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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살리아 Nov 17. 2019

로이와 오웬

 샌프란시스코의 밤공기는 낮과는 사뭇 다르다. 따스한 햇살이 달빛에 가려지면 바다로부터 불어오는 매서운 바람이 도시를 점령한다. 거리를 거니는 사람들의 옷차림은 낮에 보였던 가벼움에서 겹겹이 채워져 있다. 잔뜩 몸을 웅크린 한 남자가 건너편의 네온사인을 발견하고는 재빨리 바 안으로 들어섰다. 실내의 어두운 조명 아래로 몇몇의 사람들이 추위를 피해 시간을 죽이고 있다. 남자는 별 고민 없이 바 쪽으로 걸어가 자리를 잡고 데낄라 한 잔을 주문했다.

심플한 드럼 비트 위에 깔끔한 피아노 선율이 부드럽게 공간을 채우고 있다. 남자는 바텐더에게 건네받은 술잔 위의 레몬 껍질을 만지작거리며, 가만히 눈을 감고 음악에 집중했다. 옅은 주변의 웅성거림도 음악에 묻혀 희미해져 가더니, 한낮의 따사로운 태양의 포근함을 음악으로 다시 불러올 수 있었다. 한동안 남자는 그렇게 음악에 취해 자리에 머물렀다. 꽉 찬 건반 소리가 서서히 잦아들면서 비트의 울림만이 남았을 때 선명한 알람 소리가 끼어들었다. 그 소리에 남자가 감은 눈을 떴다.

그가 오랫동안 품고 있던 시계에서 울리는 알람 소리였다. 너무 오래전 일이라 그는 자신의 품 안에서 울리는 소리 인지도 처음에는 인지하지 못했다. 소리는 더욱 선명하게 공간을 울렸다.

“그쪽에서 울리는 거 같은데요?”

그의 옆에 앉아 있던 청년이 말했다. 그는 그제야 손을 더듬어 품 안에 있던 시계를 만지작거렸다. 행동은 서두르지 않았으며 능청스럽기까지 했다. 그는 여유롭게 말문을 열었다.

“20년 전에 어떤 아저씨가 나타나서 이런 말을 하더라고요.” 

“…”

“20년 뒤에, 자기와 닮은 갈색 눈을 가진 친구를 마주치게 될 거다. 아주 예민하고, 경계심이 많은 친구니까 꼭 반드시 그에게 먼저 다가가 친구가 돼라” 

품 속에서 꺼내 든 시계는 더 이상 알람이 울리지 않았다. 반복적으로 울렸던 선명한 울림이 사라지자 그의 능청스러운 독백이 홀로 남아 공간을 채웠다. 그는 앞에 놓인 데낄라를 목구멍으로 털어 넣으며 계속 말을 이어갔다.

“근데 20년이면 너무 먼 미래잖아? 설마 그런 일이 내 앞에 벌어질까 싶기도 했고. 여하튼 그 아저씨가 사라지고 시계에 알람을 맞춰 놨어요. 혹시나 그 아저씨 말대로 내 앞에 친구 될 놈이 나타났는데, 내가 까먹고 못 알아볼 수도 있으니까.”

“…”

그는 고개를 돌려 옆에 있는 청년을 바라보았다. 청년의 갈색 눈동자에 로이의 모습이 가득 찼다. 둘 사이에 미묘한 기류가 흘렀다. 순간의 적막이 공간을 지배했다. 로이가 다시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정확히 그때 그 아저씨가 알려준 날짜.”

“…”

“20년 뒤 바로 오늘.”

로이는 그 말을 내뱉으며, 지금이라는 것을 강조하 듯 테이블 위로 검지 손가락을 들었다가 아래로 두 번 가리켰다. 그의 손 짓에 바텐더는 로이의 빈 술잔을 치우고 새로운 데낄라를 올려둔다. 로이는 그 뜻이 아니었다 라는 설명을 하는 대신 바텐더를 향해 눈인사를 건넸다. 가만히 그런 로이를 지켜보던 갈색 눈의 청년이 물었다. 

“그 분과는 매우 가까운 사이였나 봅니다?”

그는 자연스럽게 로이의 독백을 대화로 바꿔주었다.

”아! 그 아저씨? 가깝다기보다는…… 딱, 한 번 봤어요. 훗. 그가 내 생명에 은인이었거든. 그래서 그 아저씨 부탁을 꼭 들어 드려야겠다고 약속을 했어요. 아니, 뭐 그렇게 어려운 부탁도 아니고. 친구 하나 만드는 건데 뭐. 여하튼 그 이후로 잊고 있었던 알람이 드디어 울렸네! 와우!”

로이가 두 팔을 벌려 조금은 과한 제스처를 취했다. 로이에게 잠시 머물렀던 갈색 눈 청년의 시선은 다시 흥미를 잃은 듯 정면으로 돌아가 있었다. 

‘너의 정체를 밝혀. 너도 그 갈색 눈의 친구처럼 트래블을 한다고.’

20년 전 어린 로이 앞에 나타난 오웬의 음성이 청년으로 자란 로이의 머릿속을 흔들었다. 로이는 인상을 찌푸리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근데, 아저씨가 원하는 대로 백 프로는 못하겠다.”

로이의 혼잣말에 갈색 눈 청년의 시선이 한 번 더 로이에게 머물렀다. 그는 조심스럽게 로이에게 물었다.

“그 친구가 되라는 게 혹시 접니까?”

검지 손가락을 자신에게 가리키는 청년을 보고, 로이는 손을 들어 신경 쓰지 말라는 듯 내저었다.

“아. 몰라 몰라. 그냥 술이나 마셔요.”

로이는 낯 뜨거워진 얼굴로 고개를 돌린 채 좀처럼 오웬을 쳐다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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