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만에 글을 써본다.
마치 처음 글을 써보는 사람처럼, 비어있는 하얀 화면만 한참을 바라보다가- 문득 창 밖을 보니 가을이 다 지나가고 있었다.
인생의 목표도 의미도 없이 불안만 가지고 방황하던 시절에, J 선배가 나에게 해준 말이 있었다.
봄에 피는 꽃, 가을에 피는 꽃이 있듯이
사람에게도 각자의 계절이 있다고 해.
다른 사람들보다는 조금 늦더라도, 나에게도 꽃을 피울 수 있는 계절이 올 거라고 믿으며 부단히 애쓰며 살아왔다. 누구보다도 더 - 심지어 어제의 나 자신보다도 오늘 더 잘 해내기 위해서 시간을 쪼개고 나를 더욱 몰아세웠다.
하지만 모두가 잠들어 있는 시간에도 깨어있다고 해서 나의 계절이 더 빨리 찾아오는 것은 아니었다는 것을, 많은 것들을 잃어보고 나서야 알았다. 노력하면 이룰 수 있던 세계에서, 노력만으로 되지 않는 것들이 훨씬 많은 세상에 던져진 줄도 모르고. 지금까지처럼 애쓰고 발버둥 쳐서 이 세상에서 탈출하려고 했었다.
나에게 3년 전 가을은 너무 아팠고, 재작년 가을은 참 지독했다. 지난 몇 년 간 나의 계절은 차가웠고 외로웠고, 따듯한 계절이 오기를 견디고 버티는 시간은 힘들었다. 정신없이 지난 계절들을 보내고, 올해 고개를 돌려 창 밖을 보니 하늘은 파랗고 단풍은 예쁘고 쨍한 공기가 코 끝에, 소매 안으로 스며드는 것이 느껴진다. 그제야 알게 되는 것이다. 아, 이제 비로소 나는 나의 계절을 찾았구나.
지나온 계절들이 있었기에 지금이 근사해 보이기도 하지만, 그동안은 지나가는 계절들의 멋짐을 알아보기에 나의 안목이 부족했던 탓도 있다. 여름은 더워서 싫고 겨울은 추워서 싫고 온통 싫은 이유만 찾다 보니 울창한 나무 사이로 조각조각 부서지는 여름의 태양과, 눈을 맞고도 빨갛게 익어가는 겨울 열매들을 보지 못했다.
시간이 참 빠르게 흘러간다. 절대 끝나지 않을 것만 같던 시간도 묵묵히 걷다 보면 아득하게 지나와 있고, 절대로 오지 않을 것만 같던 순간도 갑자기 다가와 있다. 다음에 해야지 했던 일들에게 다음은 오지 않았고, 이번이 아니면 안 된다고 여겼던 일들은 계절이 바뀌듯 다시 찾아온다.
2년이라는 시간이 흐르는 동안, 힘들었던 회사생활은 이제 무료할 만큼 익숙해졌고, 또 별 볼 일 없는 이별을 했다. 그리고 또 다른 인연을 만났고, 결혼을 했다. 몇 번인 가는 장례식에 갔었고, 또 몇 번의 결혼식에도 다녀왔다. 새로운 취미들이 생겼고, 그전에 관심 있던 것들과는 조금 멀어지기도 했다. 무엇도 멈춰있지 않고, 무엇도 변하지 않는 것이 없다. 변치 않았으면 했던 것들은 사실 변하기 때문에 의미가 있었고, 변하고자 했으나 그대로인 것들은 그저 시간이 필요할 뿐이다.
계절을 느끼며 사는 사람이 되고 싶다. 가을에 나뭇잎 색이 변하는 걸 아름답다고 느끼고, 따듯한 차를 우리는 일상이 즐겁다고 느끼는 사람이 되었으면 한다. 겨울에 제철인 붕어빵, 호떡을 사 먹으며 즐거워하고, 봄에는 새싹을 대견해하고 꽃비를 예뻐하며 살고 싶다. 여름이 오는 냄새를 느끼며 산책을 즐기고, 아무리 뜨거운 날에도 계절을 탓하지 않는 여유가 있기를. 그리고 하루이틀 사이에 선선해진 아침 공기를 반기는 소소하고 기쁜 마음들이 항상 곁에 있기를 소망한다.
그리고 당연하게 변해가는 것을 아쉬워하지 않고, 반복되는 것에 감사함을 느끼고, 새로움에 감탄하는 삶이 당신에게도 함께 하기를. 당신에게도 당신의 평온한 계절이 찾아오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