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긴
"시집이나 가야제. 취직도 안되믄"
"시집은 뭐 가기 쉽나? 선 안본다"
"안보믄? 니 뭐할 줄 아는거 있나? 딸아가 나이 많이 먹도록 있으면 몬쓴다"
"시집은 내 혼자 가나? 이런 산골에서 누굴 만나나?"
목소리가 크기는 해도 성은 내지 않는 막내고모인데... 오늘은 아침부터 할머니와 나누는 목소리가 쩌렁저렁 울린다.
엄마, 아빠는 우리 둘만 할아버지 댁에 남겨두고 집에 갔다. 방학동안 물놀이 실컷하고 있으라는데 그럴 일은 없겠지만 마치 이 산골에 갇힌것만 같고, 해가 떨어지고 더위가 가실 때면 산에 가려 보이지 않는것 뿐인데 굽이진 길이 끊겨 세상으로 나가는 길이 사라잔 것만 같아 조바심이 났다.
나는 마음이 슬퍼지지 않게 꼭 붙들었다. 안간힘을 다해 붙들지 않으면 흐물흐물하고 축축하게 떨어져 슬픔으로 풍덩 떨어질 것만 같았다.
며칠만 있으면 엄마 아빠가 오고, 골목을 사이에 두고 단독주택들이 나란히 있는 우리 집으로 돌아갈 것이다. 우리집 대문에서 일자로 뻗어있는 골목에서 옆집 아이들과 땅따먹기, 얼음땡, 무궁화꽃이를 하고 고무줄 놀이도 할 것이다. 외지에서 왔다고 괜스레 눈을 흘기고 어쩌다 마주쳐도 못 볼것 본 마냥 서둘러 걷는 이 산골 아이들과 달리 우리 동네 아이들은 잘 웃고 놀기도 잘 한다.
붉은 벽돌로 쌓은 담과 그와 같은 결의 보도블럭이 깔린 골목길, 새까맣고 반들반들한 아스팔트가 깔린 대로. 주택가에서 대로 사이에 있는 작은 상점들, 대로 위를 가로지르는 육교를 건너 학교 가는 길을 떠올렸다.
가게 앞을 지키고 있는 형제 마트 아저씨는 나를 유독 예뻐하신다.
내가 등하교하며 지나갈 때마다
"아유~ 우리 이쁜이 학교 가니? 잘 다녀와라"
"우리 이쁜이 집에 가니? 아이고 예뻐라. 조심히 가라" 하면서 따뜻한 인사를 건네고 작은 과자도 하나 집어 주셨다. 나는 오며 가며 어디서든 유난히 예쁨 받는 아이였다.
친구들과 나란히 지나가도, 사촌언니 동생들과 함께 있어도 어른들은 꼭 나에게 인사하고 무언가를 내밀었다.
새침한듯 부끄럽게 인사를 해도 어른들은 함박 웃음을 지으며 나의 답례를 또 달갑게 받았다.
하지만, 이 산골에서는 밭에 꽂힌 무처럼, 말라비틀어진 수염을 드러내고 더위를 나는 옥수수 같았다.
할머니의 다섯 딸 중에 막내 고모가 제일 못났다는 것은 누구다 다 아는 사실이었지만, 할머니도 고모들도 이웃 할머니들도 아랫마을에 사는 외삼촌 할머니도 막내 고모를 볼 때마다
"우리 막내는 맏며느리 감이다!"
하면서 혀를 찼다.
막내 고모는 누가 뭐라고 하든 아무 상관없다는 듯 퍼질러 앉아서 양푼에 밥을 비비고, 고구마 순을 다듬고, 빨래를 했다. 고모가 잠깐 서울에 올라왔던 적이 있기는 했다. 우리가 자주 놀러가던, 놀이공원에 취직을 했었는데 고모는 몇 달도 안돼서 시골에 내려갔다. 고모의 둥글둥글한 얼굴만큼이나 커다란 귀걸이는 항상 퉁명스럽게 나와있는 아랫입술과 더불어서 저걸 왜 하고 있나?하는 생각이 들게 거추장스러워 보였다. 시골에 와서 고모는 화장도 하지 않고 귀걸이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은 그 모습이 더 고모다워 보였다.
우리는 그런 막내 고모가 좋았다.
아빠네 가족들은 상처주는 말을 너무 쉽게 했다. 그저 내뱉는 말이라지만 그 말 한 마디가 매섭게 와 닿았다.
명절이나 어른 중 누군가의 생일이 되면 집 안은 터질듯이 사람들로 북적였다. 나는 댓돌에서 넘쳐 마당까지 떨어져 있는 신발을 세다 포기했다.
여자 어른들은 하루 종일 부엌에서 음식을 만드느라 분주했다. 무릎이 닿을 만큼 방 안을 채우고 앉아있는 남자 어른들을 위한 상차림은 우리 몫이었다. 뜨거운 국물, 접시를 가득채운 음식을 하나 하나 날라 상에 올리는 동안 남자 어른들은 손을 무릎 위에 올려 놓고 훈시를 했다.
"에헤, 살살 놔라! 다 흘린다"
"요기, 요기다 올려라"
"어허 문지방 밟지 마라'
눈물이 찔끔 나와 부엌에 있는 엄마를 찾아 안았다. 엄마는 왜 그러냐는 말을 묻지도 못할만큼 분주했다. 엉덩이에 매달려 혼자 훌쩍거리고 있으면 또 다른 심부름이 날아왔다.
"뭐한다고 그래요?! 와 질질 짜요? 재수없게시리"
할머니의 찌그러진 깡통같은 소리가 또 날아왔다.
"바쁜데 뭐하는 기야? 나가 있어. 언능 이거 갖고 가라. 다 큰 딸아가 빠리빠리 해야지"
"나! 안! 해!"
하고 소리치고 나오고 싶었다.
하지만 그런 말이 통할리 없어 무서웠다. 속으로 꿀쩍거리며 음식을 갖다놓고 마당을 나가 괜히 웃집 앞을 돌아왔다. 심부름꾼이 나만 있는 것은 아니니까.
고모는 이런 저런 말에 굳은살이 박혔나 보다. 나 같으면 눈물 바람이 불었을 소리를 듣고도
"뭐라카노!"
소리를 빽 지르면 그만이었다.
여름 내내 고모는 읍내로 내려가서 선을 봤다.
볼 때마다 별로다. 잘 안됐다고 했지만, 선을 보러 갈 때면 싱글벙글 웃고 있었다.
"고모 시집가는 거야? 애인하기로 했어?"
"뭐라카노?'
"잘 생겼어?"
고모는 니들이 뭘 아냐는 표정으로 옥수수나 먹으라고 했다.
"총각이 어떻드나?"
고모의 맞선이 다락골에서 가장 재미있는 일이 되었나 보다.
"뭐 그리 궁금해요?" 고모가 소리를 빽하고 지르자, 할머니들은 신이 난듯
"잘 생깄나?"
"마음에 드나?"
"이번엔 갈 것 같드나?"
"뭐래요? 쓸데없는 소리들 하고만"
나는 고모가 화가 난줄 알았지만 고모는 싱글 싱글 웃고 있었다.
"씰데없는 소리들 하고 있고마. 고등학교 밖에 안 나왔다 카는데. 다른 사위들 다 대학기 나왔는데"
할머니는 화난 투로 소리를 질렀다.
특별히 화가 나지 않았어도 화가 난 듯이 말하기 때문에 진짜 화가 난 건지 그냥 말을 하는 건지 헷갈렸지만, 어쨌든 할머니는 마음에 들지 않으면 말이 빠르고 많아졌다.
"대학기도 못 나왔는데 뭐!"
"아이고, 그 아들들은 다 대학 나왔나?"
"뭐라케요?"
"대학 안 나왔이도 공무원하면 잘났지! 눈썹이 훤하게 잘 생겼다드만"
"저! 이!"
할머니는 정말로 화가 났는지 틀니를 딱딱거렸다. 위아래 앞니를 가지런히 드러내고 으르렁 대는 누렁이처럼 잠시 이를 드러내고 주먹을 꼭 쥐었다.
고모의 맞선을 주선한 윗집 할머니도 지지 않고 대들었다.
"할마시가 욕심만 많아갖고"
"뭐라케요? 아이고 부러워서 그런갑제?"
"뭐가 부러워요?"
"우리 큰 사우는 선생이라요"
"사우 잘 둬서 좋겠구만. 고등학교만 나와도 많이 배운기라"
"뭐가? 우리 사우들은 다 대학 나왔는데!"
"됐다 고마"
휘어진 다리를 어기적 어기적 옮기며 윗집 할머니가 언덕길을 돌아 올라가자 할머니의 얼굴도 부드럽게 펴지기 시작했다. 나는 할머니의 표정을 보고 좀 전의 이야기가 말다툼이 아니라 대화였다고 생각했다.
싱그러운 향내가 나는 청포도가 자라는 집에서 혜민이가 버스를 타고 올라온다.
혜민이는 내 동생보다 한 살 어린 국민학교 1학년이다. 금방 세수한 듯 하얗고 말간 얼굴에 동그란 눈. 조그만 입술에서 조용조용 내뱉는 목소리는 노래부르는 것 같았다. 진한 자주색 원피를 입고
"언니야"하고 잘 따르는 아이였다.
청포도가 자라는 집에서 한 두번 밖에 본 기억이 없는데도 친척이라며 친언니처럼 우리를 따랐다.
장손인데도 딸만 낳았다면 싫은 소리를 하는 할머니는 헤민이의 남동생은 마루에 앉혀놓고 거칠고 두꺼운 손바닥으로 이마도 넘겨주고 고구마 껍질도 벗겨주었다.
다른 애들이었다면 우리가 받아보지 못한 할머니의 손길을 받는 동선이가 얄미웠겠지만 병아리처럼 노랗고 하늘하늘한 머리털이 하늘로 솓구쳐 있는 동선이가 귀엽기만 했다.
손바닥을 문질러서 머리카락에 갖다대면 하늘로 뻗쳐있는 머리카락이 손바닥을 따라 이리 저리 물결치듯 움직였다.
"아유 귀여워"
보조개를 쏙 넣으며 동선이의 볼을 쓰다듬는 내 동생을 보고 고모는
"뭐가 귀여운데?"하고 일부러 퉁명스럽게 말했다.
그러면 우리는 또 깔깔거리며 볼을 문지르고
"아이 귀여워"하고 웃었다.
"야야, 너 숙제 있지? 가 가온나"
고모의 말에 혜민이가 잽싸게 일어나 가방에서 공책을 한 권 가져왔다.
나도 여름방학 숙제 있는데, 순간 아차 싶었다. 집에 가서 숙제할 생각에 갑작 머리가 아득해졌다.
"빨리 해달라케라"
혜민이가 공책을 펴들고 내 앞에 앉았다.
"이거 써 도!"
"뭘?"
공책은 나를 향해 펼쳐져 있었다.
"일기 써야 된다. 언니가 불러 도"
"왜? 니 일긴데 내가 왜 불러?"
"불러줘라. 자는 혼자 일기 몬 쓴다. 너가 불러줘야 쓴다"
"싫어! 내가 왜 남의 일기를 불러 줘?"
"으아앙!!!! 으아!!!!"
혜민이가 아기처럼 울기 시작했다.
작살맞게 붙어 앉아 애교부리던 귀여운 동생에서 떼어버리려고 해도 떨어지지 않아 소름끼치는 거머리로 변한 기분이었다.
"시끄럽다! 고마 불러줘라. 퍼뜩 쓰게"
"싫어. 왜 내가 불러줘야 일기를 쓰는데?"
"아이고, 참말로 징하다 징해"
"별꼴이야. 나도 일기 혼자 쓰는데!"
혜민이는 울음을 멈출 생각이 없었다.
일기를 안쓰면 엄마한테 혼나고, 혼자서는 쓸수 없다고 했다. 언니가 불러줘야 일기를 쓰고 혼도 나지 않는다면서 서럽게 울었다.
혜민이가 눈물을 쏟고 땀으로 원피스를 흠뻑 적신 후에야 나는 일기를 불러주기로 했다.
화가 났다. 일기는 자기 얘기인데, 쟤는 왜 자기 얘기를 스스로 못 쓰고 나한테 이러는 거야? 창피하지도 않아?
이런 얘기를 해봤자 울음만 길 뿐이었다.
"너 왜 일기를 혼자 못써?"
"혼자 못 쓴다"
"그럼 다른 때는 누구랑 써? 엄마? 아빠?"
"엄마는 안 써 줘"
"그럼 아빠는?"
"아빠가 알면 혼나"
"우리 아빠 무서워"
동선도 한마디 거들었다.
"맞다. 우리 아빠 무서워. 학교에도 이만한 몽둥이 들고 다닌다. 오빠야들이 말 안들으면 그걸로 혼낸대"
"그럼 집에서는 너 혼자 쓰는거야?"
"아이다. 쟈는 과외 선생님이 써준다. 일기 써주는 선생님이 있다카데"
"왜?"
"혼자 못쓰니까 그렇겠지. 빨리 써줘라"
고모는 해지기 전에 빨리 하라고 재촉했다.
"너 글씨는 쓸줄 알아?"
"응"
할아버지의 작은 나무 책상앞에 앉아 혜민이에게 일기를 불러줬다.
경 술 국 치 일
왜 그 말이 떠올랐는지 모르겠다.
창피해야 할 사람은 혜민이인데 나는 마치 내가 그 아이인양 일기를 불러주는 것이 부끄럽고 화가 났다.
"너 글씨는 쓸 줄 알면서 일기는 왜 못 써? 다음에는 너 혼자 써 알았지?"
너는 화가 나서 혜민이에게 다시 한 번 다짐을 해 두었다.
아! 집에 가고 싶다. 여름이 너무 길다.
긴긴 산골의 여름밤.
눈을 뜨고 있어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칠흙같은 어둠 속에서 잠이 오지 않아 눈만 껌뻑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