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언가 달랐던 아이

나의 어린 시절

by 명쓰

나는 1992년 어느 뜨거운 여름날 부산의 한 병원에서 태어났다.

하나밖에 없는 형제인 형은 나와 1년 6개월 터울밖에 되지 않았고, 덕분에 우리 어머니께서는 사내아이 둘을 돌보시느라 무척 고생을 하셨다고 한다.


심지어 형은 갓난아기 때부터 늘 아팠었기에 한 달에 절반 이상을 병원에 있을 때도 있었고, 나는 그래서 어머니의 등에 포대기에 싸인 채로 오래 지냈다고 한다.

게다가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갓난아기인 나는 부모님의 케어와 관심을 더 받을 수밖에 없었고, 그래서 1년 6개월 터울인 형은 종종 나를 꼬집고 질투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렇게 손이 많이 가는 형과 다르게 나는 갓난아기 때부터 거의 울지도 않았다고 하는데, 지금 내 뒷머리가 평평한 건 눕혀놓으면 쌔근쌔근 잠만 많이 자는 순둥이여서 그렇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부모님은 나를 수줍은 여자애처럼 키우시길 마음먹으셨는지(?) 아래 사진과 같이 나름 깜찍한 사진도 아직 가지고 있다.


지금 봐도 우리 어머니의 패션 센스는 대단한 거 같다.


어쨌든, 유치원을 다닐 때까지 나는 조용하고 순하고 그냥 평범한 아이인 듯했다.




그런데 초등학교를 들어갈 때부터 나는 뭔가 달라졌던 거 같다.

앞서 언급한 형은 자라면서 점점 키도 커지고 건강해졌으며, 친구들과 게임을 하거나 축구에 빠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부모님이 어려운 형편에 등록해 준 학원도 땡땡이(?)를 치며 오락기 앞이나 학교 운동장에서 자주 발견되곤 했다.



가부장적인 아버지는 그런 형을 그 자리에서 크게 혼을 내거나 집에 와서 체벌을 하는 경우가 많았고, 나는 그런 장면들을 가까이서 지켜봤다. 그때부터 나는 부모님께 혼나지 않고, 칭찬받는 법에 대해 스스로 터득했다. 주변의 환경을 민감하게 보고 눈치를 살피는 건 이때부터 커진 게 아닌가 싶다.



가령, 형이랑 같이 게임을 하고 있다가도 집에 부모님이 들어오는 소리가 작게라도 들리면 나는 내 방으로 후다닥 도망가서 바로 책을 피고 공부를 하는 척을 했다.

그런데 둔감한 우리 형은 그러거나 말거나 게임을 계속하고 있어서 자연스럽게 부모님께 자주 혼나곤 했다. 지금 생각하면 형한테 조금 미안한 생각이 들긴 하지만, 내가 살기 위해서는 그게 최선이었다... 고 일단은 합리화를 해보자.



형은 어릴 때부터 게임을 하거나 친구들과 축구를 하는 것에 관심이 많았던 것에 비해, 나는 반대로 책을 굉장히 좋아했다. 당시 책방에서 판타지소설을 1권에 700원에 대여할 수 있었는데, 나는 일주일에 대여료로만 만원 이상을 쓸 정도로 독서광이었다. 독서실에서 공부를 하고 난 뒤에는 책 1권을 꼭 다 읽고 나왔고, 나는 그런 아이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욕심이 굉장히 많았는데, 아마 이 욕심이 지금까지의 내 인생을 좌지우지했다고 생각한다.


때는 초등학교 2학년. 나는 당시 나의 같은 반 공부 라이벌이었던 한 여사친인 A를 이기기 위해 악을 썼다.

여담이지만, 훗날 이 A는 나의 형수님이 된다. 참 인생 모르는 것 같다.



그때 담임선생님께서는 발표를 잘하거나 숙제를 잘하면 교실 뒤쪽에 학생들의 이름에 스티커를 붙여주셨다. 그런데 어느 날 어머니께서 내가 대성통곡을 하며 집에 와서는 "엄마, 우리 반에서 내가 스티커 제일 적어" 라며 하소연을 했다고 한다.



놀란 어머니께서는 교실 청소를 도와주시러 오셨을 때 그 사실을 직접 확인하셨는데, 스티커가 A보다는 물론이고 반에서 제일 많은 스티커를 가지고 있는 학생은 바로 나였다고 한다. 지금까지도 어머니들 모임에서 이 이야기는 끊임없이 회자되고 있는 나의 웃픈 흑역사다.



초등학교 6학년 때도 비슷한 사건이 있었다. 이번에도 나의 같은 반 공부 라이벌 B가 있었는데(지금 생각해 보면 이 라이벌들은 그들은 모르는 나 스스로의 라이벌이었다), 담임선생님께서 B에게만 심부름이나 발표 같은 것들을 시키시는 거라고 나는 느꼈었다.

그래서 용감하게도(?) 선생님께 당당히 따졌고, 나의 이런 모습에 황당함을 느끼신 담임선생님께서는 모든 심부름, 발표를 반에서 나만 시키셨다. 나는 눈에 독기를 품고 모든 것을 독차지했고, 덕분에 심부름을 하고 와서 점심시간이 다 지나고 혼자 식판을 들고 혼자 밥을 먹을 때도 있었다.


그때는 그런 게 외로운 건 전혀 없었지만, 눈에 띄고 싶고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이 훨씬 더 컸었던 거 같다.





다시 형의 얘기로 돌아와서, 형은 아무리 게임을 하든, 축구를 하며 놀아도 신기하게도 공부는 늘 잘했다. 심지어 또래보다 훨씬 키도 크고 잘생기고, 흔히 말하는 '엄친아' 느낌을 서서히 풍기기 시작했다.



나도 공부는 형과 비슷하게 잘하긴 했지만, 워낙 운동을 싫어하고 앉아서 책을 많이 보는 탓에 키는 또래 중에 거의 가장 작은 축에 속했고, 편식도 심해서 몸도 멸치처럼 비실비실했다.



그래서 그때부터 형과 나의 차이를 나 스스로 '인지'하기 시작했다.

명절날 형이 친척들로부터 배추색 용돈을 받으면, 나는 대부분 그것보다 가치가 떨어지는 색깔의 용돈을 받았다. 심지어 한 번은 형을 따로 불러서 봉투를 챙겨주는 모습을 우연히 보며 나는 속으로 피눈물을 흘렸다.



그때부터 나에게는 A도, B도 아닌 오로지 형이 내 인생 모든 것을 통틀어 이겨내야 할 라이벌이 되고 말았다. 그리고 이것이 나의 인생을 비극으로 만들고야 말았다.




자, 이제부터는 중학교 졸업 이후부터의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될 것이다.

처음 이 글에 대해 소개할 때의 나의 특이한 스펙들이 쌓이게 되는 배경이 되기에, 지금까지 글을 읽으며 어느 정도 이미 눈치를 챈 독자들도 있겠지만, 결과보다 나의 감정을 같이 느껴봐 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게 필자가 이 글을 쓰는 목적이다.

나는 너무 힘들고 외로운 혼자만의 싸움을 해왔거든.
싸우는 상대가 없는 싸움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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