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김영하 소설은 한번도 읽지 않은 사람의 후기
"왜냐하면 어른들의 바람은 늘 그런 식이기 때문입니다. 대학만 들어가라, 졸업만 해라, 결혼만 해라, 아이만 하나 낳아라, 그다음부터는 네 마음대로 살아라. 하지만 아무 조건도 없이 하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그날'은 결코 오지 않습니다. (p.18)"
"비관적 현실주의는 인상을 쓰고 침울하게 살아가자는 게 아닙니다. 현실을 직시하되 그 안에서 최대한의 의미, 최대한의 즐거움을 추구하자는 것입니다. 이러한 비관적 현실주의에는 개인주의가 필수적입니다. 집단은 어딘가로 쏠리게 마련입니다. (p.24)"
"비관적 현실주의를 견지하려면 남과 다르게 사고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나치 수용소에서 면도를 하는 사람들이 과연 다수였을까요? 아닙니다. 대부분 수감자들은 헛된 소문들에 휩쓸려다녔습니다.(p.26)"
"저는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비관적 현실주의에 두되, 삶의 윤리는 개인주의에 기반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남과 다르게 생각하는 것, 남이 침범할 수 없는 내면을 구축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자기도 모르게 타인에게 동조될 때, 경계심을 가져야 합니다. 이러한 개인주의를 저는 건강한 개인주의라고 부르고 싶습니다.(p.28)"
"견고한 내면을 가진 개인들이 다채롭게 살아가는 세상이 될 때, 성공과 실패의 기준도 다양해질 겁니다. 엄친아나 엄친딸 같은 말도 의미를 잃을 것입니다. 자기만의 감각과 경험으로 충만한 개인은 자연스럽게 타인의 그것도 인정하게 됩니다.(p.35)"
"제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미래는 우리 모두가 다중의 정체성을 갖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정체성 중의 하나는 예술가였으면 좋겠습니다. 언젠가 뉴욕에서 택시를 탔더니 좌석 앞에 웬 배우 프로필이 붙어 있더군요. 알고 보니 그 택시 기사는 연극배우였습니다. 무슨 배역을 연기했었느냐고 묻자 당당하게 리어 왕이라고 말하더군요. 리어 왕의 명대사가 생각나는 순간이었습니다.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 택시 기사이면서 연극배우, 은행원이면서 화가, 골프선수이면서 작가인 세상이 제가 그리고 있는 미래입니다. (p.77)"
"자기 것이 점점 사라져가는 현대에 독서가 중요한 이유는 바로 거기에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나, 고유한 나, 누구에게도 털리지 않는 내면을 가진 나를 만들고 지키는 것으로서의 독서. 그렇게 단단하고 고유한 내면을 가진 존재들, 자기 세계를 가진 이들이 타인을 존중하면서 살아가는 세계가 제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세계의 모습입니다. 하루의 일과를 마치면 조용히 자기 집으로 돌아가 소박하고 맛있는 저녁식사를 마친 후, 자기 침대에 누워 어제 읽던 책을 이어서 읽는 삶. 자기 서재와 마음속에서만큼은 아무도 못 말리는 정신적 바람둥이로 살아가는 사람들. 이런 세상이 제가 꿈꾸는 이상적 사회입니다. (p.181)"
"소설을 통해서 획득한 타인에 대한 이해를 기반으로 실제의 인간과 만날 수 있게 됩니다. (p.172)"
"역사상 수많은 걸작들이 본래 금서였다. (p.136)"
"자기 내면의 어떤 억압들, 부모로부터의 억압, 학교로부터의 억압, 성적인 억압, 이런 것들을 토로하고 폭로하는 과정에서 글쓰기의 진정한 기쁨이 나온다. (p.136)"
"소설의 '비경제성의 경제성'에 대해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영화가 정말 경제성만으로 이루어진 군살 없는 매체라며느 소설에는 그것과는 다른 '비경제성의 경제성'이 요구되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불필요한 것들, 우회나 잉여가 야기하는 효과인 거지요. 그런 것을 잘 구사하기 위해서라도 서사적 리듬에 대한 감각이 필요합니다. 그래야 그것을 어떻게 늦출 수 있는지도 알게 되니까요. 영화의 경제성이 갖는 한계와 달리 소설이 허용하는 잉여, 이게 얼마나 중요한 건지 알게 되는 거지요. 이거이야말로 문학이 가진 중요한 장점이구나, 하는 생각을 새삼하게 됩니다. 소설에서는 꼭 필요한 부분과 꼭 필요하지 않은 이런 잉여들을 어떤 리듬으로 엮어야 하는가, 그런 부분에 대해서 고민하게 됐습니다.(p. 97)"
"하나의 블록을 복사하여(CTRL+C) 한없이 따붙인(CTRL+V) 것 같은 단지의 구조는 어린아이들이 길을 잃기에 딱 좋았습니다. 똑같은 놀이터, 똑같은 가로수, 똑같은 건물.(p. 96)"
"사람들은 그 어떤 엄혹한 환경에서도, 그 어떤 끔찍한 상황에서도, 그 어떤 절망의 순간에서도 글을 씁니다. 그것은 왜일까요? 글쓰기야말로 인간에게 남겨진 가장 마지막 자유, 최후의 권능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을 빼앗긴 인간도 글만은 쓸 수 있습니다. 눈꺼풀만 움직일 수 있는 사람도 글은 쓸 수 있습니다. 인간성의 밑바닥을 경험한 사람도 글만은 쓸 수 있습니다. 정신과 육체가 모두 파괴된 사람도 글만은 쓸 수 있습니다. 거꾸로 말하자면, 글을 쓸 수 있는 한, 우리는 살아 있습니다. 죽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완전히 파괴되지 않았다는 것 입니다. 글을 쓴다는 것은 한 인간을 억압하는 모든 것으로부터 자기 자신을 지키는 마지막 수단입니다. 그래서 예로부터 압제자들은 글을 쓰는 사람들 두려워했습니다. 그들은 본질적으로 굴복을 거부하는 자들이니까요.(p. 56)"
"글쓰기는 우리 자신으로부터도 우리를 해방시킵니다. 왜냐하면 글을 쓰는 동안 우리 자신이 변하기 때문입니다. 글을 쓰기 전까지 몰랐던 것들, 외면했던 것들을 직면하게 됩니다.(p. 57)"
"글쓰기를 통해 고통스러웠던 기억과 바로 대면하기 시작(p. 57)"
"소설을 많이, 깊이 읽는 사람은 그러지 않은 사람보다 다양한 인물을 알고 있는 사람, 겪어본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당연히 이런 사람들은 그러지 않은 이들보다 타인의 감정을 잘 이해하고 공감하고 예측할 수 있을 겁니다. 뉴욕 뉴스쿨 대학 심리학과의 연구에 따르면, 소설 중에서도 사건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소설보다 인물 묘사에 집중한 소설을 읽는 이들이 훨씬 더 타인에게 깊이 공감하고 그들의 의도를 잘 읽어낸다고 합니다. (p.158)"
"진짜 깊은 수준의 소통은요, 대화로는 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소설은 인간과 인간이 정말 깊은 수준의 교감과 공감을 하게 해줍니다. 먼저 작품 속 인물들과 소통하는 거예요. 제가 겪은 가장 깊은 소통은 동료 작가와의 만남에서 경험한 적도 없고 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서 경험한 적도 없어요. 고요이 혼자 집에서 읽은 책의 내용과 거기 나오는 인물들, 그러니까 책 자체와 소통했던 순간이었어요. (p.1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