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에는 10년 넘은 로봇청소기가 있다. 오래된 배터리가 금방 닳는 거 말고도 잔고장이 많긴 하지만, 아쉬운 마음으로 꾸역꾸역 쓰고 있다. 로봇청소기는 다른 가전제품과는 다르게 마치 자아가 있는 생물체처럼 느껴져서 고장 났다고 버리거나 다른 제품으로 대체하기가 쉽지 않다. A/S 센터에서도 이제는 부품도 생산되지 않고, 수리 비용이 새 청소기 값만큼 든다 하여 그냥 오락가락하는 채로 사용하고 있다. 청소가 끝나면 충전대로 돌아가서 스스로 충전을 해야 하는데 충전대를 잘 찾지 못한다거나, 완충이 되었는데도 충전을 계속한다거나, 시키지도 않았는데 혼자서 청소를 시작한다거나 하는 고장들이다. 그 늙은 로봇청소기를 보고 있으면, 오랜 불면증으로 여기저기 앓고 있는 내가 동일시되어서 한구석이 어쩐지 짠해진다.
너무 오래되어 이제는 원인도 알 수 없는 나의 불면증. 제대로 잠을 자 본 날이 언제였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수면을 위해서 할 수 있는 노력은 다 해봤지만, 잠은 오지 않고 그럴수록 괴로워질 뿐이다. 카페인도 끊고 운동으로 혹사를 시켜봐도 몸은 부서질 것 같이 피곤한데 잠이 도통 오지 않는다. 전원 버튼이 고장 난 로봇청소기처럼, 충전이 되지 않은 상태로 돌아다니다가 아무 데나 길을 잃고 처박힐 것만 같다. 잠을 '잘' 못 자는 것과 '아예' 못 자는 건 삶의 질이 다르다. 잠을 못 자니 하루 종일 두통과 어지러움에 시달린다. 온갖 피부병과 이명이 생기고 소화기능이 눈에 띄게 떨어졌다. 집중이 필요한 일을 해내기 너무 힘이 들고 내 몸이 무너져가고 있다는 것이 느껴질 무렵, 수면제를 처방받기 시작했다.
수면제를 먹으면 약물 반응속도를 정확히 느낄 수 있다. 정확히 20분이 지나면 눈의 초점이 흐려지고 팔다리에 힘이 빠지면서 끊임없이 흐르던 생각들이 굳는다. 수면제는 그렇게 전원 버튼이 고장 난 몸을 강제 종료시킨다. 강력하고 믿음직한 나의 약. 그리고 그만큼 의존하게 되어버릴까 무섭다. 기절할 것 같이 피곤했던 어느 날에는, '오늘은 약 없어도 잘 수 있겠는데?'라고 생각되어 서둘러 누웠지만, 몇 시간을 고통스러워하다가 결국 약을 먹고 나서야 잠에 들 수 있었다. 이제는 스스로 잠들 수 있을 거라는 생각조차 하지 않게 되었다.
약은 정직하게 작동한다. 정확히 6시간 후에는 별안간 정신 또렷이 박히며 눈이 팍 떠진다. 약을 12시에 먹었으면 6시에 깨어나고, 10시에 먹은 날에는 4시에 깬다. 다시 잠들 수 없을 것처럼 번쩍. 휴일에 늦잠 자는 안온함을 느껴본 건 언제였더라. 모두가 잠든 고요한 새벽에 홀로 깨어 있으면 이 세상에 혼자 있는 기분이 든다. 그런 시간에는 약으로 굳혀버렸던 생각이 다시 흐르는 소리가 너무 크게 들려서 괴롭다. 대부분은 피곤함에 짜증부터 나지만, 아주 가끔은 고독한 시간이 좋기도 하고, 어느 날에는 슬프다.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 중에 하나인 수면마저 내 뜻대로 채우지 못하는 내가 불쌍하고, 답답하고, 한심해서 슬프다. 나는 나 자신을 먹이고 재우는 것도 이렇게나 버겁다.
그래도 이런 몸뚱이를 이끌고 매일 출근을 하고, 내 몫의 일을 해내는 내가 대견하다. 훌륭한 사람이 되라는 말들을 들으며 자랐지만, 그냥 잠들지 못하는 고장 난 어른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삐걱거리는 몸을 움직여 내 밥그릇을 지켜내는 책임감과 성실함. 그래서 우리 집의 반쯤 고장 난 로봇청소기를 나는 차마 버릴 수가 없다. 또 충전 안 된 채로 청소를 하다가 충전대에 도달하지도 못하고 어디 구석에 아무렇게나 처박혀 있더라도, '얜 또 왜 여기에 있어?'라며 충전대에 놓아준다. 새벽에 갑자기 혼자 청소를 시작하는 이 애물단지를 처분하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고장 난 청소기에서 나를 발견한 탓이다. 고칠 수도 버릴 수도 없으니 어떻게든 써봐야지. 언젠가 아주 망가져 움직이지 않는 때까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