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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쁜 이야기 Jul 17. 2021

바다 빛 당신 1. 모던과의 만남

1. 모던과의 만남


1940년. 8월.     

동생을 업고 가는 길. 다섯 살 살짜리 무게에 열세 살 오빠 허리엔 불이 난다.

땡볕에 볼이 따갑고, 깜장고무신 속 발이 땀에 미끌려도 걸음을 늦출 수 없다. 동순이가 아프기 때문이다. 제 식구를 흙에 묻는 일을 또 치룰 수 없어서 동길은 필사적이다.    


기찻길이 지름길이라 택한 추가령 산길. 원산행 기차표를 살 돈이 없어, 동두천역에서부터 경원선 철길을 따라왔다. 떠날 때는 호랑일 만날까봐 조마조마했지만, 막상 따라가니 기찻길은 산을 오르기 보단 둘러놓았다. 기차가 버리고 간 선탄 가루가 동길의 살갗을 따갑게 했다.


잠은 세포역 대합실에서 잤다. 쉰 내나는 주먹밥 하나 먹고 누웠어도 동순이는 잘 잔다. 풀숲에 토악질을 해 내고선 오빠 등에 미열을 뿜다 잠이 들었다. 동생의 배에 보자기를 덮어주고, 동길도 눈을 감는다. 잠들려고 감은 눈인데, 엄마 얼굴만 아른거린다. 도닥여 주던 엄마 손을 잃어 버렸다는 것이 끝내 서럽다.  

  

석탄을 실어 나르는 인부들과 보따리에 지게를 던져대는 역전 사람들의 분주함 때문에 동길은 아침잠에서 깬다. 어제만큼은 아니 아파 보이지만, 동길은 동순이를 업는다. 엄마가 있었을 때 같았으면 나도 힘들다 말했겠지만, 지금은 동생이 살아 있는 것만 해도 고맙다. 다시, 동생의 무게로 등허리에 불이 붙는다.   

  

산길 내내 들러붙던 파리 떼들이 흩어지고, 기차 소리가 들려오자 동길은 철로에서 비켜선다.


거대한 기차가 굉음을 내며 지나간다. 빠르게 스쳐가는 열차 안에는 아직도 양반 갓을 쓴 조선인들과 양장을 한 모던보이들이 다른 나라 사람인 듯 섞여있다.     

철의 기계는, 엄마를 우리 앞에서 희롱하면서도 당당했던, 그 일본군만큼 서늘한 느낌을 남긴다.


제 방식대로 한 세계를 침범했다가 상관없이 사라져 버리는. 무시.

하나인 줄 알았던 세상을 순식간에 찢어 놓고 가 버리는. 속도.

보는 사람은 그 태도와 속도 때문에 등골이 시리다.


대응할 여지를 주지 않고, 일 없던 듯 복구 되어 버리는 세상에서, 남겨진 사람은 뒷북이나 치는 얼뜨기가 되지 않기 위해, 조용히 상처가 된 흔적만을 마음에 간직한다. 그렇게 타인에 의해 무방비로 오염되는 감정을 무던한 척 추슬러 보려고, 요즘 사람들이 꺼내 드는 단어가 ‘모던’일까?   


“오빠, 나 꿈에 엄마 봤다.”     

기차가 울리고 간 굉음에 멍한 동길의 귀에 동순이 속삭인다. 어제 오늘 길 위에서 내내 생각한 엄만데도 등에 붙은 동생의 말에는 덜컥 겁부터 난다. 동생이 엄마 따라 먼저 갈 까봐서다.   


“조금만 참아보아. 아버지를 만나면 나을 거니.

양의원에서 주사를 맞으면 아픈 것도 낫고 분유도 준다는 소리 너도 들었지?”    


아버지가 동순이의 병원비를 줄까? 말은 그렇게 했지만 내심 걱정이다. 엄마의 유품인  소금(小琴)이 아버지를 다시 우리와 이어줄 지 확신이 서지 않아서다.


 동길은 아버지와의 좋았던 일을 떠올려 본다. 아버지는 동순이가 엄마 뱃속에 있을 무렵, 여름을 함께 산 것이 전부다. 기억 속 아버지는 한복을 입었지만, 머리를 짧게 쳤고, 고리타분하지 않은 턱수염도 길렀다. 북을 잘 쳤고, 술도 잘 마셨다. 목마를 태워 줬고, 술 취한 입술을 볼에 마구 문지르기도 했다. 북장단에 춤도 추고, 냇가에 데려가서 등물도 같이 쳤다. 엄마가 따라주는 바가지 물에 아!차라!를 연발하며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그게 다다. 더 생각해 보려 해도 그 이상은 없다.     


아버지는 기분 따라 사는 풍각쟁이라 한 순간 나타나서 찰떡같이 붙어 놀다가, 다시는 오지 않았다. 아버지는 모던하지 못한 사람인 듯 한복을 입고 북을 들고 다녔지만, 기차나 일본 순사처럼 여지없이 떠났다. 여덟 살 아이가 감당하기엔 벅찬 애정을 쏟아 버리고 사라진 아버지를 기다리던 날. 그 개울 앞 저녁. 그리고 밤. 그날로부터. 동길은 아이가 기다릴 수 있는 최대한의 날 수만큼을 손으로 꼽았던 것 같다.      

  

매일 아침 성실하게도 떠오르는 해를 보면서  

결국.

아버지는 오지 않아도 상관없는 사람으로 정리했었다.       

 

작년에.

아니, 엄마가 아프기 훨씬 더 전에 엄마와 함께 아버지를 찾아 갔다면 길이 이렇게 힘들지는 않았을지 모른다. 하지만, 엄마에게 아버지를 찾아 가잔 말을 못했다. 엄마가 남몰래 훔치는 눈물을 보아서만 그런 것은 아니다. 그 때도 확신이 들지 않아서다.


우리들의 가슴을 부수고 간 사람은 가족일까?  

   

“오빠, 헤엄치고 싶다.”    

동순이 뜬소리를 했다. 열이 깊나 보다. 이 산길에 무슨 헤엄.     

“아픈 거 다 낳으면”

“지금”

“안 된다.”

“지금”

“안 된다.”

“된다.”

“안 된다.”

“된다.”     

그렇게 말장난이 시작되어 장단이 생겨났다. ‘된다.’ ‘안 된다.’를 주고받으며 한 발, 두발 산길을 타니 등에 붙은 동생이 덜 무겁게 느껴진다. 그러다 문득 바람이 불었고, 동길은 멈추었다.   

  

바다였다. 먼 바다.

산 아래 자그맣게 보이는 원산공업단지 너머 동해바다 한 조각이 양장 입은 처녀의 브로치처럼 빛을 내고 있었다. 반짝이는 푸른 보석이 하늘과 땅 사이에 담겨 있었다.  

    

“바다다.”     

동순이를 내리고, 허리를 편 동길이 손끝으로 가리켰다. 그러나 동순인 바다 보다 공업단지에 더 관심이 가는지 기다랗게 솟은 굴뚝이나, 동그랗고 큰 원통형 화학공장을 손으로 가리켰다.


“저게 뭐야?”


“정유공장인가?”     

동길은 동순에게 대꾸하며 원산을 자세히 내려다본다. 도시개발 계획에 따라 사각 도시락처럼 나란히 정리된 일본인 시가지가 커다란 다리 하나를 두고 흩뿌려진 조선인 민가와 나뉘어져있었다. 활처럼 휘어진 항만에는 규모가 큰 배들이 개미떼처럼 붙어 있고, 기찻길이 해안선을 따라 북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조선에서 세 번째 크다는 이 도시에서 모던을 만난 것 같다. 기차처럼 스치고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그 안에 들어 가  살아야 할 세계.


동길의 등골에 서늘한 바람이 들이 칠 때, 동순이가 오줌을 누고 싶다고 했다. 길 가 소나무 숲 안으로 동순을 데리고 갈 때, 동길은 문득 잡지에서 본 ‘오아시스’기억났다.   


“우리나라 바깥에 서쪽으로 계속 가면 사막이라는 땅이 있는데, 가도 가도 끝없는 모래라, 그 길을 걷다가 목이 말라 죽는 사람이 많단다. 그 무시무시한 사막엔 오아시스가 숨겨져 있는데, 시원한 나무 그늘에 물이 퐁퐁 솟아나는 샘을 그렇게 부른다네. 여행자는 오아시를 발견하면 길을 멈추고 그 물을 마셔야지만, 살아서 여행을 계속 할 수 ..."

불안 한 마음을 진정시키려, 보통학교 변소 칸에 널어진 소년 잡지에서 읽었던 말을 늘어놓는데.    

 “우리나라 바깥에?”     

동순은 오줌이 흘러서 묻지 않도록 깜장치마를 잡고 앉아 되물었다.

오아시스를 알고 싶기보단, 제 오빠가 하는 말 중에 기억나는 것들을 반복하는 이다.   

  

동길은 지구에 대해서 말해줄까 하다가 그친다. 동순이도 학교에 가면 배울 것이다. 지구가 둥글다는 걸. 바다는 끝없이 넓고 크다지만, 지금 보이는 원산 앞 바다는 손바닥으로 뼘을 재도 될 만큼 작았다.   

 

이제 걸을래.”     

동순이 소나무 숲에서 나오며 웃었다. 내리막길을 보니 자신감이 생긴 걸까?


남매가 내려갈수록 바다는 하늘로 올라간다. 바다가 올라갈수록 도시는 산 밑으로 들어가 작아진다.

길을 돌자 바다가 사라진다. 동순이는 좀 전엔 보였다가 지금은 보이지 않는 바다가 신기한가 보다.

다시 길을 돌아, 바다가 나타나자 까르륵 웃음을 터트린다.


바다가 올라갔다 내려갔다, 사라졌다 나타났다 하니깐 제 깐에는 숨바꼭질이라도 하는 줄 아는 것이다.

그 모습에 긴장했던 동길의 마음이 풀린다.

도시가 커 보았자, 바다 보단 작다. 힘이 생겨 동순이한테 묻는다.    

 

“어? 바다가 나타났네? 어디 숨었다 이제 나타났느냐!”

“이제 나타났느냐!”    

동순이가 메아리처럼 따라한다. 그러다 문득 고개를 들고 묻는다.    


“어디 숨었던거야?”     

초롱이 눈망울에 찰랑대는 바가지 머리가 귀엽다. 동길이는 동순이의 재미를 위해서 입을 꼭 다문다.    


“어디 숨었다가 응?”     

졸라대듯 또 묻는 동순이. 몹시 궁금한 가보다.


동길이는 이미 커서 다 알고 있는데.

바다가 늘 거기 있다는 것을.   

  

저 바다에 풍덩 몸 담글 수 있다면. 동순이랑 헤엄쳤으면. 아버지를 만나면 바다에 가자고 졸라볼까?

아버지는 우리를 좋아하실까? 이런 저런 기대들이 생기자 배가 고파왔다.

물 대신, 밥 대신, 지금은 바람 밖에 먹을 게 없다.


먼 바다와 숲을 거쳐 온 바람이, 숨이 되어 뱃속으로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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