴툴거리고 싶었다.


인간관계는 좁고 깊은 게 좋으니 하루에 몇 사람 못 보는 지금의 일상도 괜찮다고 긍정했지만,

동네 애엄마들과의 먹이고 재우는 얘기 따위 말고, 다양한 사람들과 나누는 지적인 대화를 갈구했다.


이 모든 걸 착한 남편에게 다 털어놓으면 따뜻한 위로를 받겠지만,

그래도 달라지는 건 없다는 현실에 가슴이 답답했다.


탈출구가 없는 좁은 통로에

아기와 둘이서 갇힌 느낌이었다.


이 모든 이야기를 아주 아주 오랜만에 만난 싱글인 친구에게 털어놨다.

갑자기 엄마가 되어 돌아온 친구가 쏟아내는 푸념에 그녀는 어떻게 공감해줘야 할지 몰라 난감해했다.


해 질 녘 즈음 터덜터덜 친정집으로 돌아왔다.

엄마가 돼서 힘들다고 떠들다 온 것이 아기에게 죄를 지은 것만 같았다.

친정집 현관문 앞에 도착해 바로 들어가지 못하고, 그대로 서서 귀를 기울였다.


아기를 보고 싶은 마음과, 홀로 자유로운 시간이 더 연장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줄다리기를 했다.


아기의 목소리가 들렸다.

반짝이는 솜털 같은 내 아기의 목소리.

“짜박짜박”

걸을 때마다 나는 토실하고 촉촉한 발바닥 소리.


일순간,

우르르

그리움이 달려들었다.


문을 열었다.


나를 발견한 지민이 품에 안고 있던 인형을 바닥에 천천히 내려놨다.

아장아장, 조심조심, 천천히

두 팔을 벌리고 다가왔다.

나는 신발도 벗지 못하고 무릎을 꿇어

그 작고 여린 품에 안겼다.

그렇게 우린 볼을 맞대고 한참을 있었다.


*


내 정신력이 문제라고 생각했다.

아무리 수술 후 몸을 추스를 새 없이 육아에 뛰어들었다 해도,

아무리 남편이 아기가 깨기 전 출근했다가 잠든 후 퇴근한다 해도,

그리하여 갓 돌 지난 아이와 평균 16시간가량 둘만의 시간을 보내야 한다 해도,

아무리 알 수 없는 원인으로 갑상선 호르몬이 요동친다 하더라도,

아무리 처음 하는 육아라 모든 일이 낯설고 서툴며 아이가 무엇을 원하는지 도무지 파악할 수 없다 하더라도,

아무리 어떠한 불가항력적인  이유가 더 존재한다 할지라도


내가 ‘엄마’라면,

나는 엄마니까,

엄마라면 당연히,


그 모든 역경과 고됨은 자식을 향한 절절한 모성애로 다 잊을 수 있는 것 아니어야 하는가, 하고

스스로를 질책했다.

 

이해할 수 없었다.

난 이토록 아기를 사랑하는데

왜 이 모든 고됨과 고통을 기꺼이 받아들이거나 견뎌내지 못하는가.

수 억, 수천 년의 세월 동안

모든 인류의 어머니들은 다 감내했을 텐데

나는 왜 못해내는가.


힘들다고 자주 느껴질 때마다 그만큼 내가 아기를 덜 사랑하는 엄마인 것 같아서

죄책감이 들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누군가 내 아이를 해하려 할 때,

나는 그가 누구 건 간에 죽여버릴 수 있을 정도의 살의를 품고 달려들 수 있는 ‘엄마’ 이지만

동시에,

이렇게 모처럼 홀로 자유로이 글을 쓰고 있는데,

아이가 집념의 손길로 내 팔을 잡아끌며 나의 집중력을 흐트러트린 후 자신의 관심사로 데려가려는 시도를 할 때면

분노의 횃불이 화르륵 타오를 수도 있는 보통의 이기적인 인간이라는 걸.


’ 엄마‘는 그저

내가 가지고 있는 여러 역할 중 하나일 뿐,

그것이 ‘나’라는 인간 전체를 규정하지 않는다는 걸.


아!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죄책감이라는 짐을 훌훌 벗어던지고

더 자유롭게 ‘엄마 역할’을 수행할 수 있었을까?


모든 깨달음은 그것이 발현 될 적정 시기가 있나니,

후회도 미련도 가지지 않으련다.


이런 엄마를 두고서도 무사히, 건강하고 밝게

10년을 살아낸 네가 존경스럽다.


부모를 깨달음으로 이끄는 건 책이나 성자가 아니라, 바로 그 자신의 아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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