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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승미 Jun 03. 2024

어른의 올바른 권위 안에서 아이들은 더 자유롭다.

경계 설정 육아

10년 넘게 초등학교에서 연극 수업을 하고 있는 지인이 들려준 이야기가 있다. 각 학년과 반 아이들, 그리고 선생님들을 관찰한 결과 흥미로운 점을 발견했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연극 수업이다 보니 아이들의 창의력이나 적극적인 참여도가 굉장히 중요한데, 아이들을 자유롭게 풀어주는 담임 선생님이 계신 반보다, 서로 간에 지켜야 할 예의와 약속을 분명하고 엄격하게 각인시켜 주시는 담임 선생님이 계신 반의 아이들이 훨씬 더 수업 태도가 좋다는 것이다. 제한된 시간 내에 창의력과 상상력을 발휘하는 능력도 더 뛰어나고 수업 참여도나, 반 아이들끼리의 협력 수준도 높았다고 한다.

창의력과 상상력은 최대치의 자유와 연결돼 있을 것 같은데, 의외이지 않은가?


오늘은 ‘경계 설정’과 그 실천 방법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여기서의 ‘경계’는 아이들이 할 수 있는 선택과 행동 범위의 한계 설정을 의미한다.



테두리 설정 “선 넘지 말아라.”


행동 지침과 관련한 선을 분명하게 그어주고, 절대 넘어가지 않도록 가르친다. ‘절대’라는 단어를 썼듯, 이유를 불문하고 인간이라면 당연히, 절대 넘어가선 안 되는 범위를 명료하고 단호하게  알려줘야 한다.


예를 들면 이런 것들이다.


누군가를 때리면 안 된다.

공공장소에서 뛰어다니거나 큰 소리로 말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의 물건을 뺏거나 함부로 사용하지 않는다.

욕을 하지 않는다.

누군가의 외모나 소유한 물건 등을 가리키며 놀리고 상처 주는 말을 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의 몸을 함부로 만지지 않는다.


등등, 이런 것들은 4세부터 초등 저학년까지는 반복적으로 가르쳐줘야 한다. 반복적이어야 하는 이유는 반복적으로 이 선을 넘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이때 반드시 주의해야 할 점은 요즘 난무하고 있는 ‘마음 읽어주기’ 과정은 최대한 짧게 하고, 아이가 배워야 할 지침은 간결하고 분명하게 전달해야 한다는 것이다. 친구를 왜 때렸겠는가? 뭔가 나름대로 불쾌한 상황이 있었기 때문에 때렸을 것이다. 그때 “그랬구나. 기분이 나빴구나. 속상했겠다.” 로 끝나선 안된다. 이렇게 하면 아이들은 “아, 내 기분을 안 좋게 하는 애는 때려도 되는구나.”로 받아들일 수 있다. “네 기분과 상관없이 때리는 건 절대 안 되는 거야.”라고 분명하고 간결하게 가르친다. 보충 설명이 길어지면 아이들은 집중력이 흐트러지고, 결국 요지를 이해하지 못한 채 상황이 흐지부지 지나갈 뿐이다. (그러나 우리는 최대한 많은 것들을 가르치고 싶은 욕심에 설명이 길어지곤 한다.ㅠ)

식당 같은 곳에서 가만히 앉아있기 답답하다고 자꾸 돌아다니고 장난치는 아이에게, “답답했구나. 힘들었어?” 가 아니라, “답답한 걸 참을 줄도 알아야 해. 이런 곳에서 소란스럽게 하면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거야. 정 힘들면 나가자.” 이건 꼭 지켜야 하고, 반드시 배워야 한다는 걸 알 수 있게 눈을 보고, 단호하게 알려주자.



선택지 줄이기


혹시 매사에 다양한 선택지를 놓고 아이의 의견을 묻고 있는가? 내가 정말 좋아하는 발도르프 교육 서적 <무지개다리 너머>라는 책 속에 아이에게 수많은 선택지를 제시하는 요즘 부모들의 모습을 재미있게 묘사한 부분이 있다. 나 또한 그런 과오를 범했던 적이 있었던 터라 읽으면서 굉장히 웃었던 기억이 있다. 일부를 발췌해 보겠다.


부모들을 위한 강의에서 유진 슈바르츠는, 아침에 일어나는 순간부터 부모들이 제공하는 무수히 많은 선택권 때문에 생기는 딜레마를 다음과 같이 유머러스하게 묘사하고 있다.

“잘 잤니, 얘야? 무엇을 입고 싶니? 소매 없는 잠바? 짧은 소매 달린 드레스? 아니면 긴소매 드레스? 플레어 치마? 데님 치마? 아니면 꽃무늬 치마? 짧은 반바지? 카프리 바지? 등산용 반바지? 아니면 그냥 바지?
바지와 티셔츠라고, 좋아. 어떤 것으로 할래? 빨강? 파랑? 초록? 줄무늬? 체크무늬? 아니면 격자무늬 바지? 일직선 모양? 플레어 모양? 말려 올라간 것? 아니면 평범한 디자인의 바지? 수영복 모양? 터틀넥? 짧은 소매? 아니면 긴소매 셔츠?……
아침을 먹자꾸나. 오늘은 무얼 먹고 싶니? 오렌지 주스? 넌출 월귤 주스? 포도주스? 아니면 망고-귤-구아버 주스? 땅콩? 꿀? 황설탕? 아니면 유기농 과일이 든 그라놀라? 2%? 1%? 두유? 크림? 아니면 저 지방으로 제공되는 요구르트? 일반 토스트? 계피 토스트? 영국식 머핀? 아니면 베이글?


다소 희화화되고 과장된 면이 있지만 과거에 비해 요즘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선택권을 참 많이 제공하고 있다는 건 부인할 수 없다.

끊임없이 아이가 원하는 것을 선택하게 만드는 행위는 아이로 하여금 ‘’, ‘가 원하는 것’, ‘가 좋아하는 것’, ‘가 하고 싶은 것’ 즉, 지속적으로 ‘’에 대한 생각으로 골몰하게 만들어서 자기중심적이고, 타인의 욕구에는 둔감한 아이로 만들 수 있다고 한다. 그런 아이들이 모여 있는 학교 안의 풍경이 어떨까? 그리고, 그렇게 성장한 아이들이 만든 사회의 모습은 어떨까? 자기주장을 거침없이 할 수 있는 아이로 자라는 것도 좋지만, 타인에 대한 배려가 빠진 자기주장은 결국 이기적인 궤변에 불과하며, 공동체 안에서 적응하고 소통하기 힘들어질 것이다.


또한 선택권을 많이 주면 아이들이 좋아할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특히 연령이 어린아이들일수록 부담을 느낀다. 책에선 아이들이, ‘나에게 좋은 건 내 부모가 가장 잘 알고 있다.’라고 여겼을 때 더 마음이 편안하고, 안정감을 느낀다고 한다.


그래도 선택권을 줘야 한다면 최대한 쉬운 선택지로 두 가지에서 세 가지 정도로 줄이고, 청소년기로 넘어갈수록 차차 그 범위를 넓혀가면서 자신이 한 선택에 책임질 수 있는 연습을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좋겠다.



거절하기를 두려워하지 말기    


앞에서 언급한 ‘테두리 설정’과 ‘선택지 줄이기’를 하는 동안 반드시 저항에 부딪칠 것이다. 이때 우리 아이가 거절당하고 좌절을 겪으면 자존감이 떨어질까, 걱정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가정 안에서 올바른 권위를 가진 부모로부터 ‘안전한 좌절 경험’을 겪는 것은 아이에게 꼭 필요한 과정이다. 부단히 허용적으로 자란 아이들은 사회에서 겪는 사소한 좌절감에도 큰 상처를 받고 회복하기 더 어려울 수도 있다. 거절당해도 괜찮다는 것, 요구를 거절당한 것이 존재 자체를 거절당한 건 아니라는 걸 가정 안에서 안전하게 배울 수 있어야 한다. 좌절감 없이 성장하는 인간이 있나? 가정 안에서 겪는 안전한 좌절 경험은 마음의 근육을 만들어주고, 아이가 사회에 나갔을 때 더 큰 좌절감을 겪어도 잘 헤쳐나갈 수 있는 힘이 돼 줄 것이다.


*


과거에는 경계가 너무 좁거나 유연하지 못해서 ‘억압’에 가까운 훈육이 만연했던 것 같다. 주로 어른에 대한 예의범절이나 공동체 안에서의 규칙 등을 지키게 하기 위해서 아주 혹독한 방식으로 이루어졌고, 체벌 또한 비일비재했다. (나는 가지각색의 기발하고 가학적인 방식의 체벌을 모두 학창 시절 교사들로부터 경험했다.)


이런 성장 과정을 거친 현재의 부모 세대들에게 각성이 일어난 것 같다. 과거에 내 부모, 혹은 학교에서 받았던 상처를 내 아이에게만큼은 물려줄 순 없다,라는 생각에서. 또 그간 아동청소년 심리 연구도 활발해지고, 올바른 교육 방식에 관한 성찰이 이루어지기 시작하면서 가정과 학교 안의 풍경이 과거와는 사뭇 달라졌다.

문제는, 너무 치우친 감이 있다는 것이다. 과하게 억압적이었던 분위기에서 과하게 허용적인 분위기로.

뭐든 치우치는 건 옳지 않다.


과하게 허용적인 육아가 올바르지 않은 이유는 크게 세 가지이다.

첫 째, 옳고 그름에 대해 분명하게 배우지 못한다.

둘째, 절제하는 법, 충동을 조절하는 법을 배우지 못한다.

셋째, 이 모든 이유로 인해 일상생활과 관계 속에서 혼란스럽고 불안한 아이가 된다. 그리고 그런 어른으로 성장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가 적절한 경계를 또렷하게 그어주고 그 안에서 자유로울 수 있도록 가르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도움 되는 대목에 귀를 기울이고,
나머지는 무시하세요.

-앨리스 워커-

당신만의 육아 방식을 존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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