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호호야 Feb 15. 2022

5. 먹다와 살다, 무엇이 먼저인지.

서른 살, 밥은 해 먹고 살 수 있을까?

 대학 졸업 무렵, 진로를 고민하던 내가 '경영지원' 업무를 고르게 된 사유는 꽤나 단순했다. 문송한 자로서(당시엔 요 멘트가 유행이었다), 영업도 싫고 영어도 안 되고. 숫자에 강한 편이긴 했지만 재무 수업은 들어 본 적이 없고. 1학년 1학기에 전공기초에서만 배우고도 영 학을 뗐던 프로그래밍도 아웃. 뭔지 잘은 모르겠지만 아무튼 남는 건 경영지원 뿐이었지만, 그렇다고 자소서에 할 줄 아는 게 없어서요- 라고 쓸 수는 없었다. 그래서 곰곰이 생각해보니, 좋은 일을 하고 싶었다. 좋은 일, 착한 일, 도움이 되는 일. 그치만 돈도 벌고 싶었다. 그렇게 남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하면서 돈을 받는 걸, 경영지원 또는 스탭 업무 라고 하더라.


 면접에서는 그런 부분을 어필했었다. 아마도 오지랖이 넓어 '서포터'가 적성에 맞다고 했던 것 같다. 발을 다쳐서 침대에만 있을 때도, 바쁜 친구들을 대신해 이런저런 요구 스펙을 받아 필요한 물건을 사 주는 일을 하곤 했다고. 그 덕분인지 때문인지 인사팀 면접을 봤던 나는 난데없이 구매팀에 떨어졌다. 그리고 생의 암흑기가 시작됐다. (나중에 알고보니 이 자리에서 한 달 사이에 세 명이나 나갔어서, 급하게 내가 들어간 것도 있었다고 했다. 왜 그런 말을 했을까...)


 브런치를 알게 되었던 건 그 무렵이었다. 매일같이 출퇴근길에 퇴사툰이나 퇴사일기 이런 글들을 열심히 봤다(그분들 중 몇몇은 지금도 여러 플랫폼에서 멋진 메이저들이 되셨더라). 나도 글을 발행은 못하고 저장을 했었던 것 같은데, 방금 화면을 나가보니 없는 걸 보면 지웠나보다. 어리고 여렸던 스물넷의 기억. 보기 싫어서 치웠겠거니 싶지만, 그 시절 내가 남겼던 나도 서른살의 나는 궁금한데. 스트레스가 너무 심해서인지 기억에서 대부분 사라졌기 때문이다.


아무튼, 그 시절의 나는 거의 안 먹고, 아니 못 먹고 살았다. 식욕이 없었냐면 그건 아니었다.


 첫째로는 시간이 없었다. 눈 뜨고 30분 안에 씻고 출근해야 했고, 퇴근하고 30분 안에 씻고 자야 했다. 나중에 조금 몸에 익은 뒤에나 서울역에서 1호선이 좀 늦게 올 때 토스트를 사 먹곤 했다. 보통은 그래서 출근 직전 회사 1층 편의점에서 간단하게 사먹곤 했는데, 대체로 출근 5분 안에 상사의 역정으로 한두시간씩 불려가서 욕을 얻어먹었기 때문에 제대로 된 걸 먹긴 글렀어서 그나마 소화에 좋은 액티비아... 뭐 이런 요구르트랑, 감동란... 정도를 사 먹었다.


 둘째로는 돈이 없었다. 마시는 요구르트랑 감동란만 해도 이천원이 훌쩍 넘었다. 토스트는 천오백원. 아, 서울역 김밥 사먹어보고 싶었는데 식중독 걸릴까봐 못먹어봤다. 중간에 여사원들끼리 공구해서 닭가슴살을 먹었었는데, 한 끼에 천구백원 이던가.  회사에서 점심값을 월급 포함이라고 했기 때문에, 점심을 태깅하면 나가는 삼천원과 아침 이천원, 그리고 저녁도 편의점에서 해결한다 쳐도 하루에 만원 가까이가 쓱 사라졌다. 굶는게 제일 쌌다.


 셋째로는 위장이 망가져서였다. 사실 주변에는 스트레스로 토해서 빠졌어요-라고 했지만, 토하는 걸 극도로 혐오하는 편이라 그런 일이 많지는 않았다. 고3 때부터 가져왔던 과민성 대장증후군이 나를 괴롭혔다고 돌려 말해본다. 그렇지만 화장실은 내 자리에서 많이 멀었고, 상사는 보통 화를 내면 기본이 1시간이었으며, 내 배가 아프든 말든 당장 수정본을 원했기 때문에 화장실 갈 건덕지(식사)를 만들지 않는 게 현명했다. 한참 심신을 다 깎아먹어 자살을 생각할 쯤에는 평생 아파본 적 없던 위도 아팠어서, 먹고 싶지도 않았다.


 세 가지인 줄 알았는데 마지막 하나가 더 있었다. 허리디스크다. 잠잘 시간도 부족한데 운동할 시간이 있을리 만무했고, 학생 때처럼 재활을 할 수 없었다. 이른바 근손실도 어마어마하게 일어나서, 조금만 배가 불러도 허리가 몸을 견디지 못하고 아파했다. 그래서 더 못 먹었다. 먹을 수록 괴로우니까.


하루에 시간 단위로 약속을 잡아 돌아다니던 내가, 회사를 가자마자 빠르게 시들어갔다. 사실 살아남은 게 신기하다. 매일 울었고, 여렸던 어린 나는 그 새끼를 죽인다는 생각은 해보지도 못한 채 내가 죽으면 쟤가 지랄을 더 못하겠지, 라고만 생각하곤 했다.


 가끔 이런 얘기를 듣는 친구들은 마음 아파하지만, 사실 지금은 그 때 일한 시간의 곱절을 다른 데서 보내고 살도 무지 많이(10키로도 넘게!) 쪘다. 집에서 먹는 걸 고민하다가, 하필 제목을 먹고 살 수는 있을까-로 짓고 글을 쓰고 있자니 갑자기 어린 내가 떠올랐다. 그 때 얻은 병이고 자시고(알러지가 이 때 생겼다), 어쨌든 서른의 나는 시간이고 돈이고 허리고 다 예전보다는 여유가 있다는 거니까. 살아야 먹으니까. 먹고는 살아야지. 그치?

매거진의 이전글 4. 강제 편식의 역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