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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사랑노래 : 이웃의 한 젊음이를 위하여

시 읽어 주는 동동이

by 동동이

가난하다고 해서 외로움을 모르겠는가
너와 헤어져 돌아오는
눈 쌓인 골목길에 새파랗게 달빛이 쏟아지는데.


가난하다고 해서 두려움이 없겠는가
두 점을 치는 소리
방범대원의 호각소리 메밀묵 사려 소리에
눈을 뜨면 멀리 육중한 기계 굴러가는 소리.


가난하다고 해서 그리움을 버렸겠는가
어머님 보고 싶소 수없이 뇌어 보지만
집 뒤 감나무에 까치밥으로 하나 남았을
새빨간 감 바람소리도 그려보지만.


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
내 볼에 와 닿던 네 입술의 뜨거움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속삭이던 네 숨결
돌아서는 내 등 뒤에 터지던 네 울음.


가난하다고 해서 왜 모르겠는가
가난하기 때문에 이것들을
이 모든 것들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어느 겨울밤, 달빛이 가득 내려앉은 골목길을 거닐어본 적이 있으신가요?
발 아래 소복이 쌓인 눈을 밟을 때면, 본래라면 “아, 예쁘다” 하고 감탄할 법한 순간인데도 마음 한구석이 쓸쓸해질 때가 있습니다. 시 「가난하다고 해서 외로움을 모르겠는가」를 읽으면, 바로 그 겨울밤 풍경이 떠오릅니다.


시인은 가난이 단순히 돈이 없는 상황이 아니라, 사랑과 그리움, 외로움마저도 포기하게 만드는 벽이라고 말하는 듯합니다. 실제로 시 속 남자는 가족을 책임져야 한다는 이유로, 결국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고 말죠. 여인은 그를 배려하며 비용이 덜 드는 데이트를 하고, 마음을 다해 함께하려 애썼지만 끝내 마음의 짐을 내려놓지는 못합니다. “가난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두 사람 모두 지쳐버린 것입니다.


그런데 가난을 이유로 모든 것을 단념해야만 할까요? 저는 청소년 상담 활동을 하면서, 경제적으로 힘든 상황에서도 자신의 삶을 포기하지 않고 버티는 아이들을 자주 만나곤 합니다. 저 역시 가난과 맞선 경험이 있습니다. 작가이자 크리에이터로 살겠다는 꿈을 꾸면서도, 한동안 안정된 수입 없이 하루하루를 근근이 버텨야 했습니다. 그때는 좋아하는 글을 쓰는 일조차 사치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러나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비록 형편은 어렵더라도 마음속에 작은 빛을 품고 사는 친구들이 많습니다. 그들은 제가 건네는 한마디 위로에 눈을 반짝이며, “그래도 할 수 있죠, 선생님!” 하고 말하곤 합니다. 그 모습을 볼 때면, “가난이 삶의 전부는 아니구나. 오히려 이 어려움 속에서도 꿈꿀 힘이 있구나” 하고 깨닫게 됩니다.


그렇다고 해서 가난이 개인의 노력만으로 극복될 수 있다는 뜻은 아닙니다. 통계청 발표나 여러 지표를 보면, 가난은 분명 구조적인 문제이고, 사회가 함께 해결해야 할 과제입니다. 금수저·흙수저로 불리는 현실 속에서, 우리는 종종 가난한 이웃들을 “노력 부족”으로 치부하곤 하죠. 하지만 그렇게 외면한다면, 결국 또 다른 이별과 포기, 눈물이 반복될 뿐입니다.


저는 “가난하다고 해서 외로움을 모르겠는가”라는 문장을 접할 때마다, 아이들과 나눴던 대화를 떠올립니다. 그 중 한 아이가 이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선생님, 가난하면 힘든 건 맞지만, 그래도 제가 꿈꾸는 건 제 마음이니까 포기 안 해요.”
어쩌면 그는 시 속 남자와 달랐던 거겠지요. 사랑을 붙들진 못했지만, 그래도 꿈만은 붙잡고 싶어 하는 마음. 저는 그 의지를 보며, “결국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건 희망을 함께 만들어줄 응원과 제도적 뒷받침이 아니겠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만약 시 속 남자도 충분한 지원과 기회가 있었다면, 여인과의 사랑을 지키려는 시도를 좀 더 해볼 수 있었을 겁니다. 아플 때 마음 놓고 병원에 갈 수 있고, 배우고 싶을 때 교육받을 수 있고, 중요한 일을 결정할 때 최소한의 안전망이 보장된다면, “가난하니 이 사랑을 버려야겠다”는 말은 조금 덜 절박했을지도 모릅니다.


가난은 죄가 아닙니다. 애초에 부끄러워해야 할 대상도 아니지요. 다만, 가난한 이들에게 기회를 열어주지 않는 사회가 진짜 부끄러운 것입니다. 우리는 사랑을 포기하는 사회가 아니라, 가난 속에서도 서로 지지해주며 “함께 이겨내자”고 말할 수 있는 사회를 꿈꿔야 합니다. 작가로서, 그리고 청소년을 돕는 사람으로서, 저는 계속해서 이 메시지를 전하고 싶습니다. “가난하기 때문에 모든 걸 포기하라는 건 지나치게 가혹하지 않을까요?”


어느 날, 이 질문이 많은 사람의 가슴을 울려서, 가난 때문에 울고 있는 누군가가 더 이상 사랑을 내려놓지 않아도 되는 날이 오길 바랍니다. 그때 달빛 쏟아지는 골목길은 어쩌면 더는 쓸쓸하지 않고, 작은 희망의 불빛으로 반짝일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서로를 지켜주는 사회를 함께 만들어가길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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