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무릎높이만큼 자란 억센 잡초가 나날이 길을 덮었다. 비가 오면 자라있고 날이 밝으면 자라 있었다.
지나다니는 사람이 드물어 잡초는 밟아도 다시 우뚝 일어섰다. 자갈이 나뒹구는 단단한 흙에 억센 뿌리를 내린 채 줄다리기를 해도 뽑히질 않았다.
다리에 풀이 스치는 것이 아무렇지도 않게 된후로 풀독이 올라 종아리가 성치 않았다. 그래도 계곡물에 들어가면 벌겋게 부어오른 살이 퉁퉁 불어 화기가 가라앉았다.
집에 돌아와서 보니 팔다리가 온통 풀에 베이고, 벌레 물린 자국이었다.
엄마는 할머니가 이불 빨래며 청소를 잘 하지 않아서 빈대에 잔뜩 물렸다고 내 몸 여기 저기에 약을 발랐다. 손등에서 어깨로 종아리에서 허벅지로 약을 바르기 시작하자 온 몸에 무늬가 새겨진 듯 붉은 반점들이 올라왔다. 벌레에 물린 자국은 여름이 다 지나도록 나를 괴롭혔다.
엄마는 살성이 나빠서 빨리 낫지 않는다며 빈대가 드글거리는 할머니 집을 원망했다.
가렵고 따가운 것을 넘어 진물이 나고 살이 아팠다. 딱지도 생기지 않고 붉게 물린 자국이 아물지 않았다.
햇볕에 그을려 허물벗듯 허연 살껍질이 벗겨지는 얼굴과 등은 따갑고 열기가 내리지 않아 오이를 붙이기도 하고, 약국에서 약을 타다 바르기도 했다.
아무런 통제없이 신나게 보낸 여름의 댓가를 치르는 동안 여름 방학이 끝나가고 있었다.
당분간 햇볕에 나가지 않으리라 다짐했지만,
아침이면 다락골에서 그랬듯이 눈이 떠지고 무언가 해야할 것만 같이 할 일을 찾아 나섰다.
남은 여름 방학이 아쉬워 공원에서 아침 운동을 하기로 하고 어린이 대공원을 향했다.
다락골보다는 덜했지만 이른 아침 공기는 차갑고 축축했다.
대공원 후문의 너른 공터에서 아침 공기를 크게 들이쉬고 배드민턴을 치고 싶었는데,
국민학생은 볼 수도 상상하기도 어려운 일이 밤사이 일어났나보다. 헛기침이 나올 만큼 매케한 냄새가 대공원 공터에 가득차 있었다.
어쩌다 엄마와 장을 보러 나오거나 대공원 앞을 지날 때, 요란한 소리와 함께 대학생 언니 오빠들이 달려가는 모습을 본 것도 같다. 멀리서 웅성거리는 소리와 달음박질치는 소리와 함께 매운 냄새가 바람을 타고 풍겨오기 시작하면 엄마는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우리를 데리고 오던 길을 되돌아갔다. 길 한 가운데서 이런 일을 만났을 때는 어느 건물이든 들어가서 몸을 숨겼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보고 싶어도 눈이 따가워도 눈을 꼭 감고 엄마 품에 파고들 수밖에 없었다.
대공원 후문 앞에서 원을 돌며 운동하는 사람이 한 명도 없는 것이 이상할리 없는 아침이었다. 오랜만에 일찍 일어나서 해가 뜨는 것을 보며 운동하겠다던 포부는 아침 공기를 가득 메운 매케한 공기처럼 힘을 잃었다. 손바닥으로 코와 입을 가리고 매운 냄새가 흩어지기를 기다리면서 상상해 보았다.
어제의 치열했던 순간을, 무엇 때문에 무엇을 위해서 달리고 쫓고, 매운 냄새를 만들어내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국민학생의 마음으로도 그들의 치열함이 전해져 왔다. 파도쳐 밀려와 세상 모든 소음을 잠식시키는 아스팔트 위를 달리는 소리와, 아이들을 힘껏 끌어안고 숨을 곳을 찾는 엄마의 모습에서.
호리호리하고 큰 키에 검은 도포, 중절모를 쓰고 서울에 온 할아버지의 모습과 다락골의 작은 골방에서 담뱃잎을 마는 할아버지의 모습.
할아버지한테 험악한 말을 퍼부으면서도 할아버지가 눈썹을 치켜 뜨면 산으로 도망가는 할머니.
악착같이 산나물을 모으고, 흑염소를 기르고 버섯을 따 장에 내다팔고는 돈이 없어 눈깔 사탕 하나 못사주는 거라며 찌그러진 깡통같은 소리를 하는 할머니의 얼굴도 떠올랐다.
막내 고모는 비쩍 마르고 눈썹이 산신령 같다는 사람과 결혼할 수 있을까? 못생기고 뚱뚱해서 이번에도 꽝인 걸까?
매운 공기가 흩어지기를 기다리며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는데 고민만 점점 많아졌다. 아무리 기다려도 공기는 개운해지지 않았다.
쉽게 사라지지 않는 최류탄 가스 때문에 우리는 조금씩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눈도 매워와 눈물이 났다. 눈물이 나면서 눈이 붓고 제대로 뜰 수 없었다.
눈물이 줄줄 흐르는 눈은 손으로 비벼서는 안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눈물, 콧물이 얼굴을 타고 흘러내렸다. 눈을 비비면 눈이 더 매워진다. 눈물로 흘려 보내야 덜 따갑다는 것을 우리 모두 알고 있었다.
30분쯤 되는 거리를 걸어 집에 돌아왔다.
깨끗한 물로 세수를 하고 눈을 감고 누워있어도 눈이 뻑뻑하고 얼굴이 화끈 거렸다. 콧구멍에서 최류탄 가스가 세어 나오듯 냄새가 가시질 않았다.
엄마는 뭐한다고 아침부터 공원에 갔다왔냐고 잔소리를 했다.
그래도 해가 서서히 올라오는 이른 아침에 공원에 다녀왔다는 것에 뿌듯한 기분이 들었다.
최류탄 냄새가 서서히 약해지는 것을 느끼며 다락골에 다녀온 일이 꿈만 같이 느껴졌다. 아스팔트와 보도블럭이 깔린 길에는 잡초가 자라날 틈이 없고, 저녁이면 반바지에 슬리퍼를 신고 나온 사람들고 가게들이 북적였다. 아빠는 전화로 우리가 잘 돌아왔다는 소식을 전했다. 하지만 할머니는 우리가 잘 도착했는지 어디 아픈데는 없는지 묻는 대신, 누구네 집에서 일어난 일과 할아버지가 속 썩이는 얘기만 늘어놓았다. 혹시나 안부를 묻는다면 그동안의 섭섭한 마음이 사라질까 싶어 수화기 너머에서 전해지는 고함에 가까운 소리에 귀를 기울여보았지만, 역시나 할머니는 우리에게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그래도 상관 없었다. 우리도 할머니를 놓아하는 것이 아니니까.
아빠와 할머니의 통화는 길게 이어졌지만, 내 이름도 내 동생 이름도, 아니,
아이와 관련된 어떤 단어도 들리지 않을 것이 분명해서 우리는 전화기 소리가 들리지 않을만큼 떨어졌다.
그리고, 얼마 후 우리는 생각할 수도 없었던 소식을 들었다.
청포도 나무가 마당에 푸른 그늘을 드리우던 집에 사는 혼자서는 일기를 못 쓰는 아이의 아버지가 할머니 집 앞 나무에 목을 맸다고 했다.
사람들은 큰 고모가 집 안에 일하는 사람은 서너명씩 두고 사업을 벌였는데 결국 빚이 되고 빚쟁이가 고모부의 학교에 몰려가서 그가 삶을 포기했다고 했다.
나는 차분하게 내려앉은 뒷모습으로 그를 기억했다. 작지도 크지도 않은 선명하고 날카로운 말소리, 지팡이처럼 긴 목봉을 들고 학교에 가던 모습을 떠올렸다.
사람들은 모두 할머니와 고모를 원망했다. 그리고 너무 꼿꼿하면 부러지는 법이라며 고모부의 성품을 원망했다. 바람이 불면 휘어지는 대나무처럼 이리저리 흔들려도 결국에는 제자리를 지키는 유연함을 가져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고모부가 너무 아깝다고 했다.
나는 혼자서는 일기를 못 쓰던 아이를 생각했다. 금방 세수한 것처럼 말갛고 예쁘장한 그 얼굴을 떠올렸다. 그리고 멀리서 할머니 집을 바라보는 모습을 상상했다. 집 앞의 나무와 모두가 주저앉았을 아침 풍경도 그려보았다.
모든 것이 진짜가 아닌것 같았다. 밤사이 매케한 연기만 남겨두고 사라진 발소리처럼.
다음 해 여름 우리는 시골에 가지 않았다. 그 다음 해에도 가지 않았다. 아름드리 나무가 바람결에 가지를 흔들고 있는 그 집에 갈 수 없었다.
쉽게 사라지지 않고 남아있는 최류탄 연기처럼 나무가 간직하고 있을 그 날의 모습이 두려웠다.
밤사이 자는 듯이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동네 사람 모두를 도둑으로 만들며 치매를 앓던 할머니도 세상을 떠났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아름드리 나무가 서 있는 시골집은 누군가의 여름 별장이 되었고, 할아버지 유품 중 한문책과 벼루함, 백살도 넘은 작은 책상을 물려 받았다. 깨진 벼루는 아직 그대로지만 벼루가 깨진 이유는 떠났다.
여름이 되어도 이제는 갈 수 있는 시골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