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그렇듯 실패
아침 식사 후 지민과 가을 산책을 나섰다.
나뭇잎에 송골송골 이슬이 맺힌 촉촉한 날이었다.
지민은 젖은 흙을 파내고, 손에 쥐었다 놓았다 하며 나름의 세계에 빠져 있었고,
나는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손이 좀 더러워져도,
옷이 좀 더러워져도
흙과 모래와 자갈을 만지며 노는 건
언제나 권장할만한 놀이이다.
자연물 속에서 마음껏 탐색하고 실험할 때야말로
인간의 감수성이 진정 풍요로워진다고 믿는다.
나는 ‘자애로운 어머니‘ 표정을 짓고
흙을 파헤치고, 자갈을 고르고, 씨앗을 살피는 지민을
너그럽게 지켜보고 있었다.
그런데,
아주 잠깐 사이,
지민이 흙과 모래 한 움큼을 집어
입으로 밀어 넣었다.
나는 기겁했다.
지민은 난생처음 느껴보는 식감에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엣퉤! “ 해! 엣퉤! “
“엣퉤!”
입에서 걸쭉한 적갈색 침이 흘러나왔다.
지민이 혀를 내밀었다.
초콜릿색으로 물든 혓바닥에
나는 아연실색했다.
‘자애로운 어머니’는 쫓겨났다.
손수건을 거칠게 빼들어 지민의 손부터 닦고, 입 주변을 닦았다.
‘흙 속에 강아지 오줌이나 거름 성분이 있었으면 어쩌지?’
‘똥이라도 섞여있었으면?’
‘아! 애초에 만지지 못하게 할걸!’
아이를 향해 부글부글 끓던 분노는 곧 나를 향했다.
엄마 실격이야.
다행히 아이는 아무 탈도 나지 않았다.
자꾸만 차도로 가자고 떼를 썼다.
인도보다 차도가 넓어 보이니 그곳이 끌린 모양이었다.
빠방이 다녀서 위험하다고 설명했다.
당연히 소용없었다.
무작정 차도로 돌진하는 지민을
잽싸게 낚아챘다.
지민은 거리 한복판에서
허리를 활처럼 뒤로 젖히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눈물과 콧물과 침을
주룩주룩 흘려댔다.
혹시라도 머리를 다칠까 봐
함께 주저앉아서
활어처럼 팔닥거리는 아이를
간신히 부여잡고 한참을 있었다.
아이가 어떻게 진정하게 됐는진 기억나지 않는다.
대체로 그런 시간엔 그저 버티는 것이 답이다.
본능과 분노와 떼로 점철된 어린 인간의 행동을
이성적이고 논리적으로 파악하려 해 봐야
나의 신세가 더 기막히게 느껴질 따름이므로
‘이 또한 지나가리’의 심정으로
그저 시간이 흐르길 기다리는 것이 최상인 셈이다.
아무튼
겨우 진정시키고 다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산책을 계속했다.
몇 가지 소동으로 에너지 잔량이 급격히 줄어들었다.
나도 모르게 한 숨을 푹푹 쉬고 있었던 것 같다.
어느샌가 동네 상인 아주머니께서 내 옆에 와 서 계셨다.
홀로 탐색을 즐기는 지민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말씀하셨다.
“아이 키우면서 제일 예쁠 때에요. 지금 평생 할 효도 다 하는 중이니까 충분히 즐기세요. “
그날 쓴 일기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작년에 갓 100일 지난 우량아 딸을
성치 않은 몸으로 간신히 안고
가을을 즐겨보겠다며 산책하던 그때,
단풍을 보면서 아이에게 말했었다.
“내년엔 엄마랑 같이 손 잡고 걸어서 예쁜 나뭇잎 보러 오자.”
스치는 일상의 귀중함을 왜 자꾸 잊어버리는지…….
별 것 아닌 일로 귀여운 아기에게 화를 내고 후회하기를 왜 자꾸 반복하는지……
어리석은 나로 인해 울적하다.
실격이다, 실격이야.
161031
3.
2016년 11월 초엔 제법 쌀쌀했다.
오후 세 시경, 낮잠을 자고 일어나 한참을 거실에서 놀던 지민이 어부바를 하자며
포대기를 끌고 와 등에 매달렸다.
쫑쫑 동여매고 동네 구석구석 어슬렁 거리며 걸었다.
얼마나 걸었을까.
어깨와 허리와 발바닥이 아프기 시작했다.
슬슬 집으로 가기 위해
적당히 한적하고 귀여운 카페와 공방이 들어선,
내가 우리 동네에서 가장 좋아하는 골목으로 들어가려는데
지민이 외쳤다.
“쪼쪽! 쪼쪽!” (”저쪽! 저쪽! “)
지민이 시선을 둔 곳은
내가 가려는 곳의 반대 방향에 위치한 운동 코트였다.
그곳엔 초등학교 고학년들로 보이는 아이들이 야구를 하고 있었다.
‘아, 길어질 텐데....’
난 본능적으로 직감했다.
몇 번 설득을 시도했지만
늘 그렇듯 실패했다.
결국 코트장 안전망 밖을 빙빙 돌며 야구 경기를 구경했다.
아기 업은 아줌마를 힐끗힐끗 쳐다보는 오빠들에게
어색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발바닥 통증은 무릎을 지나 허벅지에서 허리까지 이어졌다.
곧 등과 목의 뻐근함도 심해질 것이었다.
틈 나는 대로 몇 번이나 자리를 뜨려 했지만
이미 예상할 수 있듯이 이마저 저지당한 나는
결국 어둑어둑해진 후에야 집으로 향할 수 있었다.
선택해야 했다.
아이의 요구를 거절하고 집으로 향하는 대신
등에 매달린 채 울며불며 끝까지 자신의 욕구를 관철시키려는 아이의 분노를 견뎌낼지,
아니면 아이의 요구를 들어주는 대신
한층 더 깊어질 육체의 피로와 통증을 견뎌낼지.
육아는 매 순간 절체절명의 순간으로까지 느껴지는
선택의 기로에 서 있는 일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엔
같이 노래를 부르고,
풀잎들에게 빠빠이도 하고,
뒤통수랑 이마 박치기 놀이도 하면서
같이 깍깍대고 웃었다.
행복한 시간이었다.
*
아이가 어릴수록
엄마의 선택과 계획은 거절당하고 묵살당하는 것이
일상이 된다.
귀여운 아기에게 거절당하는 것이 무엇이 대수냐고,
아기라면 당연히 그런 존재가 아니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실상은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다.
별 것 아닌 사소한 일이 매일매일 반복되면
더 이상 ‘별 것 아닌 사소한 일’이 아닌
큰일이 된다.
사려 깊게 계획한 하루 동안의 자잘한 계획이
연이어 무산되고, 틀어지길 반복하면
인간은 ‘자기 효능감’이라는 것을 느낄 수가 없게 된다.
극도의 피로감과 고립감 속에서
실패감까지 가세하면
스스로가 무능력하게 느껴지고,
그것은 곧 엄마로서의 죄책감으로 이어진다.
나는 육아를 하기 전까진 나 자신이 다재다능한 인간이라고 생각했다.
무엇을 배우든 빨리 터득하고, 어떤 일이든 꽤 유능하게 다룰 줄 아는 사람이라고.
아기를 돌보기 시작하자
나는 그냥 마음만 앞서는 무능력한 인간이었다.
아! 아기는 사랑스럽다!
사무치게 사랑스럽다!
이 우주에 나보다 더 내 아이를 사랑하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 사랑스러움을 감상할 때마다 가슴 한가운데가 지글지글 끓다 터져버릴 것만 같은 지경에 다다르기도 했다.
그리고 그 사랑스러움을 분명하게 ‘즐겼다.’.
생각해 보면,
그 사랑스러움을 발견하고 감상할 수 있었기에
지금 내가 이렇게 생존해 있는 것이 아닐까, 조심스럽게 추측해 본다.
만약 그 당시의 우울과 고뇌가 나를 완전히 집어삼켜서
아이의 사랑스러움을 볼 수 없었다면
어느 순간, 어떤 선택을 했든
최악을 선택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20161104
예쁜 짓도 늘고, 떼도 늘었다.
‘아! 이런 천사 같은 아이가 내 딸이라니! 난 언제나 따뜻한 미소와 다정한 말투로 대해줄 테야!’
라고 결심하기가 무섭게, 어느 날은 나조차도 도저히 알 수 없는 이유로 갑자기 소리를 지르고 짜증을 내는가 하면,
수없이 주의를 줬던 위험하거나 지저분한 행동을 하면 결국 또 버럭하고 화를 내고 만다.
후우…….
오늘도 성당에 가서 기도를 했다.
하느님! 저에게 인내와 지혜를 주세요!
제발!!!
신은 인간에게 인내와 지혜를 여간해선 쉽게 주지 않는다.
성자들이 말하는 ‘내려놓음’과 ‘받아들임’ 훈련은
엄마가 된 후에야 비로소 스파르타식으로 시작되었다.
아이로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