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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천히바람 Dec 13. 2023

독학으로 심리학 공부 15

파친코 - 이민진

그 시절의 두 아들을 다시 만나고 싶었다. 통통하고 하얀 두 다리를 보고 싶었고, 이발소에서 가만히 앉아 있지 못해서 생긴 이상한 버섯 머리 모양을 보고 싶었다. 에쓰코는 단지 피곤하다는 이유로 아이들에게 화를 냈던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었다. 너무나 많은 실수를 저질렸던 그 시절로 되돌아가 잘못된 과거를 바꾸고 싶었다. 아이들이 좋 더 오랫동안 목욕을 즐길 수 있도록 해주고, 아이들을 재우기 전에 이야기책을 한 권 더 읽어주고, 아이들에게 새우튀김을 한 접시 더 요리해 주고 싶었다.


그날 저녁, 노아가 전화를 하지 않았을 때 선자는 노아에게 요코하마의 집 전화번호를 가르쳐주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다음 날 아침, 선자는 한수의 전화를 받았다. 한수는 선자가 노아의 사무실을 떠난 직후에 노아가 총으로 자살했다고 말했다.


<파친코>는 너무나 가난해서 기형으로 태어난 훈이에게 시집가는 양진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양진의 딸 선자는 다행히 정상적인 아이로 태어나긴 했지만, 후에 오사카에서 온 야쿠자 고한수의 유혹에 넘어가 그의 아이를 임신하게 된다. 한수가 기혼자라는 사실을 알게 된 선자가 절망에 빠지자, 하숙집에 손님으로 와 있던 목사 이삭이 선자와 결혼해서 그녀를 절망의 나락에서 구해내고 자신의 형 요셉가족이 살고 있는 오사카에 데려간다. 오사카로 간 선자는 고한수의 아이인 노아를 낳은 후. 이삭의 아들 모자수도 낳는다. 공부를 잘하는 노아는 와세다대학에 들어가지만, 결국은 일본 사회에서의 출세를 포기하게 된다. 한편 공부에 소질이 없던 모자수는 바로 파친코 사업에 뛰어들어 두각을 나타낸다. 모자수의 아들 솔로몬은 미국 유학을 통해 국제적 마인드를 가진 사람으로 자라지만, 결국에는 솔로몬 역시 아버지의 파친코 사업을 물려받겠다고 선언한다. <파친코>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저마다 이국땅에서 정착하기 위해 노력하고 이상향을 추구하지만 끝내 좌절하고 만다.



도대체 엄마가 뭐 그리 대단한 권리라고?


파친코는 소설보다 이민호와 윤여정 등의 배우가 나온 뻔한 역사 드라마로 먼저 보았다. 이후 영어원서와 한국어 번역책을 번갈아 읽으면서 나의 무식함을 반성했고 동시에 이민진 작가에 대한 존경심이 넘쳐흘렀다. 작가 한강의 치열한 사건 고증에 버금가는 이민진의 노력과 치열함이 책 전체에 깊이 베여 있었다. 이런 훌륭한 글을 쓴 작가에게 감사하다.


주인공 선자는 장애를 가진 아버지의 정상적인 딸로 태어나 귀한 대접을 받으며 자란다. 아버지는 선자를 몹시 사랑했고 귀하게 대접하였으나 결핵으로 죽는다. 선자는 엄마와 영도에서 하숙을 치며 장을 보러 다니다 생선중개상인 고한수를 만나 그를 사랑하고 임신을 하게 된다. 하지만 고한수는 이미 결혼한 유부남이었고 선자는 그의 첩이 되어 사는 것을 거부한다. 첩이 되는 것은 지극정성으로 그녀를 키워준 아버지가 원하지 않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선자는 스스로 고생길로 들어갔고 목사 이삭의 아내가 되어 일본에서 온갖 고생을 하지만 남몰래 고한수가 고비고비마다 도와주었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된다. 선자와 고한수의 아들인 노아는 나중에야 친아버지가 야쿠자인 고한수임을 알고 와세다대학을 중퇴하고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숨어 자신이 한국인임을 숨기고 살았다. 선자는 고한수를 찾아가 노아의 행방을 물었고 11년이 지난 뒤 고한수는 선자를 차에 태워 노아를 먼발치에서 보게 해 주었다. 하지만 선자는 즉시 차에서 내려 노아를 만났고 그 다음날 노아는 자살한다.


노아의 자살 소식을 책에서 읽고 선자에 대한 분노가 끓었다. 굳이 11년이나 숨어 사는 아들을 찾아서 가족과 연락하면서 지내자고 하며 밤새 전화를 기다리는 선자가 미련하고 또 미련했다. 젊음을 희생하며 열심히 키운 내 자식이라서 엄마가 무슨 대단한 권리라도 가진 것처럼 굴었던 미련함이 결국은 소중한 아들을 이해하지 못하고 죽음으로 내몰았다고 생각한다.


에스코는 바람을 피운 것이 들통 나서 이혼을 당하고 선자의 둘째 아들인 모자수의 정부로 살아가는 일본인이다. 그녀는 자신의 이혼으로 두 아들과 딸이 망가지는 모습을 보며 아이들에 대한 죄책감을 느끼며 지난날을 후회한다. 두 아들은 그녀와 연락을 하지 않고 딸은 호스티스를 전전하다 에이즈에 걸려 사망한다. 물론 어미라는 타이틀을 가졌다고 여자로서의 욕망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어미가 여자라는 것을 선택해서 불러온 수많은 재앙을 아이들은 극복하지 못하였고 어미는 나이가 들어서야 아이들의 유년시절에 못해준 것을 후회하며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가 속죄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어디 인생에 빽도가 있을 리가.


이 책에 나오는 모성애는 희생은 하였으나 결과적으로 최선의 선택을 하지 못했던 엄마들이 나온다. 선자의 모친인 양진은 죽음이 다가왔을 때 선자를 비난한다. 결국 노아도 선자가 죽인 것이며 어미인 자신도 타인이 돌보게 한다는 팩트를 말하였다.


모성애는 일종의 판타지일 수도 있다.


엄마는 무조건적으로 자식을 위해 당연히 희생할 수 있고, 그 희생에 대한 보상이나 후회가 없다는 것이 판타지이다. 세상을 살아보니 무조건적인 것은 없다. 다만 무조건적인 사랑이 하나라도 이 세상에 존재해야 한다면 자식에 대한 어미의 사랑이 가장 근사치가 아닐까? 자식이 자라고 지혜가 늘어가면서 부모의 조언도 틀린 것이며 자식을 위한 것이 아님을 자각하게 된다. 다 자식을 위한 것이란 핑계로 본인의 생각을 강요하는 것이다. 이러한 강요는 부모가 비합리적인 권리를 주장하는 것에 불과하다. 나를 사랑하는 것임을 의심하는 것이 아니라 그 방식과 내면에 숨겨진 욕망도 함께 보아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모성애에 대한 판타지를 깨고 객관적 사실을 깨닫고 받아들이게 된다. 젊은 날 자신의 희생에 대한 인정과 보상을 교묘하게 가스라이팅 하는지 잘 살펴보아야 한다. 우리 엄마는 그럴 리가 없다는 생각은 위험하다. 우리 엄마도 그럴 수 있다는 것이 건전한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 엄마는 신이 아닌 보통의 인간이기 때문이다.


책 보다 드라마에서 더 현실적인 엄마를 만난다. 친구의 다른 자식보다 내 자식이 잘 나가 한 때 나보다 잘 나가던 친구를 기죽이고, 명절과 생일에 많은 돈을 보내면 벌어지는 입꼬리를 숨기지 못하는 엄마들이 드라마에 여지없이 등장한다. 하지만 책에서는 희생과 모성애로 점철된 엄마가 등장하여 모성애에 대한 과도한 기대를 가지게 한다. 모성애는 유토피아나 이어도와 비슷하다. 어디엔가는 존재하는 이상적인 곳이지만 현실에서는 쉽게 찾기 힘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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