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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살리아 Dec 05. 2017

#23. 프라하

당신의 몰입을 이끌어내는 이야기


밤의 프라하는 더욱 아름답다. 소소한 골목길을 누비며 강가로 나가면, 강 너머 프라하 성의 노란 불빛이 어둠 속에서 신비로운 보물처럼 반짝인다. 보랏빛 밤하늘과 완벽한 대조를 이룬다. 한 낮에는 절대 볼 수 없는 색감이다. 사실 강 너머의 야경을 감상하는 것보다 더 운치 있는 것은 밤의 까를교를 걷는 것이다.


많은 이들이 프라하성에 매료되어 등지고 있는 곳에, 연둣빛 비경이 숨어있다. 오웬과 에지가 까를교 위에 함께 있었다. 모두가 프라하성을 바라보고 걷는 다리 위에서 그들은 반대방향으로 걷고 있었다.


“춥지 않아?”  

                                 

“아니. 따뜻해.”


“응?”


“자기 손. 너무 따뜻해.”


에지의 말에 오웬은 미소를 보이며, 잡고 있던 그녀의 손을 자신의 코트 주머니 속에 넣었다. 그런 오웬의 행동을 가만히 지켜보던 에지가 다시 입을 열었다.


“아까 낮에 바츨라프 광장에서 봤던 길거리 공연 있잖아.”


“맨발에 탱고?”


“응. 그 많은 사람들이 구경하는 광장에서 몰입하면서 맨발로 추는 모습, 너무 멋있었어. 마치 그 공간에 자신과 자신 앞에 서있던 파트너만 있었다는 듯이……”


“두 남녀, 분명 연인사이지 않았을까?”


“글쎄. 그 순간만큼은 서로 사랑하는 사이처럼 춤을 췄던 거 같긴 해.”


에지의 대답에 오웬이 손바닥을 펴 에지 앞에 내밀며 물었다.


“Shall we dance?”

(우리 춤출까요?)


에지는 주변을 한 번 둘러보고는 오웬의 손위에 자신의 손을 살며시 올렸다. 그가 그녀의 손을 잡고 자신 쪽으로 바짝 잡아당겼다. 가까이 얼굴을 맞댄 두 남녀의 팔이 자연스럽게 서로의 얼굴을 감쌌다. 에지가 웃으며 말했다.


“아까보다 더 따뜻해졌어.”


오웬의 한 쪽 팔이 에지의 허리를 감싸 안아 부드럽게 들어 올렸다. 에지의 들린 두발이 살포시 오웬의 발 위에 안착했다. 두 사람은 뒤뚱거리며 발을 맞추었다. 발 뿐만아니라, 서로의 눈을 맞추며 카를 위를 걸었다. 에지의 웃음소리가 오웬의 귀에 선명하게 들려왔다.


“어? 오웬, 저기 가보자!”


에지가 오웬의 발 위에서 내려와 그곳에 있던 한 동상 앞으로 다가갔다. 오웬은 그녀의 웃음소리가 사라진 공간에 아쉬움을 느꼈다. 동상 앞 서있던 그녀를 뒤에서 감싸 안았다. 에지의 옆머리에 입맞춤하며 그의 아쉬움을 대신했다.


“저기 봐봐, 오웬. 사람들이 하도 만져서 저기만 금빛이야!”


에지의 한 손은 자신을 감싸 안은 오웬의 팔을 잡고, 다른 한 손으로 동상 왼쪽 아래의 한 부분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갑옷을 입은 기사와 그 앞에서 무릎을 굽히고 기사를 바라보고 있는 충견의 모습이 조각되어 있었다. 다른 조각상은 녹이 쓴듯한 고철덩어리로 보였으나 충견의 모습만큼은 금빛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나도 너를 계속 만져서 금빛으로 빛나게 해줄께!”


오웬이 에지의 머리와 어깨를 장난스럽게 쓰다듬었다.


“이 동상 유명한 건가?”


에지의 물음에 그제서야 오웬이 장난을 멈추고 동상을 제대로 보았다.


“얀네포무츠키 동상이네. 저기 매끄러운 부분을 만지면 소원이 이뤄진대. 근데, 그 소원은 평생 한 번만 빌 수 있대.”


오웬이 에지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진짜? 에이, 그럼 난 다음에 와서 소원 빌어야겠다.”


“…”


“근데 오웬, 저 동상은 십자가를 품고 있네. 신부였나 봐?”


“당시의 왕비가 이 사람한테 고백성사를 봤었대. 왕은 왕비의 비밀을 알고 싶어서 이 사람을 불러다가 물었다는 거야. 근데 그는 끝까지 왕비의 비밀을 지켰대.”


“그래서?”


“결국 왕의 손에 죽임을 당했지. 죽음 앞에서도 왕비의 비밀을 지킨 거야.”


“얀네포무츠키…… 혹시 왕비를 사랑했던 걸까?”


오웬은 대답 대신 에지를 더 꽉 안았다. 프라하 까를교 위의 강바람이 세차게 불어왔다. 다리 위를 걸어가는 많은 사람들이 불어오는 바람에 몸을 잔뜩 웅크리고 지나갔다.


“그만 방으로 돌아갈까?


오웬의 말에 에지가 동상에 시선을 고정한 채 고개를 끄덕였다. 인파 속에서 두 남녀가 순식간에 자취를 감추었다.




‘아침에 산책하다가 예뻐서 샀어. 10시 전에 돌아올게. -오웬’


침대 옆에 푸른 잎의 화사한 꽃이 놓여있었다. 막 잠에서 깬 에지는 오웬이 남긴 메모를 보고 미소 지었다. 아침 잠이 많은 에지는 늘 비슷한 패턴대로 오웬의 공백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그가 돌아오기까지 고작 20분이 남아 있었다. 에지는 그가 오기 전에 이 예쁜 꽃을 꽃병에 꽂아 두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침구를 정리하고 꽃을 들고 방을 나섰다.


“dobré ráno”

(안녕하세요.)


에지는 옆방에서 나오던 백발의 할머니에게 아침인사를 했다. 간단한 인사말은 늘 현지의 언어로 얘길 나누는 오웬으로부터 배웠다. 에지의 인사에 그녀가 반갑게 대답했다.


“굿모닝! 꽃이 예쁘네!”


“선물 받았어요. 예쁘죠?”


“로벨리아.”


“로벨리아?”


“그 꽃 이름이야.”


“아하. 로벨리아. 이름도 예쁘네요!”


“예쁜 꽃이지. 그렇지만 꽃말은 불신, 원망, 위기의 시작을 의미해.”


“정말요?”


“물론, 선물 준 사람은 사랑스러운 당신한테 모르고 줬겠지.


에지는 그녀의 말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백발의 할머니로부터 전해 들은 얘기를 오웬이 돌아오면 들려줘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날 일은 그녀에게는 별로 중요치 않은 해프닝일 뿐이다. 그러나 에지는 오웬에게 말하지 못했다. 그 일을 까마득하게 잊어버렸다.




당신의 몰입을 이끌어내는 이야기

트래블러: 죽음에는 차별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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