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빛 당신 3. 이상한 나라
3. 이상한 나라
1941년. 12월.
일본제국 함재기들이 미 해군 진주만 기지를 공습했다. 순국한 일본 군인들을 위한 묵념 후 학생들은 황국신민선서를 단체로 읊었다. 천황을 향한 요배 예식 후, 진주만의 승리로 들뜬 교사가 노골적인 방향으로 지도를 시작했다.
‘boys be ambitious!’ 판서에 따라 자신의 미래를 발표하는 시간. 일본제국 산하 각 아시아의 식민지 행정관이 되겠다는 학생들과 동경대학 유학, 또는 일본군 사관학교에 입학하겠다는 발표가 이어졌다. 서양 제국주의에 대항한 동아시아인들의 단결이 필요한 시점이기에 일본 소년들의 열망은 하나였다. 서양인에 비해 2등 시민으로 여겨지는 아시아인의 지위를 전 세계에 1등 시민으로 격상시키겠다는 포부가 쏟아졌고, 뜨거운 애국심에 합당한 열렬한 박수가 일었다.
학교에서는 요시다상이 된 동길이도 열심히 박수를 쳤다. 따라 하지 않으면 배제되기 때문이다.
창씨개명을 하지 않은 아이들은 퇴학당했다고 들었다. 직접 본 적은 없다. 동길이가 새엄마 덕분에 다시 중학생이 되었을 때, 이곳 학교에서는 이미 모두가 일본 이름표를 가슴에 새긴 교복을 입고 일본어로 말하고 있었다.
사실 대 일본제국이 동남아까지 점령하여 앞으로 더 많은 군대가 필요하게 될 것이라는 교사의 말은 동길에게 부담이었다. 청춘을 바쳐 세계 1등 아시아인이 되어야 할 이유 따윈 동길에겐 없었다.
나라의 독립이 현실적으로 어려우니 일본과 한 몸이 되어야 한다는 의견도 분분히 일어났고, 대 일본 제국의 승리를 위해 대학생들은 조선인 일본인 가릴 것 없이 전쟁에 참여해야 한다는 여론도 횡횡했다. 동길은 그저 침묵으로 버텼다. 원산의 한 중학교에서 조차 그런 소리들만이 더 커지는 분위기에 딱히 다른 의견을 말해 모난 돌이 될 이유도 없었다.
그런데, 개인발표라니!
돌림노래처럼 진행되던 일이 마침내 동길에게 닥쳤을 때, 동길은 수도원에 갈 것이라고 말해 버렸다.
난데없는 발표에 교사가 동그란 안경 너머 차가운 눈빛을 쏘았다. 교실의 분위기는 급속도로 냉랭해졌다. 반 아이들의 눈에 의혹이 서렸다. 모두의 한결같은 시선에서 그들이 보내는 압박을 느낄 수 있었다.
질서 잡힌 세계는 물리적 폭력보다 더 큰 힘으로 사람을 겁박할 수 있다. 소속과 배격이라는 양날의 검. 집단이 가진 그 제도적 폭력이 지금 김동길을 향하고 있다.
그러나, 요시다상이 교실에서 도려내 질 수 있을 것 같은 위기를 만난 건 순전히 요시다 상의 잘못이다. 모범 답안이 아닌 것을 말할 수 있는 자유는 3등 시민에겐 없으므로.
“슈 우도 우샤修道者?
自分の 全てを 賭ける人たちは、 朝鮮(ちょうせん)人の 中から 探すことが
자신의 전부를 거는 사람들은 조선인 중에서 찾을 수 없을 텐데...."
出来(でき) ないだろう。
교사의 말 대로 그런 사람은 없다. 개신교 신도들과 천도교 의혈 인사들이 3.1 독립운동의 실패로 무참히 사라진 후에. 애국지사들이 해외로 추방된 후에. 그런 사람은 이 나라에 더 이상 없어야 했다. 아무도 폭력을 쓰거나 소리치지 않고, 누구도 공개적인 자리에서 총독부의 지시에 반기를 들지 않는다. 스스로 굴종하며 제국이 주는 유익함에 편승하기로 한 사람들의 나라. 이것이 김동길이 태어난 이상한 나라다.
물론, 이 이상한 나라보다 더 이상한 것은 동해 문화 집이다. 논다니 패 신분을 모던한 겉치장에 숨기고, 민족의 혼에 대 놓고 호작질을 하는, 그런 여자의 치마폭에 붙어사는 아버지. 그 아버지를 따라 친일파의 뒷방살이를 하는 자식.
“이상하군.”
동길의 신원을 학생기록부를 통해 정확히 알고 있기에, 일본인 교사는 부러 쓴 조선말로, 학생을 찔렀다. 모두가 알 수 있는 발언은 하지 않는 친절함으로. 깔끔하게 선을 지키면서 정확히 상대의 깊은 데를 찌르는 매너는 일본식 친철이다.
조선인 학생으로 학교를 다니며 종종 받아 안는 일본식 친절-친절하게 굴욕 주기-에 대한 적절한 대처법은 침묵이었다. 치고 오르는 감정을 일없던 듯 무던히 넘기기만 하면, 무사히 안착할 수 있는 모던한 시스템이 작동하는 사회가 이 학교였다. 그러나, 단체적 길들임에 익숙해지느냐 마느냐는 오로지 개인의 몫이다. 대 일본 제국을 위한 애국 엘리트로 자라겠느냐 퇴학해 스스로 무지렁이가 되겠느냐. 질문의 요지는 늘 간단했다.
동길은 그나마.
동해문화 집에 길들여지는 것보다는 학교가 낫다고 여겼다. 모두가 모던함을 추구하는 세상에서 사실, 무던함이 욕됨은 아니라고 여겼다.
집으로 돌아가기 싫은 오후마다 관 다리를 넘어갔던 동길은. 조선인 시가지를 배회하면서 무지렁이로 취급받는 조선인 어른들의 사는 모습을 학생 모 밑으로 훔쳐봤다. 그들의 무던함은 동길보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 않았다. 굳이 ‘나는 개인이오!’ 하고 일어서서 친절하고 모던한 이 체제에 불순응 하지 않는다면, 일단은 먹고사는 일에만 열중해도 되었다. 또는 먹고사는 일이 급해서 저절로 무던해져 버린지도 몰랐다. 그리고, 동길도 그런 무던함에는 싫은 마음이 일지 않았다. 오히려 학교를 졸업한 후 이곳으로 와서 흔한 조선인 중 한 사람으로 합해지고 싶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 동길의 아버지는 신시가지에 살고 있다.
아버지의 약함.
북을 가르쳐 주겠다며 다 털어 버리라던 아버지의 비굴했던 눈빛은. 어쩌면 자신이 선호하는 사회에서 배격당하지 않기 위한 처세일 것이다. 약한 자의 생존 본능으로 아들에게 자기가 알고 있는 최선의 길을 알려주려 했는지도 모른다. 이유야 어찌 되었든 일단, 바깥으로 밀려나면 동길의 엄마처럼 하이에나의 먹이가 되어 피와 살을 뜯어 발리다가 밑이 썩어 죽을 것이므로. 그 약한 존재들의 자식이 사회에서 얼마나 약한 처지인지를 안 이상, 동길 또한 이 이상한 나라에 그렇게라도 속해야 한다는 것을 내심으로 타협하고 있었다.
침묵 중인 한 사람으로. 집에서나 학교에서나. 단체의 일원 중 눈에 띄지 않는 하나가 되는 것. 그것이 동길의 살 길이었다.
동길은 고개를 숙이고 입을 다물었다. 교사의 눈앞에서 눈길을 떨구는 태도로 모든 상황이 일없던 듯 복구되기를 바랐다.
그러나, 교사는 기다란 칼집을 만지작 거리며 다가와 집요하게 한 번 더 압박을 했다.
“혼토우니 시라나캇타노? (정말로 몰랐었나?)”
이것은 확인 사살이다. 교사의 말에.
“이이에!”
부정 대답을 하자마자 동길의 가슴이 불안하게 뛰었다.
사실, 동길은 수도자에 대해 자세히 알지는 못했다.
그저 대화조차 나눈 적 없는 한 사람을 동경해왔을 뿐이다.
원산시장에 오토바이를 타고 나타난 서양인.
그가 의료용 왕진가방을 싣고 지나가면서 동길을 향해 미소를 건넸을 때, 사람의 눈빛에 바다가 담겨 있을지도 모른다고 느꼈다.
푸른 눈의 서양인이 조선말로 “안녕하세요?” 라고, 무릎을 꿇고 길바닥 장사치들에게 말을 건넬 때, 누군가의 간단한 행동이 파도보다 찰싹 가슴에 닿는 것도 처음 느꼈다.
아무렇게나 입은 것 같은 낡은 옷에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는 까까머리 서양 남자가 바다처럼 반짝이며 파도 소리를 내는 수도자라니.
믿기지 않을 일이지만 분명히 보았다. 해를 받은 동해바다의 윤슬처럼 그 사람의 몸을 따라 흐르는 빛을. 그 빛은 잡지에 나오는 모던 걸들의 반짝임이나, 등굣길에 흘깃 훔쳐봐야만 했던 또래 소녀의 아름다움과 거리가 멀었다. 매우 부드럽게 반짝였지만 분명히 강했다.
정요섭 수사님.
시장 바닥에서 주워들은 말에 의하면 그는 독일인인데 조선인의 이름을 가지고, 조선말을 쓰며, 이미 오래전부터, 병원에 갈 돈이 없는 가난한 조선인들을 치료해 왔다고 한다. 시외버스를 타고 덕원리에 가면 그 분과 비슷한 독일 사람들이 한 무더기로 살고 있고, 이미 수십 명의 조선인 학생들이 거기서 수도자가 되기 위해 교육을 받고 있다고 했다. 시장 사람들은 그렇게 사는 남자들을 수사님이라고 부른다고.
동길에겐 그들의 단체 생활이 놀라운 것은 아니다. 어딘가에 소속된 단체 생활은 일제식이든, 서양식이든 모던한 체제에 발맞추어야 하는 모든 학생에게 제공되는 삶의 양식이었다.
다만, 새로운 것은 태도였다.
그분과 그를 아는 사람들 사이에 존재하는.
처음 보는 만남의 태도.
헤어짐의 태도.
그 태도들이 이루어지는 자연스러운 속도.
시장 바닥에서 제 각각 살아가는 사람들 속에, 어느덧 오토바이가 들어선다. 그가 왕진가방을 내리기도 전에 사람들은 몰려들기 시작한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체면도 없이. 그 무던한 조선인들이 한 서양인에게 무조건 반갑다고 달려드는 것이다. 여기가 아프다고. 나 좀 봐달라고. 아이든지 어른이든지. 상관없이. 수도자는 사람들의 얼굴과 배를 만지고, 머리를 쓰다듬고 웃고 안아 주었다. 아프다고 말하는 사람도, 피죽도 못 먹어 굶어 가던 사람도 그분 앞에서는 생기가 돌았다.
그분의 드나듦은 절대 침범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가 들어선 공간에는 새로운 시간이 만들어졌다. 그것은 계몽된 사람들이 손목시계를 차게 된 이후부터, 머리로 계산하는 24시간과는 다른 차원의 시간이었다.
해변의 파도처럼 조용히 밀려왔다 밀려가는 자연의 시간. 언제 나타나도 늘 옆에 살았던 사람 같고, 사라지고 나서도 함께 있는 존재로 남겨지는 사람의 시간. 원산 뒷골목 사람들은 자신들의 삶과는 별도로, 또 다른 그분과의 시간들을 품고 사는 것이다. 그분의 당당한 눈빛과 마주친 순간부터 지금까지. 동길이 그랬던 것처럼.
존재가 바다 같은 사람이. 기차보다 느린 속도로 나타나. 무엇도 분열시키지 않는 태도로. 많은 사람들의 시간과 공기를 움직인다. 그것은 총칼보다 강한 힘인데, 그 힘의 정체가 무엇인지 파악할 수 없기에, 수도자는 소년에게 하나의 신비가 되었다.
그러나 신비에 대한 추억은 현실 앞에 무용지물이다. 동길은 안경 쓴 교사의 눈을 제대로 들여다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본능으로 감지되는 서늘함에 뒷목까지 소름이 돋았다. 다른 말을 했었어야 했다. 차라리 의대에 진학해서 의사가 되겠다고 할 걸.
“吉田さん、 大日本帝国の 勝利の 為に 捧げる 祈りする事ができるか?”
“요시다상, 대일본제국의 승리를 위해서 (투신 기도)를 할 수 있겠나?”
“하이!”
두려움이 반동처럼 튀어 올라 동길은 지를 수 있는 제일 큰 소리를 내 버렸다.
마침내. 교사의 입가에 만족의 미소가 떴다.
학우들이 낮은 비소를 띠며 동길에게서 시선을 거두었다. 아무도 동길에게 박수를 치지 않았다. 교사가 돌아서서 교단을 향해 걸어갔고, 학우들의 등 뒤에 남은 동길만 조용히 사전을 꺼냈다.
사사 게루 이노리 스루? 사전 안에 투신기도라는 말은 없어서 두 단어를 따로 찾아보니 投身: 몸을 던지는 것. 祈禱: 인간보다 뛰어난 절대적 존재에게 비는 의식. 이 나왔다.
동길은 조용히 사전을 덮었다. 그만 살고 싶었다. 대일본 제국의 승리를 위한 투신기도라니. 조선인 김동길은 친절히 무시하는 일본인들 사이에서 투신기도(投身企圖 : 자살시도 행위)를 했던 것이다. 차라리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투신했다면 덜 수치스러웠을 순간이었다.
이상한 나라에서 태어나, 이상한 집에 살면서, 가장 이상한 녀석이 되어 가고 있는 나. 김동길은 생애 처음으로 자기 자신을 보기 시작했다. 슬픈 엄마도 약한 아버지도 어린 동생도 겁나는 새엄마도 아닌 나. 김동길은. 지금 왜 이러고 사는 걸까?
여태껏 자신을 들여다 볼줄도 몰랐던 이상한 나는.
체계화된 일본인의 친절함에 갇힌 채, 당당한 서양인의 친밀함을 부러워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