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가 돌핀 크루즈를 예약했다. 괌 여행의 필수 액티비티라고 했다. 이름 그대로 보트를 타고 돌고래를 보러 바다로 나가는 투어이다. 돌핀 워칭(Dolphin waching)부터 스노클링, 선상에서 즐기는 열대어 낚시까지 가능하고 맥주와 음료 등의 간식도 무한 리필이라고 하니 놓치면 아쉬운 일정이 아닐 수 없다. 투몬 지역 호텔에서 픽업해 주는버스도 있다지만 우리는 렌터카가 있기 때문에 괌 남부 지역을 둘러 둘러 구경하며 마리나로 향했다.
한국인이 운영하는 투어회사여서 인지 보트에 한국인이 가득이었다. 여유롭게 태평양을 즐기며 돌고래를 구경하리라 기대했지만 선박은 이미 앉을자리도 부족할 지경이었다. 소리를 지르며 신이 나 있는 아기들이 많아 선상은 야단법석이었다. 정신없는 중에 겨우 자리를 잡고 앉았다. 사람들은 서로 여기에 자리가 있다며 소리 높여 일행을 부르고 아이들은 뛰어다니고 선장은 확성기를 대고 연신 소리를 쳤다. 아이들과 함께 온 가족들이 많습니다. 젊은 사람들은 자리를 양보하세요. 뒤 편에 어린이들을 위한 과자, 음료수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역시 가족 친화적이군."
K가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그러게. 우리도 줘요. 우리 집 애도 덩치가 커서 그렇지 완전 애기인데."
"응애!"
우리는 낄낄대고 웃고 있는데 옆에 있는 가족은 투어 전부터 안절부절이었다. 어린아이 둘이 있는 이 가족은 어제도 돌핀투어를 왔었는데 돌고래를 보지 못해서 오늘 다시 왔다고 했다. 엄마, 아빠의 눈빛에 초조함이 가득이다. 그 초조함에 호응하듯 아이들도 돌고래를 못 보면 뿌엥, 하고 울어버릴 것 같은 표정을 잔뜩 장착하고 있었다. 제발 이 난리통에 울음을 터트리지는 말아 줘. 나 역시 아이들이 꼭 돌고래를 봤으면 하는 간절함이 들었다. 내 불안한 눈빛을 읽은 S가 실실 웃으면서 물었다.
"우리도 오늘 돌고래 못 보면 내일 다시 도전할래?" "여기를? 다시? 아니."
괌에서 돌핀크루즈를 이용했을 때 좋은 점은, 돌고래를 보지 못했을 경우 무료로 재탑승이 가능하다는 것이지만, 돌고래를 보기도 전에 붐비는 인파에 혼이 바싹 나가버린 나는 단호히 손을 내저었다.
남태평양 한가운데에 위치해 있는 괌에서는 꽤 빈번한 확률로 돌고래를 만날 수 있다. 하지만 돌고래 나오는 장소는 때마다 달라서 배를 타고 꽤 오래 바다를 돌았다. 돌고래가 한참 동안 나오지 않을 때 선장님은 상당히 초조해 보였다.
다행히 돌고래 가족을 만날 수 있었다. 야생 돌고래 세 마리가 수면 위로 점프하고 배 주변을 돌며 장난을 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괌 돌핀 크루즈에서 자주 만날 수 있는 '남방 큰 돌고래'는 가족 단위로 뭉쳐 다닌다고 한다. 돌고래 구경에 큰 기대가 없었던 나였었지만 확실히 수족관에 있는 돌고래만 보다가 바다에서 뛰노는 야생 돌고래를 보니 마음이 덜 불편해서 그런지 더 귀여웠다.줄곧 울상이던 아이들도 돌고래를 보고 웃음꽃이 피어났다.
돌고래를 보고 나서는 배 뒤 편에서 스노클링을 하거나 뱃머리에서 낚시를 하게 해 준다. 우리는 줄낚시를 하기로 하고 한참을 줄을 드리우고 있는데 셋 다 줄만 들었다 놨다 하고 있을 뿐이었다.
"뭐 좀 잡았어?" "그냥 먹이 기부 중이지, 뭐."
"다들 영 소실이 없네. 혹시나 낚시로 뭔가를 해보려고 하지 말도록 해."
배의 선원 중 한 명이 두세 살쯤 되어 보이는 아기를 위해 열대어를 낚아서 주었다. 막상 아기는 무서워서 주저하는 것이 귀엽다. 한두 살 많은 언니로 보이는 아이가 물고기를 낚았다며 선장에게 달려가서 자랑을 하니 선장은 배가 들썩거릴 정도로 호들갑을 떨며 "우와!! 이거 먹을 수도 있는 건데!"라며 법석을 떨어준다. 아이는 함박웃음이다.
아이를 하나 키우기 위해서는 마을 하나가 필요하단 말이 있다. 이번 생에 결혼을 하게 될지, 출산을 하게 될지는 알 수 없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내 낚시 실력으로는 아이에게 열대어 한 마리도 낚아주지 못하고 세상이 뒤집어진 듯한 리액션도 해주지 못할 거란 생각이 든다. 그래도 이렇게 한 마을의 사람들이 모두 한 소끔씩 돕고 있으니 아이가 한 명의 어른이 되는 거겠지. 내가 그렇게 자라왔듯이.
돌고래들도 보통 복잡한 사회적 관계를 이루고 살아간다고 한다. 특히, 집단의 생존율을 높이기 위해 모계 중심의 사회를 이루고 경험이 많은 암컷 돌고래들이 터득한 지혜를 다음 세대에 전달하며 ‘공동육아’를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맥주를 한 캔 들이마셨더니 알딸딸 해져서 멍하니 바다를 보고 있는데 항구로 돌아가는 길에 돌고래 가족이 다시 나타났다. 우와, 하고 뛰어오는 아이들을 보고 슬쩍 자리를 비켜주었다. 그래, 얘들아 건강하고 바르게 자라거라. 비록 돌고래처럼 공동육아까지는 못하더라도 돌고래 구경 정도는 양보해 주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