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의미의 축제

; 엄마, 짐을 내려놓아요.

by 글쓰는메시

1 “왜냐하면 그 주위 누구도 농담이란 게 뭔지 알지 못하게 됐으니까. 나는 바로 여기에서부터 새로운 역사의 위대한 시기가 도래한 거라고 봐. “


2 “칼리닌은 모든 인간이 경험한 고통을 기념하여, 자기 자신 외에 아무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은 필사적인 투쟁을 기념하여 오래 기억될 유일한 이름이지.”


3 “하지만 슬프게도 아무리 매혹적인 장난이라 해도 세월의 법칙을 벗어나지는 못한다. 그는 관객 없는 배우가 되었다.”


4 “네 눈에 보이는 사람들 중 적어도 절반이 못생겼지. 못 생겼다는 것, 그것도 역시 인간의 권리에 속하나? 네 성도 마찬가지로 네가 선택한 게 아니야. 네 눈 색깔도. 네가 태어난 시대도. 네 나라도. 네 어머니도.”


5 “하지만 배꼽 유행이 새 천년을 열었다는 걸 잊지 마. 개별성은 환상이라는 핵심을! 배꼽을 가지고 이 여자가 내가 사랑하는 여자라고 말할 수는 없어. 배꼽은 다 똑같거든.”


: 엄마가 알랭과 남편을 버리고 떠난 이유는 임신과 출산을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임신과 출산을 원치 않았던 이유는 인생이라는 것이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들은 거의 없고 태어난 대로 주어진 대로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국가, 인종, 외모, 키, 집안, 성격 심지어는 목소리까지 랜덤으로 정해진다. 아이의 입장에서는 원치 않은 조건들을 가진채 세상에 던져지는 것이다. 주어진 환경과 조건들이 내 아이를 옥죄고 억누른다.

아이를 낳지 말았어야 했다.


스탈린은 끊임없이 부하들에게 농담을 던진다. 문제는 부하들이 그것을 농담으로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것이다.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자기들끼리만 있을 때 스탈린은 거짓말쟁이라고 토론하고 분노한다. 입에서 나오는 것 중에 가장 가벼운 농담마저도 진지하게 받아들이게 만든 것은 스탈린 자신이 내세운 공포정치 때문이겠지. 자신이 농담 없는 세상을 만들어 놓고는 부하들이 농담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어리둥절하는 것을 보며 즐거워하는, 농담 같은 세상. 그가 오줌싸개인 부하의 이름을 도시에 갖다 붙이는 것이 ‘농담’ 같은 세상의 결정체가 아니었을까.


가슴, 엉덩이, 허벅지가 다른 여자와 내 여자친구를 구별해 주는 요소가 분명한데도 알랭이 배꼽에 주목한 것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먼저, 배꼽이라는 것은 내 것과 다른 것을 구별할만한 개별성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 우리는 누구와 누구를 볼 때 차이점을 들먹이고 구별하고 의미를 부여하지만 그런 것에 집중하지 않겠다는 것.

두 번째로는 배꼽이 탯줄 가리키며, 여자에서 여자에게로 이어지는 임신, 탄생, 삶이라는 ‘반복’을 의미한다. 영원히 반복되는 것이 삶이라는 것인데 그것에다가 일일이 개별성을 부여하고 의미를 새겨 스스로 무거워지고 심각해질 필요가 있을까. 어차피 또 반복될 텐데.


웃는다. 춤춘다. 떠든다. 별 의미 없는 것들을 보며 마음이 가벼워지고 좋은 기분이 든다. 좋은 기분이 꼭 의미 있는, 가치 있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암에 걸렸다 거짓말하여 위로를 받고

그 미녀와 연인 아니냐고 칭찬해 주는 맘에 없는 소리, 농담을 주고받으며 우리는 서로 즐거워한다. 삶이 그렇게 무의미한 것들로 가득 차있다.


무의미한 것들을 사랑하고 잔뜩 들이마시고 이해한다면 즐길 수 있다면,

삶이라는 파도에 몸을 맡기고 흘러가는 대로 살아간다면,

좋은 기분을 더 많이 느끼며 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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