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기쁜 이야기 Jul 15. 2021

바다 빛 당신  p. 인간의 바다

p.  인간의 바다

다섯 살 동생을 들쳐 업고 바다로 나간 여름.


수영모에 수영복까지 갖춰 입고 몰려드는 원산 시민들을 피해, 버스를 타고 시외로 벗어났다. 누가 사는지도 모르는 귀퉁이 어촌 마을 모래밭에 신발을 벗어 두고, 동길은 잠시 망설였다.


월간 ‘소년’에서 봤던 바다. 몇 번이나 읽어봤던 저 큰 물이 지척에서 살아 움직였다.   

  

“이게 바다야?”    

동순이가 어느새 쪼그려 앉더니, 찰방찰방, 이는 파도를 손바닥으로 때렸다.    


“그건 파도래.”     

신비하게 왔다 가는 얕은 물에 동길이도 발목을 넣어 보는 사이, 파도가 더 크게 밀려와 동순이의 엉덩이를 적셨다. 앗! 놀라 일어나는 동순이가 제 젖은 엉덩이를 거머잡곤 오빠를 올려다보지만, 동길은 짐짓 모른 체 더 깊은 바다로 걸어갔다. 동순이도 금세 울 일 아닌 듯 얼굴을 펴고선, 제 오빠를 따라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처음엔 짠물을 코로 먹고 뿜었다. 그래도 동두천에서 헤엄치던 실력이 어디 안가, 동길이는 힘껏 팔다리를 뻗어 물질을 했다. 잠시만. 아니나 다를까. 동순이는 아직 잠수를 못해서 엉덩이가 바다 위로 삐죽 솟았다. 제 딴엔 물고기를 잡겠다고 작은 손바닥을 휘저으며 물거품을 만들다, 손 사이로 빠져나가는 갈색 작은 물고기에 더 신이나 웃는다.


동해 바다는 리아스식 해안이라 조금만 가면 바닥이 푹 빠져 버린다는 걸 배운 오빠는, 동생이 안전하게 놀 수 있는 물 높이를 제 키로 정했다.


바로 섰을 때 딱 가슴께까지.     


‘오늘은 여기까지 놀고. 다음엔 혼자 와 봐야지.’   

  

더 먼바다로 나갈 마음을 품고선, 오빠는 물 빛 반짝이는 동생의 천진한 얼굴을 보며 웃었다.     


여름 해로 데운 바닷물이 오르락내리락 제 리듬을 만들며 가슴을 적실 때,

살붙이를 감당하는 기쁨만으로도 힘이 나던 자리.


거기까지만 머물렀다면 인생은 그럭저럭 행복했을지도 몰랐다.    



홀로 나와 버린 먼바다에서.

본다. 윤슬 반짝이며 너울대는 수많은 얼굴들을.

아득히 헤쳐 온 날들에도 그는 여전히, 인간의 바다 한가운데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