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하야오가 이 세계에 마지막으로 남기고 싶은 말은

by 글쓰는메시


세계적인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마지막 작품,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를 보고 왔다. 끝이 없이 이어지는 세계관과 계속해서 새롭게 등장하는 인물들 때문에 난해하다는 인상을 받았고, 그렇기 때문에 집중력이 떨어져 조금 지루한 면도 있었지만 그의 마지막 작품이라는 것에 초점을 맞추면 감독이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명확하게 알 수 있는 작품이었다.



1. 큰할아버지

내가 생각할 때 극 중 등장하는 큰할아버지는 미야자키 하야오다. 하야오는 큰할아버지를 통해 자신이 이 세계에 남기고 싶은 말을 전달한다. 극 초반에 보면 큰할아버지가 책에 너무 빠져 정신이 이상해졌다고 얘기하는 장면이 나온다. 정신이 이상해진 것이 아니라 책을 통해 세계의 모든 지식을 섭렵한 할아버지의 정신이, 아직 정신이 미숙한 세상 사람들에게는 '이상하게' 보인 것이다. 마찬가지로 하야오의 작품들도 누군가에게는 난해하고 '이상한' 작품으로 취급받을 때도 있다. 이상한 것이 아니라 아직 그 시대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한 부분이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했다. 마찬가지로 이번 작품을 보고 이상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면 그 역시도 아직 내가 부족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2. 마히토

극의 후반부에 가면 큰할아버지가 13가지 돌을 마히토에게 보여주며 자신이 세상을 탐험하며 완전한 지식과 능력을 보유한 돌을 모았다고, 너에게 줄 테니 세상을 이끌어가라고 얘기한다. 그러나 마히토는 자신이 스스로 몸에 상처를 낼 만큼 악의가 있으니 깨끗한 돌을 쓸 수 없다고 거절한다. 나는 이 장면을 이렇게 해석했다. 미야자키 하야오가 인생을 살아오며 어떻게 인생을 살아야 하는 것인지 지식, 철학, 가치관, 능력 등을 충분히 이해하고 섭렵했을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것을 후대에 그대로 물려주고 후대인이 그대로 베껴 쓰는 게 아니라 자신만의 가치, 자신만의 인생철학을 개척하며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이것이 하야오가 세계에 남기고 싶은 첫 번째 말이라고 생각한다.


삶을 살아가는 데는 깨끗한 돌과 같이 고고한 철학보다는 마히토와 같은 모험 정신 혹은 앵무새의 똥을 뒤집어쓰면서도 웃을 수 있는, 주변 사람들과 희로애락을 함께하는 현실의 삶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3. 앵무새

바다의 세계에서 엄청나게 큰 사이즈의 앵무새들이 빌런으로 나온다. 계속해서 마히토를 잡아먹으려고 한다. 심지어 각양각색의 모습을 하고 있어 아름답기까지 한 앵무새가 왜 나쁜 역할로 나왔을까.


위에서 하야오가 하고 싶은 첫 번째 말을 생각해 보면, 앵무새의 가장 큰 능력은 사람의 말을 '따라 하는' 능력이다. 영화의 원작 '그대들 어떻게 살 것인가'를 보면 '훌륭한' 사람과 '훌륭해 보이는' 사람에 대한 얘기가 나온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을 모사하고 흉내 내서 즉, '따라 해서' 훌륭해 보이는 사람이 되는 게 아니라 진실로 훌륭한 사람이 돼야 한다. 훌륭한 사람이 되려면 훌륭하다는 기분을 느낄 수 있는 일들을 자주하여 어떤 것이 훌륭한 것인지 깨달아야 한다고 얘기해 준다. 즉, 앵무새와 같이 남을 따라 해서 겉으로만 훌륭해 보이는 사람이 아니라 마히토처럼 자신만의 길을 개척하는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의미를 강조하기 위해 앵무새를 악으로 표현했다고 생각했다.


마지막에 보면 그런 악의 축인 앵무새가 현실 세계로 들어오며 본래의 새 크기로 줄어들고 마히토와 새엄마의 곁에서 어울리며 똥을 싸며 지저귄다. 삶이라는 것이 훌륭한 사람끼리만 모여 사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종류의 사람들과 어울려 산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생각도 들었고, 사이즈가 엄청나게 작아진 앵무새를 보여주며 '따라쟁이들이 실제로는 훌륭한 사람이 아니다.'라는 것을 강조하는 것 같기도 했다.



4. 왜가리

왜 왜가리가 주인공과 다른 세계를 이어주는 역할을 맡았을까. 포스터의 전면에 내세울 만큼 중요한 지위를 부여받았을까.


극의 초반에 보면 왜가리가 마히토에게 죽은 어머니를 보여줄 테니 자신을 따라오라고 한다. 마히토가 거짓말 치지 말라고 어머니는 한참 전에 죽었다고 하자 왜가리는 그건 사람들이 쓰는 '속임수'라고 말한다. 이건 또 무슨 말일까?


그 후 마히토가 바다의 세계에 가자 어린 시절의 상태이긴 하지만 진짜 어머니를 만난다. 모험을 끝낸 뒤 자신의 세계로 돌아가려는 엄마에게 마히토는 그곳으로 돌아가면 나중에 죽게 될 운명이니 돌아가지 말라고 한다. 그러나 어머니는 다시 돌아가야 너를 낳을 수 있고 그게 가장 큰 행복이니 돌아가겠다고 하고 영화는 마무리가 된다.


'우리가 우리의 삶을 바꾸고 개척시키기 위해서 위에서 얘기한 고고한 철학(깨끗한 돌)이나 운명을 거슬려야만(엄마가 원래의 세계로 돌아가는 것을 막는) 가능한 것은 아니다.'라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현실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조건과 능력을 갈고닦아 도전하고 용기를 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닐까.



왜가리를 검색해 보니 위와 같은 설명을 찾을 수 있었다. 어쩌면 하야오는 자신이 죽어서도 자기가 말하고 싶은 삶의 의미나 철학이 그다음 세대에게도 불사조처럼 살아남아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는 생각을 한 것은 아닌지 생각이 된다. 그래서 사람이 죽는다는 것은 속임수라고 한 것이 아닐까. 위대한 인물들이 세상에 알린 생각, 철학은 그 사람이 죽어도 영원히 후대에게 영향을 끼치고 깨달음을 주니까. 이것이 하야오가 세계에 남기고 싶은 두 번째 말이라고 생각한다.


왜가리를 쓴 또 다른 이유로는 앵무새나 펠리컨들처럼 잡새들은 없어져도 불사조처럼 사람들의 마음에 영원히 남아야 할 가치나 진실은 무엇일까 고민해 보라는 의미가 아닐까 라는 생각을 했다.


불사조 같은 거장이 귀여운 애니메이션으로 전혀 귀엽지 않은 질문을 던져온다.


'너는 어떻게 살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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