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료가 숙제를 주고 퇴사했다.

퇴사 면담 시 눈물을 보인 그녀를 통해 발견한 숙제들

by 애론

최근 7개월 동안 함께 일했던 파트타임 동료가 퇴사를 했다.

잠깐 휴학을 하고 아르바이트로 근무를 했었고, 아직은 어린 나이인지라, 학교로 돌아간다고 했다.

(무려 '2000년생'이다. 이쯤 되면 다들 질문이 하나 떠오를텐데... 2002년 월드컵 기억 안난다 하더라.)


몇 개월 동안 많은 도움을 받았고, 그동안 정도 들었다. 그리고, 조직장이지만 바쁘단 핑계로 잘 케어해주지 못했던 부분이 맘에 많이 걸렸다. 그래서 퇴사하는 날 잠깐 둘이서 이야기를 했다.


앞으로의 계획을 듣고, 지금까지 그녀가 회사에, 우리 조직에, 업무적으로, 업무 외적으로 기여했던 부분을 다시 이야기하고, 좋았던 부분, 아쉬웠던 부분 등 서로 간의 이야기를 하였다.


그리고, 앞으로 그녀의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덕담을 하였고, 그녀는 갑자기 눈물을 보이기 시작했다.




사실 그녀에 대하여서는 조금 걱정스러운 부분이 있었다.


작년에 그녀의 포지션 면접을 볼 때, 많은 면접을 진행했지만, 결과가 좋지 못해서 많이 걱정하고 실망을 했었다. 그러다가 거의 후보자들 중 마지막 순서로 그녀를 보았고, 2000년생임에도 불구하고(아니 2000년생이었기 때문이었을까?) 엄청난 자신감으로, 전혀 주눅 들지 않고 자유롭게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고, 역으로 허를 찌르는 질문을 해서, 면접관인 나를 살짝 땀나게 했었다. 자연스럽게 그 면접이 끝나고 바로 채용을 결정했고, 우리는 함께 일을 하게 되었다.


함께 일을 하게 된 이후, 당연하게도 그녀의 자신감은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 부분은 처음부터 예상했던 부분으로, 다른 곳에서 사회생활을 경험했다고는 하지만, 정말 잠시 동안의 경험이었을 것이고, 아직은 어린 나이인지라, 경험을 통해 온전히 습득을 하지는 못했을 것이라 생각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타고난 자신감은 본인이 감추고 부정하려 해도, 자연스럽게 드러나게 되기 마련이고, 그 부분이 조직에 신선한 영향을 끼칠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 낙차는 생각보다 꽤 컸고, 나중에는 그녀의 떨어진 자신감에 걱정이 되었다. 걱정스러울 정도였다. 그 좋은 성향을 갖고 있었는데, 우리 회사를 와서, 그리고 내 조직에 와서 그녀의 자신감이 한없이 밑으로 떨어져 가고 있다니. 당장 현재의 이슈가 아니라, 앞으로 그녀의 삶에서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걱정을 했다.


그래서 마지막 이야기를 나눌 때, 이 부분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주었다.

"처음 E를 보았을 때, 자신감이 너무 좋았었어요. 그런데 우리와 함께 생활을 하면서, 그 자신감이 많이 줄어든 것 같아서, 개인적으로는 많이 걱정이 됩니다. 본인은 충분히 역할 이상을 잘해주었으니, 절대 자신감을 잃지 마세요."


이 얘기를 듣더니 그녀가 갑자기 눈물을 보이기 시작했다. 아마도 본인도 느꼈을 것이라 생각한다. 자신감이 많은 사람은, 본인이 그것을 알고, 항상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한다. (노력이 없는 자신은 금방 깨지기 마련이다.) 이는, 본인의 자존감으로도 이어질 것이고, 자신의 자신감이 떨어지는 것을 느꼈을 때, 본인의 자존감이 얼마나 떨어졌을지 모르는 바가 아니다.


나도 작년에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회사생활에서 자존감 하나로 버텼던 내가, 여러 상황적 이유로 그것을 지키지 못하였을 때,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았었고, 내 자신이 너무나 초라해졌었던 기억이 있다.


아마도 그녀는 처음으로 이런 일을 겪었을 것이다.

사회생활에서의 동료들과의 관계. 처음 입사할때는 회사의 수평문화에 대한 장점과 여러 설명을 들었겠지만, 실제로 그렇지 않았던 내부의 상황들이 있었을 것이다. 업무에 대한 책임. 업체와의 협상과 그들의 실수로 인한 본인 프로젝트의 실패. 사실 파트타임인 그녀에게 맡길 수 있는 일들은 한정지어져 있으나, 내부 리소스가 많이 부족한 상황인지라, 그녀의 멘탈이면 충분히 이겨낼 수 있고, 어려우면 자신 있게 도움을 요청했을 것이라고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그녀는 이제 겨우 스물 하나둘을 넘긴 대학생이었고, 이러한 부담감은 생각보다 컸던 모양이다.


눈물 찔금 정도의 수준이었을 것이라 생각했던 그녀가 어린아이처럼 엉엉 우는 것을 보니, 당황하기도 했지만, 나도 코끝이 찡했다. 얼마나 힘들었을지 말 안 해도 알 것 같았다. 나는 얼른 그녀를 진정시켜주고, 그녀와 친한 동료를 보내서 마음을 가다듬게 하고, 업무 종료시간에 맞춰서 작별 인사를 하고 보내 주었다. (마지막에 그녀가 떠날 때 옆 부서의 동료가 잘 가라며 박수를 쳐주었는데, 거기서 한번 더 펑펑 울었다.)


이후에 이 에피소드를 생각해보며, 과연 내가 역할을 잘하고 있는 것일까 되묻게 되었다. 상황상 어쩔 수 없었다지만, 사실 너무 벅찬 일을 맡긴 것도 사실이었다. 또, 수시로 면담을 하고 어려운 점은 없는지를 물어봤었더라면 더 나아질 수 있었을 것이다. 수평 문화인 회사 문화가 얼마나 우리 조직에 잘 이식이 되어있는지의 점검도 필요했다. 그냥 봤을 때는 모두 친하게 잘 지내보였지만, 조금 더 깊게 살펴봐야 했었던 것 같다.




그녀는 떠났고, 새로운 동료가 들어왔지만, 그녀의 마지막 모습은 나에게 많은 숙제를 남겨주었다.


우리 회사는 수평 문화를 추구하고, 영어이름을 쓰면서 서로를 존중한다. 하지만 처음에 1~2백명일때는 잘 작동하던 이 문화가 3,000명 이상이 된 지금의 상황에서는 작동이 쉽지 않다. 보수적인 회사에서 온 동료들은 머리로는 이 문화를 이해해도, 몇년동안 몸에 밴 상하관계를 쉽게 버리지 못한다. 이에서 나타나는 동료 관계의 문제는, 회사가 수평 문화를 이야기 하기에 앞서, 새로운 구성원들이 이 문화를 이해하고 습득하게 하는 노력을 간과한 댓가라고 생각된다. 리더들 또한 각 조직을 운영할 때 이 부분을 수시로 이해시키려는 노력을 게을리 하면 안되는 것이다.


또 우리는 각 담당자들의 의견을 최대한 존중한다. 이는 이슈에 대하여 담당자가 가장 많은 고민을 갖고 다각도로 검토를 하므로, 가장 정답에 가까운 결정을 내릴 수 있다는 생각에 기인한다. 그 안에서 리더들은 경험과 회사의 상황등을 고려하여 담당자의 안을 조정하면서 업무를 진행한다. 하지만 이러한 업무방식은 경험없는 동료들에게는 매우 부담스러운 상황이 될 수 있으며, 너무 깊게 빠져든 고민으로 인해, 조직내에서의 의견 조율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되기도 한다.


현재 내부적으로 업무적으로 리소스가 부족한 상황에서, 당장 떨어진 일을 쳐내기 바쁘다는 핑계로, 위의 얘기한 부분에 있어, 큰 문제가 아니라고 간과하게 되지 않았을까 하는 반성을 하게 되었다. 어찌되었건 떨어진 일들을 잘 처리해내고 있고, 다른 조직에 비해 많은 일을 성공적으로 이뤄내고 있기에, 우리 조직은 문제없이 건강한 조직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또한 나는 이 회사에서 오랫동인 문화를 경험하고, 즐겨왔기에 우리 조직 또한 이러한 회사 특유의 DNA를 자연스럽게 물려받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현재의 시점에서 돌아본 조직의 모습은 내가 생각했던 그러한 모습과는 상당부분 차이가 있어 보였다. 솔직히 개인적으로는 이러한 모습은 충격적이었고, 나에게 많은 생각과 고민을 안겨주었다.




올해는 그녀가 남겨준 숙제를 좀 해보려 한다. 지금 노력하지 않으면 향후에 더욱더 큰 어려움으로 올 수 있을 것으로 보여졌다. 당장 쉽게 해소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겠지만, 여러가지의 방법을 가지고 꾸준히 노력해서 개선해야하는 일로 보인다.


시간이 조금 지나면, 그녀에게 안부 연락을 해줘야겠다.

"우리 조직에 여러 불안한 부분이 있었는데, E 덕분에 문제점을 깨닫고 고쳐나가고 있어요. 고마워요."

그러면 그녀가 조금이나마 떨어진 자신감을 회복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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