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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승미 Oct 28. 2024

<경쟁 교육은 야만이다> 김누리 교수가 던진 동아줄

일상에서의 교육 혁명을 위하여_비판 교육, 성교육, 생태 교육



과거와 현재의 교육 현실


학창 시절, 교육 현실에 불만이 많은 비딱한 청소년기를 보냈다.


-‘4당 5락’? 아니, 잠을 안 자면 사람이 죽을 수도 있는데, 학생들한테 최대한 잠을 줄이고 공부해야 성공한다고 말하는 건 폭력 아닌가?

-단순 암기로 정답만 맞히면 되는 식의 공부가 정말 나한테 도움이 되는 걸까?

-인생의 경로를 판가름할 수 있는 중요한 시험이 단 하루, 몇 시간 만에 끝난다는 게 말이 돼?

-어른들의 부조리하고 폭력적인 언어들에 제대로 반박하지 못하고 순종해야 한다는 게 너무 불합리해.

-문학작품의 주제와 상징하는 바에 대해 모두 똑같이 생각하라고 왜 강요하는 거야? 난 그렇게 느끼지 않았는데?    


그러나 시간이 흘러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으면서 학창 시절에 관한 기억은 점점 잊혔다. 그러다 서른 즈음 엄마가 되고 육아를 하면서 필연적으로 다시 교육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우리나라 교육현실에 대한 문제의식이 되살아난 것이다.


한창 뛰어놀고 싶어 하는 5세 아이에게 한글 학습지를 시키기 위해 눈을 부릅뜨는 친구가 낯설게 느껴졌고,

초등학생이 된 그 친구의 아이가 학원숙제를 하고 밤 12시에야 잠자리에 든다는 이야기에 마음이 아팠다.

아이들 대부분이 선행학습을 하고 있기 때문에 그 전제 하에 학교 수업이 진행되고, 그마저도 책상에 엎드려 자는 아이들이 수두룩 하다는 이야기는 씁쓸하게 들렸다.

서울의 어느 학원가에는 초등학교 1학년부터 들어갈 수 있는 ‘의대반’이 개설되어 있다는 기사에 경악했다.

무엇보다, 우리나라 초등학생 사망 원인 1위가 ‘자살’이라는 것, 청소년 자살률이 매 해 늘고 있다는 통계 수치는 여전히 충격적이다.


이와 관련하여 최근에 깊이 동감하며 읽었던 책 한 권을 소개하려 한다. 이 책은 우리나라 교육현실의 문제점과 원인, 그리고 교육 혁명의 필요성과 방향에 대해 조목조목, 날카롭게 제시하고 있다.


김누리 / 해냄 출판사


바로 김누리 교수가 쓴 ‘경쟁 교육은 야만이다’라는 책이다. 제목부터 강렬하다.

나는 이 문장을 2020년에 발간된 김누리 교수의 <우리의 불행은 당연하지 않습니다>라는 책에서 처음 접했다.(아래 책) 그때 정말 가슴이 뻥! 뚫리는 기분을 느꼈다. 우리나라의 교육계뿐 아니라 사회 전반에 만연한 경쟁적 시스템에 대해서 늘 의문을 품고 있었기 때문이다. ‘경쟁’이 일반적인 사회 속엔 늘 ‘승자’와 ‘패자’ 혹은 ’낙오자’가 존재하기 마련이고, 이런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불안과 좌절, 분노를 만성적으로 내면화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결국 모두가 진 게임인 것이다.

삶이 그래선 안 되지 않은가?


김누리 / 해냄 출판사




책 구성 및 개요


책은 총 5부로 나누어져 있다. 1부와 2부에서는 우리나라 교육 현실의 문제점과 그 원인을 심층적으로 분석하고 있고, 3, 4부에서는 독일 교육과의 비교 분석을 통해 우리나라 교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다. 마지막 5부에서는 책 전체 내용을 총 망라해 대한민국 교육 패러다임의 대전환을 위하여 우리 사회가 바꿔야 할 점, 폐지해야 할 점을 크게 세 가지로 제시한다.

 

우리나라가 경쟁 이데올로기에 흠뻑 젖어있다는 걸 부정하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 같다. 심지어 한국인은 불평등을 ‘사랑’하는 국민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세계가치관조사(World Values Survey)’에서 밝혀졌다고 한다.

본문에 따르면 이 설문에서의 정확한 질문은 “당신은 소득이 보다 더 평등해져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니면 차이가 더 벌어져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였다고 한다. 이때 “보다 평등해져야 한다”는 대답이 24퍼센트, “더 차이가 벌어져야 한다”는 대답은 59퍼센트였다. 불평등을 선호하는 경향이 무려 미국보다도 높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제국주의의 ‘사회적 다원주의’, 미국 자본주의의 ‘시장 자유주의’가 결합한 이른바 ‘약탈적 야수자본주의’(김누리 교수의 표현이다) 속에서 불평등과 혐오, 몰상식과 불합리함이 일상 곳곳에 스며들어 만성화된 나머지 어떨 땐, ‘사람 사는 세상이 다 이런 걸까’, ‘어차피 나 혼자 뭘 바꿀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아이도 더 늦기 전에 이런 시스템에 적응시키는 게 최선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그러나,  이런 사회에 적응하기 위한 기나긴 여정은 너무나 고단할 것이고, 설령 잘 적응하는 듯하여 경쟁사회가 인정하는 소위 ‘명문대’에 진학하고 ‘고액 연봉’을 받는 직장을 얻어서 이 사회의 고지를 선점한들 그 삶이 과연 ‘행복‘과 ’성공‘으로 귀결될 수 있는 걸까? ‘무한경쟁시대’라는 말은 괜히 있는 게 아니다. 말 그대로 ‘끝없는 경쟁'이다. 혹독한 '자기 계발'을 통해 끝없이 ‘스펙’을 쌓고 이 사회의 우수한 ‘인적 자원’이 돼야 하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잠깐 멈추고 생각해봐야 한다.


과연 무엇을 위한 경쟁인가?


누구를 위한 경쟁인가?


이 판도를 누가 만들었는가?


이와 관련해서 본문의 일부를 공유해 보겠다.


우리는 하루 종일 자본이 보내는 긍정과 소비와 노동의 ‘복음’을 듣습니다. p115

사실 우리가 진리, 진실, 정답이라고 알고 있는 많은 것들은 이데올로기입니다. ‘모든 지배적인 사상은 지배하는 자의 사상이다’라는 것이 이데올로기 이론의 기본인식입니다. 이 말을 그대로 적용한다면, 한국 사회에서 지배적인 사상, 관념, 이념은 이 사회를 지배하는 자들의 사상, 관념, 이념이라는 것이지요.
p115

현대사회는 더 이상 폭력으로 지배하지 않고, 이데올로기로 지배합니다. 그리고 이데올로기의 가장 강력한 도구는 언어이지요. 그래서 언어를 지배하는 자가 사회를 지배하는 것입니다. p116

오늘날 언어를 지배하는 자는 누구인가요? 자본주의 사회를 지배하는 자본가들이 언어 또한 지배하고 있습니다. p116


우리는 과연 주체적으로 사유하고 행동하며 살아가고 있는 걸까? 거대 자본이 자신의 더 큰 이득과 권력을 위해 쏟아내는 각 종 언어의 향연에 현혹돼서 마치 최면에 걸린 듯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닌지 스스로를 비판적으로 성찰해봐야 할 것이다.




개인적 실천 방향


내가 이 책을 읽어봐야겠다고 마음먹었던 건 우리나라 교육계가 왜 이 지경이 됐는지 알고 싶었던 것도 있지만 학교 교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과 그것을 실현시키기 위한 구체적 방안을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가정 안에서, 아이가 주체적이고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돕기 위해 어떤 실천들을 할 수 있을지 힌트를 얻고 싶었다.


당신은 자녀가 어떻게 성장하길 원하는가?


특정 대학이나 직업을 떠나서, 어떤 어른이 되길 원하는가?


어떤 삶을 살길 원하는가?


나는 하루가 다르게 피어나는 아이가 매일매일의 사소한 일상 속에서 진정 소중한 요소들을 알아보고, 감탄하고,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 되길 바란다. 타자의 고통과 슬픔에 공감하고 교감하고, 연대할 수 있는 사람이길 바란다.  불의와 폭력에 휘둘리지 않고 주체적으로 사유하고 행동할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하길 바란다. 인간뿐 아니라, 지구상의 모든 생명을 지닌 존재들에게 이로운 세상을 만들어나갈 수 있는 감수성을 지닌 아이이길 바란다.

너무 거창한가? 너무 이상적인가?

하지만 나 또한 매일매일 그런 사람으로 성장하길 원한다. 인간이란 존재가 단지 돈을 많이 벌어 떵떵거리며 살기 위해 태어났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 책에는 독일 학교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교육 세 가지가 나와 있는데 가정에서도 충분히 아이와 함께 실천해 볼 수 있는 것들이라 반가웠다. 물론 제도적인 차원에서 이런 교육이 학교에서 더 광범위하게 이루어지면 좋겠지만, 그때까지 기다리고 있을 수만은 없지 않은가?

당장 시작해 보자.


나는 이것을 김누리 교수의 표현을 빌려 ‘일상의 교육 혁명’이라 부르기로 했다. (아무도 안궁금하겠지만)




일상의 교육혁명


위키 백과에서 김누리 교수의 이력을 살펴보면,

전문 분야는 독일 문학사 개관, 독일 소설의 이해, 독일의 정치와 사회로 중앙대학교 독일어문학전공 교수, 한독문화연구소 소장, 브레맨대 독일문화연구소 상임위원 등을 역임하였다.

라고 나온다.

여기까지만 보아도 김누리 교수가 독일 문화, 정치, 사회 분야의 전문가이구나, 를 알 수 있다. 물론 ‘김누리 교수가 독일에 관한 모든 걸 정확하게 다 알고 있다!‘라고 말할 순 없을 것이다. 누군들 그럴 수 있을까? 하지만 오랜 기간 한 분야를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면서 연구와 발표를 꾸준히 해온 지식인의 관점을 결코 간과할 순 없을 것이다.


책에는 독일 교실 교육에서 다루는 중요한 세 가지로, ‘비판 교육’, ‘성교육’, ‘생태 교육’을 말한다.


+비판교육 _ ‘사유하는 인간’을 위한 민주시민 교육


학창 시절에 학교 수업 중 의문이 드는 부분에 대해 선생님께 질문 한 적 있는가? 일상 속에서 어른들이 하는 주장에 대해 반론을 제기해 본 적이 있나?

나는 없다. 아예 없었던 건 아닌 것 같은데, 반론 비슷한 걸 제기하면 보통 이런 대답을 돌아왔던 것 같다.


쓸데없는 생각하지 말고 공부나 해.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고 그냥 외워.
넌 어려서 잘 몰라.


독일인 방송인 다니엘 린데만은 김누리 교수와 함께 출연했던 방송 프로그램에서 자신이 독일에서 학교에 다닐 때 첫 수업에 교사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여러분, 이제부터 여러분은 모든 것을 자유롭게 해도 좋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는 절대로 하면 안 됩니다. 제가 하는 말을 절대 믿지 마세요. 제가 하는 모든 말을 의심하세요. 제 말에 대해서는 항상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의심을 갖고 들어주세요. 그리고 제 말을 비판할 때는 근거를 모아서 하세요. 그래야 성숙한 민주주의자가 됩니다. 죽은 물고기만 강물의 흐름을 따라 흐릅니다. p172


독일에서는 히틀러 파시즘의 무비판적이고 맹목적인 주입식 교육이 아우슈비츠를 낳았다고 본다. 그래서 그 치욕스럽고 끔찍했던 과거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선 성숙한 민주주의자를 길러야 하고, 성숙한 민주주의자를 기르기 위해선 ‘비판 교육’, ‘사유 교육’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보는 것이다.


그래서 독일은 사유하는 능력을 기르기 위해 책 읽기를 매우 중시한다. 관심 분야의 책을 천천히 깊게 읽으면서 사유하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다. 시험을 볼 때에도 초등학교 때부터 스스로 자신의 생각을 쓰는 형식이다. 물론 우리나라 초등학교에서도 과거에 비해 책 읽기와 토론, 글쓰기 수업이 점점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중이다. 하지만 턱없이 부족하다. 이런 수업은 앞으로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강조되어도 과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가정에서는 ‘비판 교육’, ‘사유 교육’을 어떻게 실천할 수 있을까?

이전에 10년째 지속하고 있는 ‘잠자리 독서’와 관련한 글을 올린 적이 있다. 영유아기 때 아이를 품에 안고 책 읽는 시간은 애착 형성에 큰 도움이 되고, 언어와 사고 발달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건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아이가 자라 한글을 뗐다 싶으면 이전처럼 책을 읽어주지 않는 경우가 많다. “너 글자 읽을 줄 알잖아. 혼자 읽어.” 라면서 은근슬쩍 밀어내는 것이다.(나도 그래본 적 있다.) 하지만 이제 막 초등학교에 입학한 아이들은 시각적으로 정보를 받아들이고 판독하는 능력보다 청각적으로 정보를 습득하는 능력이 압도적으로 뛰어나기 때문에 최소 초등학교 저학년까진 엄마아빠가 책을 읽어주는 것이 책 읽기 습관을 들이는데 더 도움이 된다고 한다. 매일이 힘들다면, 일주일에 세 번이라도 엄마아빠가 소리 내어 책을 읽어주고 그렇게 함께 읽은 책의 내용을 소재로 아이와 대화를 나눠볼 수 있다.


‘아이가 아직 어린데 ‘비판’이나 ‘사유’라고 할 법한 대화가 오갈 수 있겠어?’


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생각 외로 우리 아이들은 자신의 일상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이나 동급생, 혹은 어른들의 말과 행동들을 꽤 날카롭게 관찰하고, 나름의 해석을 하고 있다. 중요한 건 아이와 대화할 때 부모의 마음가짐이다. ‘내가 어른이니까 한수 가르쳐줘야겠다.’라는 마음 가짐으로 대화를 시작하면 아이는 도망갈 것이다. ‘내 생각이 다 옳지는 않다.’라는 전제 하에 진지하게 아이의 의견을 경청하고, 때로는 반론과 질문을 제기하면서 아이와 더불어 사고를 확장시켜 나가려는 자세가 중요하다.


그리고 화룡점정으로 글쓰기! 생각하고, 말하고, 마지막으로 글을 쓰는 과정에 사고가 더 정제되고 탄탄한 논리를 갖출 수 있게 된다.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이 유려한 논리적 글쓰기를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사실 ‘쓰는 행위’ 자체가 어린아이들에겐 중노동에 가깝다. 재미있는 책을 읽고 충분한 대화를 나눴다면 요약과 느낌을 포함한 글을 세 줄에서 다섯 줄 정도 써보는 걸 루틴으로 잡아보는 것도 추천한다. 아이가 너무 힘들어하는 날엔 불러주는 대로 엄마아빠가 받아 적어보자. 아이는 자신의 생각과 말을 중요하게 여기고 받아 적는 부모의 모습을 보며 자긍심을 느낀다. 그리고 그런 기록들이 하나하나 쌓이면 그 자체로 보물이 되고, 아이는 글쓰기가 주는 가치에 대해 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게 될 것이다.



+성교육_강인한 민주 시민을 위한 필수 교육


성교육이 ‘강한 자아’를 기르는 것과 연관성이 있다는 생각을 해보았는가? 나는 김누리 교수의 <우리의 불행은 당연하지 않습니다>를 읽고 처음 알게 됐다. 당연히 아이들이 올바른 성의식을 가질 수 있도록 교육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선 좀 더 현실적인 성교육이 필요하다는 생각은 했었지만, 올바른 성교육이 ‘강한 자아’를 기를 수 있고, 이것이 곧  ‘강한 민주시민’을 기르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건 새롭게 알게 된 부분이다.


독일에서는 “성은 인권이며, 성적 자기 결정권을 존중해야 한다”라고 가르치고 있다고 한다.

“성은 인권이다”라는 부분에서 이마를 한 대 탁 쳤다. 정신분석학 이론에 따르면 인간은 2차 성징이 드러나는 사춘기 시절, 이드(본능적 에너지)와 초자아(전통적 가치관, 사회규범, 양심) 간의 대립을 통해 점차 성숙한 인격을 형성해 나간다. 이 과정에서 성적 충동에 해당하는 이드가 억압되면 인간은 성과 관련한 죄의식을 내면화하게 되고, 죄의식을 내면화한 인간은 권력 앞에 굴종적인 인간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성은 ‘생명’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기에 당연히 인권과도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놓여있다. 그런데 성에 대해 쉬쉬하고, 성적 충동을 억압하는 사회적 분위기는 인권에 대해서도 소극적이고 뒤틀린 관점을 갖게 하는데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본문의 내용 일부를 공유해 보겠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개념은 바로 죄의식입니다. 깊은 죄의식을 내면화한 자아일수록 더 권력에 굴종적인 인간이 됩니다. 요컨대, 한 사회가 성을 억압하면 억압할수록, 자아는 더 깊은 죄의식을 갖게 되고, 즉 더욱 약한 자아가 되고, 약한 자아를 가진 사람일수록 더 굴종적인 인간이 된다는 것입니다. p195

성교육은 본질적으로 자아 교육입니다. p195

청소년들에게 죄의식의 내면화를 막고, 강한 책임의식을 길러주는 것, 이를 통해 강한 자아를 가진 시민을 길러내는 것이 독일 성교육의 핵심목표입니다. p196

강한 자아를 가진 자는 결코 부당한 권력에 굴종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권력에 굴종하지 않는 시민들의 공동체만이 민주주의를 구현할 수 있습니다. p196


우리나라에서 반복적으로 발생하면서 수위가 높아져만 가는 각종 성범죄와 여전히 빈약한 젠더 감수성, 그리고 무지막지한 성적 혐오 발언들의 원인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해 볼 수 있는 부분이었다.


가정 안에서 성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는가? 나는 성에 대해 솔직한 대화를 나누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초등학교 1학년 때 아이가 성에 관한 책들을 빌려오면 함께 읽어보면서 많은 대화를 나눴다. 아이가 먼저 궁금증을 털어놨고, 엄마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 했다. 2차 성징이 드러날 때 몸의 변화라든가, 그때 느껴지는 성적 충동, 성관계, 임신과 출산, 성적 자기 결정권 등에 대해서 아이가 질문하는 대로 솔직하게 이야기해 줬다. 지극히 사실적으로 이야기했기 때문에 혹시 아이가 놀라거나, 불편해하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 아이는 굉장히 진지하게 귀담아들었고, 그 이후로도 성과 관련한 몇 권의 책을 더 읽어보면서 온 가족이 함께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노골적이고 적나라하게’ 이야기하는 것이 ‘민망하다’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다. 그게 바로 성적 수치심과 죄의식을 내면화하고 있다는 반증 아닐까? 우리 사회는 성과 관련해서 역사, 심리학, 사회학, 생물학, 정치학 등 각 분야와 관련한 깊이 있는 토론과 공론화가 필요하다.   


+기후생태 교육 _ 미래 세대를 위한 연대


지난여름, 우리는 힘겨웠다. 나는 더위를 잘 타지 않는 체질임에도 불구하고, 무척이나 괴로웠다. 그런데 충격적인 건 올해 여름이 우리 생에 남은 여름 중 가장 시원한 여름일 거라고, 전문가들이 입을 모아 말하고 있다는 점이다. 현재 기후 위기 문제는 전 세계적으로 시급한 상황이다. 빙하가 녹은 북극에서 홀로 갈 길을 잃은 동물들의 모습은 더 이상 TV속 먼 나라의 이야기가 아닌, 우리의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기후 위기에 관심이 많아서, 몇 권의 책을 읽어본 적이 있다. 각 책 속에서 기후 위기의 가장 큰 원인으로 제기하는 것은 바로 ‘자본주의’였다. ’과잉생산 자본주의’. 자본주의가 불러일으킨 경쟁적이고 무분별한 생산과 소비 풍조가 생태계를 직접적으로 위협하는 단계에 이르렀고, 각종 동식물의 멸종, 경쟁에 뒤쳐진 소외 계층이 가장 먼저 희생되는 구조는 우리 사회의 불평등한 현실을 여실히 드러낸다.


뭐니 뭐니 해도, 엄마의 입장에서 가장 염려되는 부분은 우리 아이들의 미래다. 미세 먼지와 바이러스로 인해 하루 종일 마스크를 쓰고, 야외에서 마음껏 뛰어놀 수 없었던 날들을 우리는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올여름만 해도, 그야말로 ‘살인적인 더위’로 인해서 ‘즐거운 여름방학’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였다.


‘환경오염이 심각하다’

‘기후 위기를 위해 무언가 해야 한다.’

‘생태계를 보호해야 한다.’


라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 문제는 이 사안들을 피부로 느끼고, 현실을 변화시키기 위한 실질적 행동들을 어떻게 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독일은 어떻게 생태 교육이 행해지고 있는지 본문을 공유해 보겠다.


생태 교육은 자연과 인간 사회 사이에서 일어난 다양한 현상의 결과들을 이해하고, 생태적 질서의 유지에 적합한 행동을 하도록 유도하기 위한 방법으로 다양한 영역에 걸쳐 행해집니다. 생태 문제는 특정한 영역에 한정된 문제가 아니라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영역이 얽혀서 일어난 인간 사회의 총체적인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P210


2014년 독일의 시사주간지 <슈피겔>에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독일 젊은이들의 82퍼센트가 소비할 때 죄책감을 느끼고, 환경 보호를 위해 소비를 포기할 수 있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이것은 ‘독일 청년들이 이렇게 훌륭하구나!’를 이야기하려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소비 성향은 어떠한가? SNS 속에서 “이건 꼭 사세요!”라는 문구에 넘어가 나도 모르게 결제 버튼을 눌렀던 적은 없는가? 훗날 버려질 때를 대비해 가급적 자연으로 돌아가 썩을 수 있는 제품을 찾아보려는 노력을 기울인 적 있는가? 생태 파괴와 기후 위기를 정치, 경제, 사회, 문화와 연결시켜 깊이 사유해 본 적 있는가? 당장 나부터 쓸데없이 들락거리는 쇼핑몰 계정의 팔로우를 끊어버려야겠다.  


우리나라 초등학교에서도 현재 생태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걸 잘 알고 있다. 학교뿐 아니라 도서관이나 각 종 지자체에서도 전문가 강연이나 ‘플로깅’ 행사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다. 이것 역시 좀 더 적극적으로, 좀 더 가시적으로, 깊이 있게 이루어졌으면 좋겠다는 게 내 바람이다. (대기업의 각성은 필수다.)


이 부분 역시 단순히 학교에서만 교육이 이루어진다고 큰 변화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모든 교육의 시발점은 가정이다. 특히 생태와 관련한 행동은 일상에서의 실천적 규범 또한 매우 중요하다. 사실 편리한 생활을 포기하기란 쉽지 않기 때문에 우리 어른들부터 생태를 위한 공부를 하고, 지역 사회 안에서 함께 행동할 수 있는 방안들을 찾아볼 수 있다면 좋을 것이다. 나는 도서관에 가서 기후, 생태, 자연, 동물권 등에 관한 어린이 서적을 빌려 아이와 함께 읽고, 지구를 지키기 위해 우리가 뭘 할 수 있을지, 위기의 사회 속에서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지, 혹은 무심코 구매한 장난감이 버려지면 어디로 갈지에 대한 대화를 나누곤 한다. 얼마 전엔 강남역에서 있었던 ‘기후정의행진’에 참여했다. 기후 위기에 대응하기를 촉구하는 수많은 단체의 깃발들이 펄럭이는 광경을 보면서 아이와 함께 가슴이 뜨거워졌고, 집에서 소소하게 행하는 환경을 위한 행동들이 때로는 계란으로 바위 치기 같이 느껴질 때도 있었지만 다시금 힘을 얻을 수 있는 계기가 됐다. 아이는 다음 기회엔 본인도 공연팀으로 참여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다. 백 번의 설명보다 피부로 느끼는 것이 중요하다.



여기까지 김누리 교수의 <경쟁교육은 야만이다> 리뷰이자, 일상에서의 교육혁명을 어떻게 이룰 수 있을지에 대한 개인적 의견이었다.


우리나라 학교 교육이 지극히 폭력적이고 억압적이었던 과거에 비하면 많이 좋아진 것 같지만, 찬찬히 조목조목 뜯어보면 사실상 그런 것 같지도 않다. 아직 논의되어야 할 많은 문제들이 산재해 있고, 우리 아이들은 행복하지 않다.


이 책에선 교육이 사회의 변화를 견인할 수 있다고 한다. 사회의 불평등 구조와 권위주의, 경쟁 이데올로기가 너무 견고하기 때문에 당장 사회를 변화시키는 건 어렵지만 교육에는 희망을 걸어볼 만하다는 것이다. 벌써 많은 학부모와 교사, 비영리단체가 우리나라 교육계를 변화시키기 위해 다양한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사실 이 책에는 공유하고 싶은 문장이 굉장히 많다. 내가 아는 주변의 모든 부모들을 쫓아다니면서 들려주고 싶은 심정이다. 대한민국에서 자녀를 양육하는 부모와 교사라면 꼭 읽어보고 토론의 장이 열리길 기대한다.


정말 마지막으로 -들어가는 말-에서 김누리 교수가 독자에게 하는 질문으로 마무리하겠다.


넬슨 만델라는 “한 사회가 아이들을 다루는 방식보다 그 사회의 영혼을 더 정확하게 드러내 보여주는 것은 없다”라고 했습니다. 우리 ’사회의 영혼‘은 무엇인가요. 우리 사회는 아이들을 어떻게 대하고 있나요. 그들을 인간으로서 존중하고, 그들의 삶을 소중히 여기고 있나요. 그들의 행복을 위해 무엇을 하고 있나요. 그들이 개성을 기르고 자유를 누리도록 무엇을 돕고 있나요. 그들이 세계의 고통과 억압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연대하는 세계시민으로 자라도록 이끌고 있나요. 그들이 정의와 평등의 감수성을 갖도록 교육하고 있나요. 요컨대 우리는 아이들을 존엄한 인간, 성숙한 시민, 개성적인 자유인으로 기르고 있나요. p17




도움 되는 대목에 귀를 기울이고,
나머지는 무시하세요.

-앨리스 워커-

당신만의 육아 방식을 존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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