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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천히바람 Aug 31. 2023

독학으로 심리학 공부 2

몸에 밴 어린 시절 - W. 휴 미실다인

"좋든 싫든 간에, 우리는 지난날의 정서적인 분위기에 묻혀 살면서 현재의 삶에 끼어들고 있는 어린이이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과거를 잊으려고 노력하면서 오로지 현재에 집착해서 살아가는 어른이기도 하다. 당신의 내재과거아는 어른으로서 얻는 만족을 방해하거나 무산시킬 수도 있고, 당신을 난처하게 만들거나 괴롭힐 수도 있고, 병들게 할 수도 있으며, 당신의 삶을 풍요롭게 해 줄 수도 있다."


"사람들은 대부부 이러한 어린 시절의 감정을 뿌리 뽑으려고 애쓴다. 자신이 어른답지 못하다고 자책하거나 경멸하면서 어린 시절의 감정을 부인하거나 무시하고, 잊어버리거나 극복하려고 한다. 그러나 감정의 특성상, 어린 시절의 감정을 묻어 두는 것은 불가능하다."


세 가지 주요 개념

1. 내재과거아: 어른이 된 지금도 삶 안에 그대로 남아 지속되고 있는 과거에 거쳐 온 어린이 모습

2. 자신에 대한 부모 역할: 자신의 내재과거아에게 부모로서 행위하고 있는데, 이러한 태도에 대한 내재과거아의 반응이 때로는 부딪히는 문제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3. 상호 존중: 자신의 내재과거아나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지내는 데 필요한 기본적인 태도






고독감은 자신을 대하는 태도에서 기인하며 주로 어린 시절에 체험한 가족의 태도와 정서적 분위기에 의해 형성되어 굳어진 것이라고 저자는 얘기했다. 페니실린을 발견한 알레산더 플레밍은 아버지의 오랜 병고와 네 살 때 맞은 아버지의 죽음, 외딴 농장에 살아 6km나 떨어진 학교를 혼자 걸어 다녔고 혼자 사냥과 낚시를 하였다. 그래서 연구원이 된 뒤에도 말이 없었고 다른 사람에게 자기 생각을 전하는데 몹시 서툴렀다. 그는 페니실린의 효용성을 잘 알았으나 연구소의 상사들을 납득실킬 수 없어 침묵하며 12년 동안 인내하며 혼자 연구를 계속하였다. 후에 체인이라는 화학자가 우연히 플레밍의 서류를 찾아내어 그가 사망한 것으로 생각하고 다른 화학자의 도움을 받아 페니실륨에서 병균을 죽이는 물질, 즉 페니실린을 분리했다. 플래밍은 명성을 얻은 뒤에도 여전히 말을 잘하지 못했고 여자동료에게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로 중얼거려 청혼했다. 그 여자가 다시 말해보라고 하지 않았더라면 모를 정도였다고 한다.


이제 나와 내 아이들의 내재과거아를 살펴보아야겠다. 나는 나를 비싼 것으로 대접하지 않는다. 나에게 적당한 정도의 선물을 하지 명품을 사거나 값비싼 음식을 대접하지도 않는다. 어린 시절 경상북도에서 자란 나는 남자는 놀아도 밥상을 앉아서 받는 남존여비를 당연히 하는 문화에서 자라 지금도 찬밥은 남편과 함께 먹는 것이 아니라 내 몫이라 생각한다. 조금 힘든 일이 있으면 내가 해야 할 일로 여기고 나선다.


할 말을 조목조목 하는 아이들이 지적을 하지 않았다면 내가 착해서 그런 줄 알고 쭉 살았을 것이다. 아이들이 지적한 싹수없지만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은 식구들이 다 할 수 있는데 엄마가 혼자 하니 당연히 엄마일이 되었다는 것이다. 대접을 받으러 간 식당에서도 수저를 다 놓아주고 남이 바닥에 흘린 물도 닦아주는 모습이 착한 것이 아니라 가만히 있으면 안 되는 걸로 아는 사람처럼 보인다고 했다.


친정엄마는 아들 집에 살면서 사소한 것은 내게 심부름을 시켰다. 집에 가는데 택시가 안 잡히니 태우러 와라, 친손자가 새 학기에 책을 받아 무거우니 태우고 와라. 며느리와 함께 간 병원에서 택시가 안 잡히니 태우러 와라 등 말도 안 되는 요구를 하였고 처음은 들어주었다. 이 문제는 요구하는 엄마도 문제지만 거절하지 못하는 내가 문제라는 것을 깨닫고 거절했다. 왜 나는 친정엄마의 비합리적 요구를 들어주었을까? 어린 시절 온화한 아버지는 무섭지 않았다. 그러나 엄마는 기분이 언제 나빠질지 몰랐다. 그래서 가급적이면 시키는 것을 빨리 해야 집안이 조용했다. 엄마는 열심히 사셨지만 또한 식구들을 마음대로 해왔다. 이것에 며느리가, 아들이, 손자들이, 딸인 내가 순차적으로 반기를 들었다. 나는 가장 늦게 반기를 들었다. 엄마의 비합리적 사고, 즉 아들은 본인이 도와주어야 하는 존재이고 딸은 본인이 요구하는 것을 들어주어야 하는 존재라는 생각에 더 이상 휘둘리지 않기로 했다.


위대한 플래밍도 우물쭈물하였는데 나라고 별 수 있었겠는가? 어린 시절의 나를 이해하고, 보호자로서 지금 충분히 돌보아 주어 과거의 어린 나와 현재의 내가 상호 존중하며 성장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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