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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호야 Feb 17. 2022

6. 후루룩 뚝딱, 파스타

서른 살, 밥은 해 먹고 살 수 있을까?

 언젠가 SNS 짤에서, 라면은 레시피 대로만 하면 정말 맛있게 완성된다고(사내 연구소에서 많은 실험 끝에 만든 레시피라고) 한 소리를 보았다. 그러나 아무래도, 수도꼭지부터 계량이 되지 않는 한 요리 초보(실은 대충러)에게 그건 쉽지 않은 일이고, 내가 끓인 라면은 아무래도 맨날 뭔가 부족한 맛이었다. 본가에 살 때 언니들은 끓이기 귀찮다고 그나마도 잘 먹었지만(물은 계량해 줬던 것 같다).


 초등학교 고학년 정도 부터는 컵라면도 사먹었지만, 아무래도 친구들과 혹은 학원에서 등 밖에서 먹는 거라는 인식이 강했다. 집에서 컵라면을 먹게 된 건 자취 이후였다. 특히 라면 5봉짜리를 샀다가 유통기한을 어긴 뒤로는 그냥 필요한 날마다 집 앞에서 사오는 컵라면이 아주 딱이었다.


 아무튼, 그래서인지 나의 역사에서 파스타는 꽤 빨리 등장했다. 대학교에 갓 입학한 작은 언니가 어디선가 먹고 왔다며 만들어 준 까르보나라는, 급식에서 나온 스파게티랑은 뭔가 같은 면이 아닌 느낌이었다. 그리고 좀 멋있었다. 처음에 한두 번 만들어 주던 언니는 어느 날부터 라면처럼 나에게 레시피를 전수해줬고, 그것은 또 막내의 몫이 되었다ㅋㅋ

정통 까르보나라 레시피를 말하면서 크림을 절대! 넣지 말라던 안토니오 까를루초 할아버지. 누가 이 짤에 토마토로 김치찌개 만들면 화내는 거랑 비슷하다고 했던 것 같다.

 지금은 기억도 잘 안 나는 까르보나라 원래 레시피(계란 어쩌구...)는 따라하지 못했지만, 휘핑크림으로 하는 야매 크림스파게티는 곧잘 따라했다. 무엇보다 파스타는, 라면과 달리 물을 얼마를 넣든 정말 상관이 없어서 매력적이었다. 심지어 면이 익은 것도 눈대중이 아니라, 시계만 보고 있으면 해결! 나중에 시판 소스들이 대중화 된 이후로는 토마토소스에 대충 우유만 넣어도 완성되는 로제파스타를 즐겨 먹었고, 약간 반쯤 정신을 놨던 고3때는 무슨 학교에서 다방(?)을 한다면서 친구들이랑 나눠 먹을 샐러드 파스타까지 들고가기도 했더랬다.


 그렇게 십년. 안타깝게도 내 요리실력은 그 뒤로 퇴보만 가득! 재택 초기였던 어느 코로롱 하루, 집에 남아 있던 바질페스토를 보면서 갑자기 바질페스토 파스타가 먹고 싶었던 나는... 하하. 강한 소금의 향연으로 냄비 째로 음식을 버리고 말았다. 정말 어지간히 망하거나 상한 음식도 모르고 잘 먹는 내게는 정말정말 쉽지 않은 일이었는데, 아무튼 그건 사람이 먹을 것이 아니었다. 어디 사진이 있을텐데... 영 못 찾겠다. 아니다. 정말 너무 맛이 없어서 사진조차 찍지 않았 보다. 언니한테 전화해서 징징대다가 결국 살리지 못했던 나의.... 나의 파스타.... 면수도 소태였고 그걸로 만든 소스도 소태였고 시판 바질페스토도 소태였는데 그걸 파스타 소스만큼 넣었다. 중간에 짜다고 추가로 넣은 양파 정도만 집어먹다 에퉤퉤...


다음 날의 카톡에서만 그 흔적을 느낄 수 있었다

 그 뒤로는 한참 용기가 없어 만들지 못했던 파스타를 다시 하게 된 건, 온갖 병을 얻고(?) 뭐라도 집에서 해 먹어야겠다고 두부면을 사왔을 때였다. 가격은 생각보다 비쌌다. 세일해서 1인분에 2500원 정도? 그나마도 유통기한이 엄청 짧아서 바로 먹어야 했다. 그래도 몸에 좋다니까 한번 사봤다.

소스가 잘 밸 줄 알고 샀던 넓은 두부면. 탈리아텔레 뭐 이런걸 상상했다.


 이번 소스는... 아 사진 다시 보니까 웃기다. 레시피 없이 바질페스토 파스타 만들다 망치고 10개월만에 재도전한 것도 근본 없는 본능요리라니! 저때는 뭐시냐 한참 아시아마트에서 태국요리 재료를 샀던 때라, 남은 그린커리 소스로 예전에 명동에서 맛있게 먹었던 그린커리 파스타를 해 먹고 싶었다. 사진 보니 나름 가지도 사다 넣었네... 과는 음. 먹을 수는 있었지만, 두부면에 양념이 잘 배이지 않아서 묘하게 따로 노는 느낌이었다. 방수가 된 듯 튕겨 내는 느낌이랄까. 그래도 어쨌든 못 먹을 음식은 아니어서, 다음에 살 때는 얇은 면을 사야겠다고 다짐했다.

이번에는 레시피를 보고 만든 가지 두부면 파스타

 얼마 뒤 마실 삼아 나갔던 마트에서 두부면이 할인 중이라 얇은 면으로 재도전! 유통기한이 짧아서인지 운이 좋으면 할인 찬스를 노릴 수 있는 것 같다(그 때문인지 중형 마트는 잘 들이지 않는 듯하다).  만들기 전에 네이버에 혹시나 하고 검색하니 가지 두부면 파스타 레시피가 있어서 따라했다. 맛술이랑 간장 설탕을 일대일대일? 뭐 이런식으로 넣고 만들었던 걸로 기억!저번보다 양념이랑 따로 놀지도 않고 괜찮았지만, 찾은 레시피가 살짝 맛이... 취향은 아니었다. 그래도 꽤나 그럴듯한 밥상!


 이쯤에서 두부면으로 정착했나 했겠지만, 가격도 좀 있고 코로롱이 점점 심해지면서 집에서 먼 큰 마트는 잘 안가게 되면서 도전한 다음 재료는 뇨끼였다. 사실 아무것도 알아본 건 없었지만, 오플이라는 직구 사이트에서 배송비를 맞추려고 사이트를 돌다 보니 '연말연시 홈파티 추천 기획전' 뭐 이런 곳이 있지 뭔가. 다른건 좀 어려워 보였는데, 뇨끼는 그냥 끓이기만 해서 파스타 소스만 넣으면 된다고 하여 충동적으로 구매!

다 먹고 한컷. 옆면에는 뇨끼 삶는 법, 뒷면에는 뇨끼로 하는 레시피가 있었다.

 3인분 정도가 들어 있었는데, 레시피 첫 줄 부터 알아듣지 못하여 한 달 정도 냉장고에 방치하다 이번에 드디어 해 먹었다. 알아듣기 어려웠던 사유는, 5 Quarts의 물을~ 이라는 부분을 이해하기 어려워서였다. 파운드 이런 애들처럼 검색해서 쉽게 나오지도 않았고, 심지어 미국의 quarts와 영국의 quarts는 용량도 다르단다. 근데 이 상품은 이탈리아 상품이네? 음... 때려칠까? 하고 다시 던져버릴 쯤, 같은 상품으로 요리한 네이버 블로그를 보고 그냥 만들었다. 3인분에 3리터, 3아빠숟갈의 소금을 넣고 끓이다가, 떠오르면 건져서 소스랑 볶으면 된단다.


 마침 집에 있던 언니 몫까지 2인분을 대충 눈대중으로 2/3를 나눠서 진행! 유통기한이 살짝 넘은 닭가슴살도 살짝 넣고, 쏨땀할 때 샀던 그린빈도 넣었다. 언니는 언니 식량인 표고버섯과 팔라펠이라는 중동 콩 완자를 기증해줬다. 파슬리로 나름의 꾸밈까지! 물론 양념은 아름다운 폰타나 크림소스ㅎㅎㅎ 역시 맛있었다.

표고는 생각보다 별로였고, 오른쪽 아래 큰 미트볼 같은게 팔라펠이었다. 열면 생초록색인데, 생각보다 많이 퍽퍽하지도 않고 맛있었다. 이집트에선 튀겨서 먹는다고 했다.

 다음 도전은 남은 1인분을 3일 내 먹으라는 과제를 받은 내 몫이었다. 백신 3차를 맞고 골골대다가, 3일을 벌써 이틀이나 넘겨버려서 더 미룰 수 없이 부엌에 섰다. 왼쪽 림프가 부어서 겨드랑이에 팔이 닿지도 못한 채(팔을 들다 팔도 아파서 벽 짚고 서 있었다) 대충 양파를 썰어서 볶고, 남은 1인분의 뇨끼를 냄비에 익히다가, 양파가 타려고 하길래 우유를 후딱 붓고 토마토소스를 조금 넣어 로제소스를 만들었다. 간도 괜찮았는데, 마지막에 욕심껏 넣었던 하바티 치즈 한 장이 조금 짜서 먹을 때 살짝 아쉽긴 했다. 그래도 알러지가 크게 나지 않아서, 괜찮은 식사였다. 겨드랑이 빨리 나았으면 좋겠다. 너무 아프다...

뜨끈한 한끼 밥상

 아, 파스타의 중요성에 대해 썼어야 했는데 앞에서 풀지 못했다(요알못의 역사만 썼네...). 방부제/설페이트 알러지인 나는 한국에선 대부분의 밀가루를 먹지 못한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밀가루는 밀가루 자체가 몸에 나쁜 것도 있겠지만, 방부제가 어마어마하고(과학 선생님인 어머니가 학생들 데리고 실험했는데, 2달간 방치해도 아무 변화가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몇 입만 먹어도 순식간에 목이 붓는다. 국내산 밀가루 먹으면 괜찮긴 한데 파는 데가 적고, 길가다 보이면 사지만 찾아 다닐 정도로 부지런하지 못하다. 그러나 파스타는 국내산보다 수입산이 싸고(!), 그래서 식당 같은 데서도 대체로 수입산을 쓰는 것 같은데, 얘는 건조만 해서 오는 거라 잘 상하지 않기 때문에 방부제가 거의 필요없는 것 같다. 아닐 수도 있지만 먹으면 알러지가 안 나서...ㅎㅎㅎ 맞을 것 같다. 마트에서 구매할 때도 굳이 국내에서 만든 거만 아니면 돼서 다른 밀가루 음식에 비해 선택의 폭이 넓은 편이다. 빵 먹으면 소화가 잘 안 된다는 친구들도 파스타나 국내산 밀가루로 만든 빵을 먹으면 괜찮다는 사례를 몇 봤는데, 의외로 꽤 많은 사람들이 자기도 모르게 방부제에 예민한 걸 수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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