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엄마 맞아? Are you my mother?> 엘리슨 벡델
사춘기 시절 매일 죽을 결심을 했다. 내가 사라져 주는 것이 모두에게 좋을 것이라고 진심으로 믿었다. 얼마 전 TV방송 프로그램 ‘금쪽같은 내 새끼’를 보며 그때 내가 겪고 있던 건 심각한 수준의 ‘청소년 우울증’ 증상이었다는 걸 알게 됐다.
20대 초반, 극작 공부와 연극을 시작하면서 인간의 심리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책장에 <프로이트 정신분석학>이라고 적혀있는, 손바닥만 한 만화책을 발견했다. 내가 왜 그렇게까지 우울하고 죽고 싶었는지 나 자신의 정신을 분석해보고 싶다는 욕구가 강렬하게 일어났다. 신세계가 펼쳐진 기분이었다. 이어서 프로이트와 관련한 책을 몇 권 더 읽었고, 급기야 정신분석학 이론에 내 삶을 억지로 끼워 맞춰 왜곡시키는 지경에까지 다다랐다. 프로이트 읽기가 중단된 건 ‘딸의 남근 선망’에 관한 부분부터였다. 도저히 고개가 끄덕여지질 않았다. 남근을 선망한다고…?
최근 청소년기 우울증의 원인을 제공한 엄마와 나 자신의 유년기를 꼼꼼하게 되짚어 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준 책을 읽었다. 집 근처 독립 서점에서 진행하는 <모녀서사> 강의에서였다. 매주 강의 주제와 관련한 책을 한 권씩 읽고 공부한다.
모든 모녀 지간에는 아직까지 복구되지 않는 생채기와, 깊고 지극한 사랑의 기억이 혼재한다. 아이를 낳고 양육을 시작하자, 생채기와 사랑의 물줄기가 고스란히 내 딸에게 흘러가고 있었다. 나는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했다. 지극한 사랑의 물줄기는 막히지 않도록 정성껏 길을 터줘야 하고, 복구 불가능한 생채기는 결코, 딸에게 가하고 싶지 않았다.
<당신 엄마 맞아?>는 총 6회 차 강의 중 세 번째 강의와 연관된 그래픽 노블이다. 만화 형식이라 신바람 내며 책장을 넘겼다가 곧 이해하기에 수월찮은 책임을 간파하고 정자세로 고쳐 앉아 읽었다.
작가 앨리슨 벡델은 여성 퀴어 서사 분야의 자랑스러운 개척자라고 평가받고 있다. 이전에 출간된 게이 아버지의 회고록 <펀 홈 Fun Home>은 ‘만화계에서 흔치 않은 탁월한 대작’이라는 평가와 함께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랐고, 출판되자마자 주요 언론 매체에서 주목할 만한 올해의 책으로 꼽았다.
<당신 엄마 맞아?>는 어머니에 관한 회고록이다. 원제는 <Are you my mother?>이다. 직역하면 ‘당신은 나의 어머니입니까?’ 일 텐데, 이 책을 읽은 옮긴이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앨리슨 벡델은 그 자신이 심리치료를 받으며 엄마와의 관계를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 도널드 위니캇의 대상관계이론에 입각해 치열하고 집요하게 탐색한다. 그와 엄마 각자의 유년기 기억과, 성인이 된 후 그 상처가 발현된 방식이 담긴 부분들은 놀라울 정도로 솔직하게 묘사되어 있다. 꿈 분석과 관련한 부분도 반가웠다. 신화학자 제레미 테일러의 책을 읽고 개꿈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됐다. 나는 꿈을 기억하길 좋아하고, 기억나는 대로 노트에 기록해 둔다. 꿈은 무의식이 보내는 메시지이다. 또한 일상에서 우연히 벌어진 듯한 이벤트에도 의미가 담겨 있음에 대해 언급하는 부분도 몹시 공감이 갔다.
삶에 임의적이거나 막연한 것은 없다.
-본문 중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이 1인 중심이라면, 대상관계이론은 양육자와 아이(당사자)의 상호적 관계 맺음을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 타인과 ‘관계’를 형성하려는 욕구가 행동의 동기를 얻게 한다는 것이다.
아기는 스스로 자신의 가치를 판단할 수 없을뿐더러 인지조차 할 수 없으므로 주양육자와의 관계를 통해 내적 표상을 형성한다. 나를 돌보는 엄마가 자주 활짝 웃어주면, 그때야 비로소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아! 엄마가 나를 이렇게 사랑하는 걸 보니, 나는 좋은 사람인가 보다.”
내 유년기 기억 속 엄마는 늘 우울해 보였다. 입술을 일자로 꾹 다물고 양미간을 어느 정도 찌푸린 상태였고, 안색은 창백했다. 아이들은 자기중심적이기에 엄마의 기분이 나빠보이면 종종 그 원인이 자신에게 있다고 생각한다는 걸 임신 중 읽었던 아동심리 서적에서 알게 됐다. 어렸던 나는 정확히 그렇게 생각했다. 나는 엄마의 눈치를 보는 버릇이 있었다. 엄마는 누군가와 전화 통화를 할 때 미소를 지었다. 그때를 노리고 엄마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엄마 냄새를 맡는게 좋았다. 불안을 잠식시키고 평안을 제공했던 냄새. 통화하는 엄마의 품에 파고들면, 엄마는 약간 건조하고 따뜻한 손으로 내 이마를 쓸어서 잔머리를 정리해 줬다. 그때 알 수 있었다. 엄마가 나를 사랑한다는 걸. 나는 엄마가 나를 사랑한다는 증거를 찾기 위해 애썼다.
엄마를 웃게 하기 위해 노력하고, 엄마의 마음에 드는 나를 연기했다. ‘있는 그대로의 나’는 늘 교정이 필요했고, 질책받았다. 엄마가 좋아하는 행동이나 말을 연구하고 그것이 원래의 내 모습인 양 행동했다. 이것은 거의 시스템화 돼서 현재에도 타인과의 관계에서 필수적으로 취하는 전략 중 하나이다. 나는 나 자신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것에 극도의 불안감을 가지고 있다. 무시당하고, 질책받을 것이라 확신한다. 내가 제시하는 아이디어는 대부분 보잘것없고 시시한 것이라고 먼저 판단한다. 나는 있는 듯 없는 듯, 존재감 없는 사람이었다. 이는 20대 동안 연극 활동을 활발히 하면서 상당 부분 나아졌지만, 아이를 낳고, 긴 시간 고립된 육아를 하면서 다시, 나는 나를 잃어버렸다. 사람을 만나고 오면 피로감과 공허함을 느낀다. 연기하길 그만두고 싶지만 -내가 원하는 대로 말하고, 행동하고 싶지만- 압도적 두려움이 나를 일상 속 배우로 만든다. 대체로 이 전략은 좌절되고 만다. 거짓말은 언젠가 반드시 들통나듯, 거짓된 존재로서 살아가는 일 또한 결코 지속될 수 없다.
제스처가 충분히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
아기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행동을 하는 위험을 감수하지 않도록 배운다.
진짜 자아를 보호하기 위해 거짓 자아가 발달하는 것이다.
평범한 사회적 행동에도 약간의 거짓 자아가 깃들어 있다.
예컨대 우리는 예의를 지키고 타협하도록 배운다.
그러나 위니캇이 더욱 우려한 건 ‘진정 분리된 순응적 거짓 자아’였다.
예를 들면 ‘배우로 자라나는 아이’ 같이.
엄마는 실제로 자라서 배우가 되었다.
p98
내가 연극을 전공하고, 공연 작업을 하면서 텍스트 속 인물을 연기하는 동안 편안하고 안정감 있게 존재할 수 있었던 건 바로 이 때문일까?
엄마의 마음에 드는 나를 연기하는 일은 생존을 위한 투쟁이었다.
중학교 때부터 엄마가 내 삶에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전까지 나의 주양육자에 가까운 사람은 할머니였다. 나는 할머니를 사랑했고, 할머니도 나를 많이 사랑했다. 하지만 아빠와 오빠를 더 많이 사랑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중학교 때 첫 중간고사를 치르고 엄마에게 성적표를 보여줬을 때, 그때 엄마의 반응을 기억한다. 그때 우리가 서 있었던 각도를 기억하고, 그 시간 부엌의 조도를 기억한다. 엄마가 보였던 싸늘한 표정, 두 방망이질 치던 내 가슴을 기억한다. 엄마는 크게 실망했다. 나를 경멸하는 것 같았다. 엄만 내가 공부를 할 때에 미소 지어줬고, 기대했던 시험 성적이 아닐 경우 대략 2주에서 3주 간 나를 보지 않았다. 나는 마치 투명인간이 된 것 같았다. 난 엄마가 그리웠다. 가끔씩 날 보고 웃어주던 미소가 그리워 어색하게 먼저 말을 걸면, 차가운 단답형 대답만이 돌아와 무안해졌다. 가슴이 찢어지는 것만 같았다.
이 모든 게 부당하다고 느끼기 시작한 건 언제부터였을까? 아마 그때가 가장 삶을 놓고 싶었을 때였던 것 같다. 나는 스스로 원하는 미래가 있었다. 연극을 하고 싶었다. 중학교 2학년 때, 긴 시간 고민 끝에 엄마에게 연극영화과가 있는 예고에 진학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다. 돌아온 대답은,
“넌 네가 예쁘다고 착각하지 마.”
“헛바람 들어가지고. 탤런트는 아무나 하는 줄 알아?”
“이 세상에 자기가 좋아하는 걸 하고 사는 사람 거의 없어!”
지금 다시 돌이켜봐도 아프군.
고작 15살에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걸 받아들이는 건 지극히 절망스러운 일이다. 나는 더 이상 살아야 할 가치를 못 느꼈다. 비뚤어지기로 결심했다. “그렇게 원한다면 내가 사라져 주겠어!”라는 심정으로 엄마를 노려보고, 종종 방문을 쾅쾅 닫아 무언의 시위를 이어나갔다.
어쩌면 내가 죽지 않고 살아있는 건, 그때 미약하게나마 저항할 수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엄마의 기대에 부응하고 인정받기 위한 애씀을 지속하다, 결국 엄마를 만족시킬 수 없는 현실에 부딪혔을 때, 최후의 실행을 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 당시 나는 정확히 알고 있었다. 엄마가 틀렸다는 걸. 진로에 대한 나의 고민에 대해 얼굴을 마주하고 앉아 진지하게 대화를 나눴어야 한다는 걸. 설령 이 세상에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고 사는 사람이 거의 없더라도, 최소한 시도는 해봐야 한다는 걸. 중학교 성적 따위가 인생 전체를 좌지우지하진 않을 거라는 걸.
여기서 위니캇의 핵심 이론이 등장한다.
주체는 대상을 파괴해야 한다.
대상은 파괴에도 살아남아야 한다.
p273
마침내 나는 엄마를 파괴했고 엄마는 파괴로부터 살아남았다.
p291
나는 십 대 시절 엄마를 실컷 미워했다. 그에 못지않게 엄마도 나를 미워했을 것이다. 엄마는 그때를 떠올리면 이렇게 말하곤 한다.
“내 딸 같지가 않았어. 눈빛도 무서웠고.”
그러나 책 속 도널드 위니캇의 말처럼 ‘미움도 사랑의 일부’이다. 강연 중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충분히 좋은 엄마’는 아이가 “엄마 싫어!”라고 해도, 다시 돌아왔을 때 안아줄 수 있어야 합니다.” 엄마가 ‘공부 못하는 딸’을 경멸했던 건 사실인 것 같지만, 날 사랑하길 포기하지 않았었다는 것 또한 알고 있다. 나 또한 엄마를 지독하게 증오했지만, 그 이후로도 엄마의 사랑을 갈구했다.
아! 이 지독한 양가감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