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허상과 나의 시간표
우리들은
남이 행복하지 않은 것은
당연하게 생각하고
자기 자신이
행복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언제나 납득할 수 없어한다.
- 모순, 양귀자 -
영원히 끝나지 않을 여름이 갔다. 이제 제법 가을의 쓸쓸함이 묻어나는 거리를 걷다 보면 내 삶도 가을의 어디쯤인 것 같다. 무료한 시간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은 삶에 큰 고비가 없다는 반증이다. 올해 우리 집에는 폭풍이 휘몰아쳐 감당하기 벅찬 일들의 연속이었다. 행복은 저 멀리 뜬구름 잡는 소리이고 그저 무탈하기를 무료함을 느끼는 일상이 오기를 간절히 소원했다. 무료함을 느꼈던 지난날 교만했던 내 모습이 한심했고 다시 한번 무료한 일상이 주어지면 감지덕지하겠다는 절절한 기도가 흘렀다.
행복은 불행이 없을 때는 더 나은 것을 꿈꾸는 것이지만, 불행이 닥쳤을 때의 행복은 그저 불행이 없어지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하다.
남편을 돌보느라 사적인 모임을 최대한 자제하다 보니 홀로 책 읽고 공부를 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굳이 학교에 가서 젊었을 때만 공부하라는 법은 없음을 깨달았다. 혼자 시간표를 짜서 한문, 영어, 운동, 책 읽기를 한다. 누군가 훌륭한 멘토가 나타나서 내 인생을 끌어주기를 평생 꿈꾸었지만 그것은 불가능했다. 내가 주체가 되어야 한다. 먹을 만큼 먹은 나이로 섣부른 경험일지라도 경험이 쌓여 내게 부족한 점을 깨우치고 고치기 시작해야 한다. 물론 쉽지 않다.
한자의 유래를 보면 이제야 이해되는 것들이 있다. 영어만 줄기차게 공부하다 이제 다시 한자를 보니 새삼 한자가 매력적이다. 젊을 때, 옷 잘 차려입고 날씬하고 여행지나 맛집을 많이 알던 친구를 부러워했다 나이가 들면서 겉을 가꾸는 그런 친구보다 속정이 깊은 친구를 소중히 여기는 것처럼 이제 내 속을 깊이 채우는 공부를 하고 싶다.
이유도 없이 흠모하는 작가인 헤르만 헤세가 [삶을 견디는 기쁨] 이란 에세이에서 이런 말을 했다.
모든 것이 빠르고 정신없이 변하는 우리 생활에서 감각으로 느끼는 삶과 영혼으로 느끼는 삶이 뒤로 물러서고 추억과 양심의 거울 앞에 우리 영혼이 당당히 얼굴을 드러내는 시간은 놀라울 정도로 짧게 느껴지기 마련이다.
인생의 가야 할 길이 새로운 출발이 아닌 아름다운 마무리로 가는 가을에 와 있다. 분명 나는 내 영혼이 얼굴을 드러내는 순간을 마주할 것이다. 당당하게 마주할 수 있을까? 분명한 것은 아직 아니라는 것이다. 나는 덜 익은 과일이다. 모양은 분명 과일이나 속은 꽉 채워지지 않았음을 잘 알고 있다. 내 인생의 가을이 이 고난의 가을과 함께 잘 익어가길 간절히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