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재 흘수

by 은의 정원

어두운 밤 잠이 오지 않았다.

노는 것도 이골이 났는지 낮에 아무리 뛰어 놀아도 피곤하지 않고 긴긴 밤이 지루해서 무서웠다.

산이 높아서 해가 산너머로 떨어지면 저녁의 어스름도 없이 밤이 찾아왔다. 풀벌레 소리, 개구리 소리만 저 멀리서 요란스럽게 들리는 밤.

마당에 모기불을 피워놓고 대청에 앉아 삶은 감자며 옥수수, 다슬기를 먹는 것이 정해진 일상이 되었다. 날이 해만 지면 여름이라도 온 몸에 소름이 돋을만큼 선선해졌다. 대청에서 오래 버티지도 못하고 방문을 꼭 닫고 들어와 있어야 한기를 막을 수 있었다. 작은 방에 들어와 창호지 문을 닫았는데 무언가 소리도 없이 탁탁 벽에 부딪히며 날고 있었다.


막내 고모가 얼른 손으로 낚아채듯 그것을 잡았다. 고모는 내 엄지손가락 한마디만한 통통하고 검은 벌레를 잡아 엄지와 검지로 배 아랫부분을 뜯어내며 보여주었다.

끈적한 점액이 묻은 발광체를 내보이며 고모는 히죽 웃었다.


"반딧불이다"

"꼬랑지에서 빛이 난다"


"으아~~ 그걸 왜 뜯어?"

노란 형광색의 발광체가 그 몸에서 뜯어져 나왔다는 것을 확인하고 동생이 울기 시작했다. 나는 히죽 웃고 있는 고모의 얼굴을 바라봤다.

벌레는 빛과 함께 생명도 빼앗긴 채 마당으로 내던져졌다.

방 안에 있던 누구도 꼬리에서 빛을 내는 곤충을 궁금해하지 않았다. 해만 지면 수풀 사이로 반짝이며 날아다니는 반딧불이를 쉽게 볼 수 있었다. 그것이 몸에 붙어 있어야 빛이 오래간다는 것을 설명하지 않아도 알고 있었다. 고모는 생명을 잃은 발광체도 마당으로 휙 던져버렸다.

우리가 '뚱뚱보'라고 놀려도, 동네 할머니들이 못생겼다고 타박해도 화낼줄도 모르고, 대범하게 받아치며 하하하 웃고 마는 고모와 살아있는 벌레의 꽁지를 뜯어내서 점액질로 범벅이 된 손을 내밀며 히죽 웃고 있던 고모는 눈이 부시도록 뜨거운 한낮의 다락골과 해만 지면 발끝도 보이지 않는 밤의 다락골과 닮아 있었다.


그날 밤부터 나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고민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이 산골 마을에 이대로 있다간 누구도 내가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을 알지 못할거라는 공포도 폭풍처럼 밀려왔다. 황토 벽 위에 한지를 붙인 이 작은 방에서 심연의 우주로 우주로 끌어올려져 하염없이 빛이 없는 그 공간을 떠돌아다니는 것. 그것이 내가 떠올리는 죽음이었다.

낯선 곳, 고독의 공간, 의지가 작동되지 않는 초월적인 시공간.

분명 군불 냄새가 나는 오래된 방에 등을 대고 누워있었는데, 바닥에서 떠올라 옴짝달싹 못한 채 부양하며 우주 공간을 향해 멀리 멀리 보내진다.

팔다리로 뻗어나간 모세혈관이 경직되고 순식간에 얼어붙는 한기를 느낀다. 경추를 따라 머리속까지 굳어지기 전에 나는 온 몸을 떨며 벗어나려 애를 쓴다. 순간 나의 몸이 중력을 받아들여 쿵하고 바닥에 떨어진다. 말라비틀어져 쪼그라든 모든 것처럼 존재 가치를 학인할 수 없을만큼 작아진 육신을 확인하고 싶은 의지도 사라진 채 공포감에 휘말리지 않으려고 눈을 뜨고 천정을 두리번 거렸다.


어둠과 죽음에 대한 공포가 매일밤 찾아왔다.

어느 누구도 이것에 대한 해답을 주지 못했다.

엄마는 그저 꼭 안아주며 잠을 재우려 했다. 엄마 품에 안겨서도 눈은 천정 모서리 어딘가를 향해 있었다. 죽음의 공포는 나를 놓아주지 않았다. 그래도 엄마가 달래주는 밤은 몸이 얼어붙는 한기를 느끼지 않았다. 하지만 다락골에서는 나를 달래줄 사람이 없다. 잠이 오지 않는다고 훌쩍이기라도 한다면 볼멘 소리로 면박만 들을 게 뻔했다.

천정 모서리를 바라보려고 애를 썼다. 탄산처럼 터지는 검은 먼지들이 돌아다니는 듯 아무리 애를 써도 시야가 선명해지지 않았다. 보려고 하는 것이 보이지 않는 답답함이 오히려 우주공간에 떠돌아다니는 것이 아닌 다락골의 작은 방에 누워있다는 것을 실감나게 했다.

그래, 광활하다는 말로는 그 공간을 표현할 수 없는 우주에서는 나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였다. 햇빛 사이로 반짝이며 날아다니는 먼지보다도 못한 존재. 어쩌다 길을 잘못 들어 짝을 찾지 못하고 형광등이 켜진 방 안에서 발광체를 뜯긴 채 생명을 잃어버린 벌레보다도 의미없는 존재.

산속에서 길을 잃어도 매일 삶은 감자와 옥수수만 먹고 살아도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할 이름 없는 존재.

그게 나였다.

온몸을 돌아다니며 간지럽히는 벌레라도 있는 듯 등허리가 간지럽고 갑갑증이 나 참을 수 없었다. 손으로 긁어봐도 간지러움이 가시지 않았다. 그 벌레가 몸 안에서 불을 뿜어내는 듯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이 곳에서 나갈 수만 있다면.


분명 여름방학이 끝나기 전에 엄마는 우리를 데리러 온다.

하지만 나는 산골짜기 사이로 끊어진 듯 보이는 길을 바라보며 다락골에서 탈출할 방법을 궁리했다. 흙먼지가 날리는 오솔길을 따라 아스팔트가 깔린 큰 도로까지 걸어가는 모습을 상상해 본다. 발이 아프다고 칭얼거릴 동생은 업고 가야 하나? 흙물이 들어 더이상 하얗지 않은 샌들은 흙길을 걷는동안 끊어질 것이다. 양말을 신고 할머니의 보라색 고무 슬리퍼를 신는게 더 나을지도 모르니 챙겨놔야 겠다.

일기를 써준 이후로 더 어리광을 부리며 따라다니는 혜민이는 어떻게 따돌리지?

다락골을 탈출할 생각을 하는 동안 나는 벌써 붉은 벽돌이 깔린 우리집 골목에 도착해 있었다.


다락골에서의 여름은 끝이 있었다.

집으로 돌아가기 위한 나의 이런 저런 궁리는 쓸데없는 것이 되었다. 며칠되지 않아 엄마 아빠는 할머니 할아버지를 위한 물건을 잔뜩 들고 우리를 데리러 왔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먹으라며 할머니는 군데 군데 검붉은 알이 박힌 찰옥수수를 잔뜩 쪄서 담아주었다.

엄마가 손에 들고 있던 가방에 옥수수를 넣는 것을 보며, 나는 이제 옥수수가 그만 먹고 싶어졌다.

나만 보면

"아이고 이쁜이 어디가니?"하고 반기는 형제 마트에 가서 아폴로를 사고 학교 앞 문방구에서 파는 조약돌을 매일 사먹을 거라고 다짐했다.

차창 유리에 부딪히는 나뭇가지와 그 사이로 비쳐들어오는 햇살이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지만, 다락골에 올 때 느꼈던 설렘도 두근거림도 없이 더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다만 걸어내려가려면 하루 또는 며칠이 걸렸을지도 모를만큼 내려가는 길이 멀다는 것과, 그 길을 가는 도중 해가 지면 할아버지가 말씀하신 안광을 뿜는 산짐승을 만났을 거란 생각에 몸서리가 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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