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씸파파 SYMPAPA Jul 18. 2018

#2. '빠'미니즘, 서로에 대한 이해

"아빠도 이제 어른이 될게" - 아빠 육아 생각


육아휴직 후 자기계발 차원에서 시작한 영어토론 모임에 참석했는데 그곳에서 멤버들과 '린인(Lean In, 셰릴 샌드버그 저)'이라는 책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그리고 끝나고 그 길로 서점의 페미니즘 코너에 가서 두 권의 책을 구입했다. 그 두 권의 책을 읽으면서 나는 과거 나의 어떤 경험과의 연장선상에서 일종의 기시감 같은 것을 느꼈다.


두 권의 책 모두 쉽게 읽히는 가벼운 분량의 책이었지만, 내용만큼은 결코 가볍지 않게 다가왔다.


나는 최근에 내가 그동안 대한민국의 전형적인 가부장제 시스템에서 지난 40년 가까이를 어떤 의문도 없이 살아왔음을 깨달았다. 그것도 스스로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그 문화에 흠뻑 젖어 있었음을 이제야 느낀 것이다.


언제부터였을까를 생각해보면, 추측컨데, 결혼 전 우리 가족 가부장제의 중심이셨던 아버지를 여의고, 나의 중심이 아내와 딸로 옮겨진 최근의 일이 나에게 그와 관련한 많은 생각을 하게 해 준 듯하다. 그와 더불어, 최근 사회적으로 이슈가 된 이른바 '페미니즘', '미투 운동' 등의 뉴스도 영향을 주었던 것 같다.



그동안 대한민국의 전형적인 가부장제 시스템에서 그 어떤 의문 조차 없이 살아왔음을 깨달았다.
그것도 스스로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그 문화에 흠뻑 젖어 있음을......



이미 가부장제 시스템에 흠뻑 젖은 채로 잔잔했던 나의 자아에 첫 번째 '돌'을 던진 것은 내 아내와의 결혼이었다.


1남 1녀 중 장녀로 자란 내 아내는 전형적인 '82년생 김지영' 세대이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내 아내는 우리 사회의 '유리 천장'을, 적어도 가정이라는 울타리 내에서는 느끼지 못하고 자랐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우리나라 여성들만이 느낄 수 있는 그 가혹한 한계와 좌절을 가정이라는 최소 단위의 울타리만 넘어서도 바로 마주할 수 있었다.


그런 아내와 나이기에, 우리는 3년 연애 때와는 달리 결혼하고 1년 간은 많이 다퉜다. 여느 부부들처럼 서로 다른 환경에서 살아온 문화적인 차이를 좁히기 위해 많은 대화와 이해가 필요했다. 특히 그 다툼의 중심에는, 서로가 표준이라고 생각한 각자의 기준인 '성 역할'이 있었던 것이다. 나는 남자니까 '당연히'였지만 내 아내에게는 '당연한 것이 아닌' 것들이 많았다.


사회생활 초년생 시절부터 매년 오른 겨울 태백산. 부친상을 치룬 다음 해 겨울에는 고맙게도 아내가 함께 해주었다.


두 번째 나의 가부장제 "호수"에 던져진 '돌'은 우리 딸과의 만남이었다.


감수성이 예민한 딸, 그것도 '감수성이 예민한 아빠'인 나를 닮은 딸이기에 우리 부부는 무엇보다도 '아이의 정서 안정'에 가장 관심을 기울이는 편이다. 관심사가 그렇게 바뀌다 보니 세상을 바라보는 내 관점에도 변화가 생겼다. 그중에서도 내 주변 가장 가까운, 그리고 나와 같은 세대를 살아온 딸인 아내와 내 여동생의 과거와 현재를 관찰하게 되었다.


같은 공간에서 같은 교육을 받으면서도 여전히 우리 사회에 잔존한 보이지 않는 '장벽'이, 분명 그들이 자라온 곳곳에 지뢰처럼 널려 있었다. 대한민국에서 아들로 태어나, 그것도 장남으로 태어난 내가 가정에서, 학교에서, 그리고 회사에서 당연하게 숨 쉬듯 누리던 것들이 그들에게는 당연하지 않은 것이었다. 그리고 그 장벽은 학생 신분을 벗어나 사회생활에 가까워질수록 점점 더 잔혹하고 명료해진다.


따라쟁이 SYM


마지막 세 번째 '돌'은 나의 직장 생활이었다.


이 시기에 나는 내면의 충돌이 일어남을 경험하면서, 지난 40년 가까이 만들어진 내 가치관에 큰 파장이 일어났음을 알게 되었다. 다시 말해, 머리와 가슴은 잘못되었음을 알고 있는 듯했지만, 내 안 어딘가에 깊숙이 자리 잡은 나의 무의식에서 비롯된 행동은 여전히 당연하지 않은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있었던 것이다.


남성 직장 동료, 선후배들과 당연하게 느끼며 행동하던 것들이 여성 직장 동료들과 함께 할 때는 그렇게 느껴지지 않았다. 남자 상사들이 무심코 내뱉는 가부장적 언어들이 자연스러우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불편했다. 나는 우리 딸에게 네가 커서 되고 싶은 것은 스스로 원하고 노력하면 무엇이든 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회사에서의 나의 일은 남자만이 잘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모순 덩어리'인 내 모습을 보게 되었다. 그리고 그 일을 보란 듯이 성취해내는 여자 동료들을 보면서 인정하지 않으려 하는 찌질함에 까지 이르러서야 비로소 '인지부조화'가 내 안에 있음을 깨달았다.


그 밖에도 그러한 여러 가지 내 안의 모순들이 나를 힘들게 했다. 특히 딸을 보고 있을 때면 더욱 그랬고, 아내가 직장에서 남들에게 그런 대우를 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면 화가 나는 동시에 미안했다.   



'82년생 김지영'이라는 책이 이슈가 되고, 심지어 아내가 "오빠도 한번 읽어 봤으면 좋겠어."라고 할 때에도 솔직히 별로 끌리지 않았다. 대부분 많은 사람들, 남성들 뿐만 아니라 여성들도 그렇게 느낄 것이라고 생각되지만 '페미니즘'이라는 단어 자체의 어감이 좀 '쎄게' 느껴졌다. 무언가 그냥 남자로 태어난 것 자체가 죄라고 몰아붙이는 것 같고, 모든 한국 남자를 '잠재적인 성범죄자' 취급하는 듯하여 적개심까지 느껴지게 하는 그 단어에 거부감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나는 소설 속 김지영의 남편이고, 아빠이고, 아들이며, 그리고 직장 동료 또는 거래처였다. 결국 나도 김지영이 행복해야 행복할 수 있는 '인간'이고 '가족'인 것이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나는 소설 속 김지영의 남편이고, 아빠이고, 아들이며, 그리고 직장 동료 또는 거래처였다. 결국 나도 김지영이 행복해야 행복할 수 있는 '인간'이고 '가족'인 것이다.



같은 시간이지만 완전히 다른 공간에서의 생활은 가족 서로 간의 '공감 지점'을 점점 멀어지게 만든다는 것을 나는 이번 육아휴직을 통해 느꼈다. 서로 이해하고 공감하지 못하면 그냥 방관하게 되고, 그런 가족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각자의 영역에 고립되어 외로워질 수밖에 없다. 그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가족 밖에서 무엇인가를 찾아 헤매게 되고, 그렇게 살다가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못한 시간들을 아쉬워하면서 세상을 떠난다. 우리의 아버지들처럼......


세상 그 무엇보다 가장 소중한 우리의 가족을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 나는 그러한 아빠들의 노력을 '빠미니즘'이라고 부르고 싶다.



세상 그 무엇보다 가장 소중한
우리 가족을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
나는 그러한 아빠들의 노력을
'빠미니즘'이라고 부르고 싶다.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sympapa_aaron






매거진의 이전글 #1. 우리 가족의 '회복탄력성'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