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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아 Dec 10. 2022

가짜 행복 말고 진짜 행복을 찾아서


우울증으로 약물 치료를 받고 있는 3개월째. 나는 요즘 기분이 나쁘지 않다. 트라우마와 불면증에 시달리고 절망감에 헤어 나오지 못하던 때와는 사뭇 다르게 잠도 잘 자고 기력도 되찾았다. 종종 행복하고, 여전히 하고 싶은 일들로 일상을 채워가고, 그래서 나는 내가 다 나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약을 끊는다면- 약 없이도 나는 잘 수 있을까? 약이 없어도 나는 행복감을 느낄 수 있을까? 약을 중단하면, 내 몸이 가루가 되어 부서지는 듯한 우울감이 나를 다시 삼키려고 달려들까 봐 덜컥 겁이 난다. 하지만 계속 이대로라면, 평생 약 없이는 행복할 수 없는 사람이 되어버리면 어쩌지.


병원 진료는 일주일에 한 번 꼴. 특별하고 대단한 상담은 없다. 선생님은 진료실에 들어서는 나의 안색을 가만히 살피고 내 일상이 어땠는지 묻는다. 나는 그냥 잠은 얼마나 잤는지 일상에 불편한 건 없었는지에 대해 말한다.


"저 요새 기분 대부분 좋은데요. 약 때문일까요?"


선생님은 고민도 없이 그렇다고 말했다. 조금은 나아졌을 수도 있지 않나. 나는 조금 실망했다.


"그럼 저는 언제까지 약을 먹어야 해요?"


선생님은 의자를 끌어 앉으며 약물 치료에 단계가 있는 거라고 답했다. 안정화 기간을 거쳐서 서서히 줄여나가야 다시 나빠지지 않을 수 있다고.



좋아진 기분이 약으로 끌어올린 '가짜' 감정이라면 지금 우울하지 않은 나는 가짜인 걸까. 약을 걷어낸 나는 견딜 수 없는 우울에 빠져있는 그대로인가. 우울감을 느끼지 않는데 약을 계속 먹는다. 어디까지가 우울증이고 어디까지가 정상인 건지. 이 치료가 언젠가 끝나면 그때는 진짜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걸까?


현재 일반적으로 처방되는 우울증 치료제는 제2세대 항우울제로 '선택적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SSRI)이다. 신경세포 말단에서 분비된 신경전달물질들은 다시 신경세포로 재흡수되어 농도가 낮아지고 활성이 없어지게 되는데, 항우울제는 행복감을 느끼게 하는 '세로토닌'의 재흡수 과정을 억제해 세로토닌의 농도가 줄어드는 것을 막는다. 세로토닌 농도가 높게 유지되니 이 주일이면 우울 증상이 개선되는 효과가 보인다.


항우울제의 치료 기전을 이해하면, 우울증은 그저 신경전달물질의 이상에 따라 생긴 ‘질병’이다. 정신질환에 걸린 사람을 광인으로 여기고 사회에서 고립시켰던 과거에 태어나지 않아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신경전달물질을 인위적으로 조절함으로써 감정을 통제할 수 있 약 덕분에 우울증은 치료하면 되는 질환이 되었다.


그 말인즉슨, 우울은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의지가 약해서 우울증에 걸리고 절망감에 빠지고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느끼는 게 아니다. 의지는 세로토닌이 재흡수되는 걸 막을 수 없다. 의지가 부족해서 우울을 극복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적절한 치료가 필요한 상태인 것뿐이다.


약물 치료의 진정한 목적은 가짜 감정으로 당장 행복감을 되찾게 하는 것이 아니라, 행복감을 진짜 내 것으로 만드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좀 여유로워졌다. 지금 느끼는 안정감이 약으로 통제하여 만들어진 가짜라고 해도, 치료가 끝날 때쯤엔 진짜 내 것이 되어있을 거라면 나는 진짜 행복을 찾아가는 길 위에 있는 거니까. 어찌 되었든 길 위에 올라선 나를 응원한다. 언젠가 이 길의 끝에서는 약 없이도 잘 자고, 잘 웃고 때때로 행복한 사람이 되어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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