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당탕탕 학교 밖 이야기
애자일(AGILE)이라는 단어의 의미는 ‘민첩한’, ‘기민한’, ‘빠른’이라는 뜻입니다.
프로그램 개발 영역이나, 조직의 특성에 접목해서 AGILE개발, AGILE조직이라는 단어가 탄생했죠.
애자일은 200년대부터 주목받기 시작한 소프트웨어 개발 방식인데, 계획이나 문서화 작업보다는 프로그래밍 과정에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고객의 피드백을 적극적으로 반영하고 개발 환경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게 특징이었으니깐요.
왜 뜬금없이 애자일을 이야기하는가 묻는다면 이게 대안학교에 적용할 수 있는 모델인가 하는 질문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학생의 즉각적인 의견을 반영해 커리큘럼에 반영하고 이를 수업으로 인정할 수 있을까?’
대안교육은 우리나라뿐 아니라 많은 나라에서 연구하고 있고 진행하고 있으며, 아직도 많은 실험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앨빈 토플러는 21세기 소멸할 첫 번째로 꼽은 게 학교였으며,
학교 없는 사회(이반 일리치)에서는 “학교는 불평등을 심화하고 배움의 자유를 억압한다”라고 말했죠. 이제 학교는 기회의 사다리를 제공하지 않으며 학교에 다닐수록 우리는 가난해지고 배움의 기회를 잃는다고 표현했습니다.
앞으로의 학교는 어떻게 변화될까요? 대안교육은 학교를 대체할 수 있는 기능을 수행할 수 있을까요?
많은 선각자들이 앞으로의 교육은 변화될 것이라고 합니다. 과연 무엇이 바뀌고 어떤 것은 변화지 않을 것인가 고민해 봅니다.
집단주의적 학교 시스템에서 개인은 철저히 소외당하고 무시당했습니다. 이로 인해 학교를 그만두는 학교 밖 청소년들이 생겨났죠.
미래교육은 결국 ‘개별화’에 기반을 둔 시스템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개별화는 생각보다 많은 예산이 들 수밖에 없습니다. 맞춤형 교육은 초기 비용이 많죠. 그러나 결국 교육은 개인에 맞추어져 갈 것입니다. 인공지능이 발달하고 사회가 변화되면 그 속도는 더 빨라지겠죠.
학력이 곧 능력이라는 공식은 예전에 깨져버렸고, 능력은 포트폴리오 등을 통해 보여주는 날이 오겠죠. 학교 밖 청소년들이 대학진학에 대한 고민을 가지면 ‘대학에 진학하는 것 이상으로 내가 앞으로 무엇을 하고 싶은지 고민해라’고 합니다. 아직 경험이 부족한 청소년들에게 더 많은 경험을 통해 ‘나답게’ 살아가는 방법을 보여주어야겠죠.
얼마 전 읽은 김영하 작가의 작별인사에는 이런 대화가 적혀 있었습니다.
“정말 미래는 알 수 없는 거네요.”
“미래는 알 수 없다는 것도 확실한 사실은 아니야.”
“그게 무슨 뜻이에요? 그럼 미래를 알 수도 있다는 거예요?”
“그건 ‘미래’라는 말이 뭘 의미하느냐에 달렸어.”
우리 아이들에게 미래는 뭘 의미할까요, 앞으로 우리가 해야 될 고민이지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