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잡대생'의 삶

by 명쓰

아침 일찍 일어나 근처 대형마트로 산책 겸 간식거리를 사러 가는 길이었다. 걸어가는 길에 내 또래로 보이는 아이들이 삼삼오오 모여 횡단보도 근처에서 수다를 떨고 있었고, 그들은 내가 잘 아는 근처 고등학교 교복을 입고 가방도 메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잠시 고개를 숙여 내 복장을 보았다.



'목 늘어난 반팔 티에 청바지. 그리고 삼선 슬리퍼'



나는 그들과 같은 방향으로 가는 횡단보도 앞에 서있었지만, 그들과 다른 길을 가고 있다는 것을 몸소 느끼기 시작했다.




자퇴를 해서 학교를 갈 필요도 없었고, 내 대부분의 시간은 집이나 병원에서 흘러가게 되었다. 마음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공허했고, 우울감도 굉장히 컸다. 당장 허리도 계속 치료해야 하고, 모든 것이 막막하기만 했다.



결과적으로 척추는 이후 6년 가까이 치료를 했고, 서울에 안 가본 병원이 없을 정도로 돈과 시간을 많이 소모했다. 해프닝으로는, 당시 피겨스케이팅 김연아 선수가 재활하던 유명한 클리닉에서도 치료도 받아보고, 실제로 김연아 선수를 눈앞에서 마주치고 치료실 문 앞에서 스쳐 지나간 적이 있다. 보호자로 나와 같이 가셨던 부모님은 당시에 사인을 받으셨다고 하는데, 시간이 많이 흘러 지금 그 종이가 어디 있는지는 모른다고 하신다.

(나는 제발 집 어딘가에서 발견되기를 간절히 기도하고 있다...)



어쨌든 우리 집은 평범한 서민 가정이었고, 아마 내 생각에는 나에게 적어도 억 단위가 넘어가는 돈이 들었지 않나 싶다. 6년 넘은 치료로 기적적으로 완화가 되어 일상생활에 별다른 지장은 없게 되었지만, 부모님께 당시 경제적으로나 '아픈 손가락'인 막내아들로 마음이 많이 아프셨을 거 같아서 아직까지 죄송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자퇴 후 나의 괴로운 마음을 위로해 주고 지금까지 17년 가까운 시간 동안 함께 해준 고마운 친구가 있다. 이 친구가 없었다면 나는 아마 이미 이 세상에 없었을 수도 있었을 거 같다.

그런데 이 친구는 사람은 아니고, 바로 기타(Guitar)였다.


지금은 유튜브가 워낙 활성화되었고, 유튜브로 영상을 보는 것은 대부분 사람들의 일상이지만, 그 당시에는 유튜브가 잘 알려지기 전이었다.


당시 나는 유명한 클래식음악인 캐논변주곡을 락버전으로 연주한 기타리스트 임정현 씨의 Canon Rock을 듣고 큰 충격을 받았으며, 매일같이 기타 영상과 음악만 듣고 있는 아들 녀석을 보신 부모님은 악기점에서 20만 원짜리 일렉기타를 처음 사주셨다. 그리고 나는 이 기타를 잘 때도 끌어안고 자면서 내 힘든 마음을 기타로부터 위로받았다.


물론 나는 음악적으로 재능이 있거나 직업으로 삼을 정도의 실력을 가진 것은 아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밴드활동도 오래 하고, 공연도 여러 번 해보기도 하고, 유튜브에 영상을 올리기도 하면서 나 스스로 좋은 취미를 가지게 된 것에는 오히려 전화위복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내가 아프지 않았더라면 기타에 이렇게 빠질 수는 없었으니까 말이다.



KakaoTalk_20250831_121925204.jpg 합주실에서의 나의 모습. 비록 얼굴은 나오지 않았지만, 키보드를 치시는 분이 내 얼굴이 너무 심취해 있어서 찍을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다시 돌아와서, 나는 비록 자퇴는 했지만 대학교는 꼭 가고 싶었고, 가야만 했다. 그래서 고졸검정고시를 통해서 고등학교 졸업학력을 공식적으로 인정받고 대학교 입시를 준비했다.

하지만 준비라고 할 것도 없이 나는 여전히 보조기를 착용하고 있었고, 학교에서도 불가능했던 공부가 집이나 다른 곳에서 원활하게 될 것이라 기대하는 것은 큰 욕심이었다.



그래서 결국 나는 나도 처음 들어보는 대학교에 입학하게 되었다. 글에서 '지잡대'라고 자극적으로 표현하기는 했지만, 이는 많은 이들이 모르는 대학교임을 강조하기 위함이고, 나는 나의 대학교 은사님들과 학우들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그분들 덕분에 많은 성취와 경험들을 통해 많이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확실하니까 말이다.





원래 중학교 때부터 부모님은 안정적인 공무원 같은 직업을 권하셨다. 그래서 나도 당연히 큰 뜻 없이 행정학과를 선택해야지 하고 마음먹고 있었다. 그런데 내가 고등학교 자퇴 이후 육체적, 심리적으로 힘든 상황들을 직접 겪어보고는 나와 같이 힘들고 어려운 약자의 편에서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싶어졌다.

그래서 대학교 원서를 넣을 때 사회복지학과를 선택하여 입학했고, 사회복지학과로 진학한 것은 내 인생 최고의 선택 중 하나였다.


입학을 했지만, 아직 건강은 완전하지 않았기에 나는 1학기를 마치고 3년 동안 연달아 휴학을 했고, 위에서 말한 것처럼 다행히 완화가 되어 복학을 했다. 보조기를 착용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행복했지만, 행복하지 않았다.



"그게 무슨 말이야?"라고 의문을 던질 수 있는 부분이다. 하지만 만약 지금까지 필자의 글을 읽어온 그대라면 어느 정도 유추가 될 수도 있다.



나는 형이 다니던 명문고등학교를 입학했지만 자퇴를 했다.

그리고 형은 고등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서울에 있는 나름 이름 있는 대학교에 진학했다.

하지만, 나는 누가 들어도 "거기가 어디야?"라고 묻는 대학교에 진학했다.



형과 최소한 비슷하게라도 가고 싶은 마음이 중학생 때부터 있었지만, 눈에 보이는 결과는 나는 도저히 형을 따라잡을 수 없는, 아니 비슷하지도 않은 위치에 놓이게 되었다.




그래도 대학교는 4년 동안 다니고 졸업은 해야 하고, 어떻게든 이후에 나를 증명해야 나의 이 과거들이 묻힐 수 있을 거 같았다.

개인적으로 가수 에일리 씨의 노래들을 좋아하는데, 유명한 곡들 중에 이런 가사가 있다.



보여줄게, 완전히 달라진 나



이어지는 글에서는 지금까지의 아프고 무기력한 모습과는 전혀 다른 내가 등장할 것이다. 성취하는 모습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검정고시 출신 지잡대생'의 타이틀을 깨부수기 위한 '안타까운 발버둥'으로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이 글을 쓰면서 내가 살고 있는 오피스텔 창밖을 멍하니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어떤 경차가 계속 비상깜빡이를 켜고 골목 사이사이를 빙빙 돌고만 있는데, 저 경차의 모습이 왠지 내 모습 같아 마음이 괜히 씁쓸해진다.


아마 저 경차의 내비게이션에서도, 내 인생의 내비게이션도 "경로를 다시 탐색합니다."라는 멘트가 계속 나오고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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