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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아 Oct 25. 2022

플렉스(Flex)는 어떻게 하는 거야?

「괌 여행기-Ep.02」 무명(無名)의 종족


"괌이면 당연히 스포츠카죠!"


 여름휴가로 괌에 간다고 했더니 회사 후배들은 자기들이 더 신이 났다. 뚜껑이 열리는 컨버터블카를 빌려라, 색깔은 빨간색이어야 한다고 법석이었다. 스레 마음이 거려 웃음이 비집고 나온다.


 "어휴, 아직 호텔도 예약 안 했어."


 며 손사래 쳤더니, 호텔은 츠바키 타워를 가야 한단다.


 "츠바키 타워가 생긴 지 얼마 안 돼서 인테리어가 멋져요."

 "츠바키 타워? 거긴 1박에 얼만데?"

 "70만 원 정도밖에 안 해요."

 1박에 70만 원은 너무 비싸지 않나? 재빨리 머리를 굴려본다. S와 K 그리고 나. 이렇게 세 명이니까 숙박비는 나눠내면 된다지만, 스탠다드 룸보다 큰 룸이 필요할 텐데. 대충 70만 원으로 잡아도 4박 5일 일정에 280만 원. 1인당 숙박비만 90만 원이 넘는다. 비행기 티켓 싸게 구하려고 무진 애썼었는데. 이벤트가 열리자마자 특가로 구매한 비행기 티켓 값의  두 배이다. 배보다 배꼽이 너무 큰데? 내가 망설이자 후배들이 핀잔을 주었다.

 

 "비행기도 저가항공사라면서? 돈 벌어서 이럴 때 쓰는 거죠!"


 그러게나 말이다. 비행기는 무조건 '낮은 가격 순으로 정렬'하여 최저가 중에서 찾는 게 당연한 줄 알았다. 그런데 한참 어린 후배들도 휴가 가면서 비행기 환승하려면 피곤하다며 직항 국적기만 타고 다니. 나더러 저가 비행기 타면 무섭지 않으냐고 한. 얘들아, 나는 하늘에 뿌리는 돈 더 무섭단다. 하루의 절반에 가까운 시간을 돈을 벌기 위해서 쓰는데 막상 그 돈은 어디에 쓰고 있는 걸까.


 다들 수백만 원 명품도 참 쉽게 산다. 한 번은 후배가 평일에 휴가를 쓰겠다고 하기에 그러라고 하면서 무슨 일 있는 건 아니? 하고 물었더니 결연하게 '명품가방 사러 오픈런하러 가요.'라면서 즐거운 표정을 지었다. '무슨 가방을 오픈런까지 해가면서 사 해?'라고 했다가 트렌드도 모른다며 후배들에게 타박을 받았다. 나도 명품 가방 몇 개 없는 건 아니라서 필요 없다고 생각했는데, 다들 있어도 사는 거란다. 이쯤 되면 내가 잘못된 것 같다.


솔직히 S와 K를 생각하면 나보다도 더 심하다. S와 K 둘 다 부모님 도움 없이 직접 벌어서 모은 돈으로 서울 인근에 자가 아파트를 가지고 있는 실속 있는 친구들이지만 아주 검소하다. K는 물건 하나를 사더라도 아주 꼼꼼히 비교하고 고민을 오래 하는 편이다. 고민만 하다가 결국 사지 않는 게 훨씬 많은데, 이를테면 데스크톱 컴퓨터를 바꾸려고 3년째 고민 중이다. 사지 않기로 결정했는 줄 았더니 그건 또 아니라고 했다. S는 몇 년 전에 명품 Y 브랜드의 유명한 가방을 사기도 했는데, 그게 그녀의 12년 직장생활 중 유일무이한 명품 가방이 되었다. S는 큰맘 먹고 샀는데 무겁기만 하고 불편해서 잘 안 들고 다니게 되었다며 자조 섞인 웃음을 지었다.


숙소 비용에 대해서 S와 K에게 넌지시 물어봤다.


"숙소는 1박에 어느 정도 선으로 할까?"
"1박에 20~30만 원 선으로 하자. 동남아 휴양지보다 확실히 비싸네. "

S가 찾아온 호텔은 동남아시아 휴양지보다는 비싸지만 츠바키의 반값이다. 나도 한결 마음이 편하다. 그럴 리 없다는 걸 알면서도 내심 친구들이 몇 년 만에 가는 여행인데 제일 좋은 호텔을 가자고 하면 어쩌나 했나 보다. 렌터카 선택은 운전 담당인 K에게 맡겼다.


"오픈카 하고 싶으면 해도 돼. 네가 뭘 선택하든 기꺼이 비용 지불할게."


그렇게 당부했지만 역시 그녀는 가장 저렴한 모델을 골랐다. 유상종이라더니, 어쩔 수 없 내 친구로구나.



스웩(Swag)이니 플렉스(Flex)니 하면서, 인생은 한 번뿐 (You Only Live Once)이니 즐기라는 세상 속에서 '언제 죽을지 알고? 욜로 하다 골로 가면 어쩌려고?'라며 살고 있는 우리들. 명품 가방은 물론 좋지만, 사실 나는 막 들고 다니다가 비 오면 뒤집어쓸 수도 있는 에코백이 더 편하다. 그렇다고 욜로의 반대인 '파이어(Financial Independence, Retire Early)족'이라고 할 수도 없다. '이른 은퇴를 위해 20대부터 극도의 절약으로 년생활비의 25배의 자본금을 만들어 이른 은퇴를 하는 사람들'이 되기에는 이른 은퇴 막연하게 부러울 뿐 그렇게 쥐어짜는 노력 하고 싶은 열의도 없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명품을 걸치고 인증 사진을 SNS에 찍어 올리는 사람들, 조기 은퇴를 실천하는 사람들을 보면 묘한 감정이 든다. '저래도 되나?' 싶기도 하지만 부러운 마음이 드는 이유를 자격지심이라고 하기엔, 경제적 능력 때문이 아니라 단순히 취향이 아닌 것 같은 이유가 큰 것 같은, 이 마음을 뭐라고 정의해야 할지 모르겠다.


욜로족도 파이어족도 되지 못한 나는, 아마도 자기 본인의 라이프스타일을 정하고 실천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의 결단력 자체가 부러운 거 같다. 무엇을 사는지는 어떻게 사는 지를 보여준다면, 나는 미니멀 라이프를 지향한다면서도 자질구레한 물건에 집착하고 지난 주말에도 새 옷을 사들였다. 서른 중반이 되도록 라이프 스타일을 어떻게 꾸며나가야 할지는 모르겠고, 오늘도 그냥 살고 있다고 느껴져서 대범하게 '~족'이 된 사람들의 삶을 기웃대는 가 보다.


그냥 사는 것도 대단한 일이거늘! 스타일을 꼭 정해야 살 수 있는 건 아니니까, 오늘도 그냥 생긴 대로 살기로 한다. 적당히 아끼고, 적당히 소비하면서. 아마 우리 같은 사람이 더 많을 거라고 믿으면서. 말 잘 만들어내는 사람들이 욜로도 파이어도 아닌 우리 같은 종족을 부르는 말을 만들어줄 때까지는 무명(無名)으로 불릴 우리 종족. 나는 개미같이 성실히 벌어서 적당히 아껴 쓰고, 가끔 소심하게 베짱이 흉내도 내보는 우리가 애틋하고 대견하다. 대단한 이름 없어도 같은 종족인 내 친구들이 곁에 있어서 나는 오늘도 평안하다. 특가 비행기 티켓, 중급 리조트, 그리고 최저가 렌터카. 우리, 앞으로도 애매하지만 은근하게 적당히 잘 살아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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