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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쁜 이야기 Jul 22. 2021

바다 빛 당신 2. 문어 엄마와 밀크 캬라멜

2.  문어 엄마와 밀크 캬라멜

1940년. 10월.    

동해 문어.



관다리를 건너자마자 시작되는 일본인 밀집지역. 그 초입에 동해 문화(東海文化)라는 현판을 달고 있는 2층 벽돌집을 동길은 동해문어집이라고 불렀다. 동아일보에 실린 경성의 문화 주택 사진을 엇비슷하게 따라 만든 이 집주인은 문어 같은 새엄마다. 검은 비로드 장갑에 반짝이 모던 스타킹을 신고 노래하고 춤추는 모습이 흐느적대는 문어 같아서 동순이가 붙인 별명이다.     


문어 엄마. 문어 엄마.

동순이는 몰라도, 동길이는 약을 올리려고 불렀는데, 새엄마는 화도 안 낸다. 기다랗게 그린 눈썹을 활처럼 내리며, 뾰로통 나온 우리 입술을 혼내지도 않고. 마음을 다 아는 사람처럼, 밀크 라멜을 꺼내 주는데, 그 맛을 본 이후로 동순인 강아지처럼 방방 뜬다.

문어 엄마라고 부르면 밀크 라멜이 나오는 신나는 규칙이 생긴 것이다.    

 

입 안 가득 라멜을 빠는 동순이를 안아서 그대로 찰싹 달라붙는 문어 엄마. 몸집의 크기로 보면 동순이가 안기는 게 맞지만, 고 조그만 것을 기다란 팔다리로 휘감는 솜씨를 보면 동순이가 안겼다고는 말을 못 한다. 문어 엄마가 그렇게 안아 넘긴 사람얼마일까?     


아버지부터, 식모 이모, 밤늦게 차를 타고 드나드는 일본인 영사관 서장, 우체소 간부, 음악원 주인, 원산 경찰서장, 등 등. 밤 시간에 동해문화집에 찾아오는 손님들에게 문어엄마는 라디오에서나 들을 법한 노래와 춤을 펼친다. 손님들의 술과 담배연기에 문어 엄마의 피아노 연주까지 더해지면, 밤이 입안의 캬라멜 처럼 녹아내리는 것은 시간문제다.         


하지만 동길은 문어 엄마에게 붙지 못 한다.


아픈 동순이를 관립 의원에 데려가라고 돈을 준 문어 엄마인데도, 휘감길 까 봐 겁부터 나는 것이다.

학교에 다시 보내준 사람이 문어 엄마인데도,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인사를 하지 않는다.

그 시간에 문어 엄마는 잠들어있다는 핑계를 대면서.

 ‘다녀왔습니다.’도 하지 않는다.

원산을 이리저리 떠돌다 늦게 들어가면 집안엔 이미 손님들 웃음소리와 아버지의 북소리, 문어 엄마의 피아노 소리, 일본 엔카들이 어지럽게 떠다닌다.        



공업단지 원산이라지만, 관다리만 넘어가면 아직도 新문화인이 되지 못한 조선인들이 수두룩하다. 때 낀 저고리 하나 걸치고 나무 섶을 팔아 1-2전이라도 버는 아이들, 하루 종일 남의 집 빨래해주고 몇 푼 버는 어머니들. 뼈 빠지게 부두 노동을 하고 한 달에 30원도 못 받는 아버지들. 그것에 비하면, 동길이가 찾아온 아버지의 품은 생각지도 못한 과분함이다.


그런데 이 집 공기엔 담배연기처럼 마시기 힘든 무엇이 있다. 생선가시처럼 정확히 목에 걸린다면 뱉어 내기라도 하겠는데, 그러질 못하니 속으로 같은 질문만 되뇔 뿐이다. 아버지는 왜 이러고 사는 걸까?   

     

동순이를 업고 간신히 찾아낸 아버지가 엄마의 유품인 소금(小琴)을 받아 들고 잠시 침묵 중일  때. 동길역시 막막했었다. 세련된 양복에 기름으로 발라 가른 머리, 각테 안경을 낀 아버지는 어느새 잡지에 나오는 모던 보이가 되어있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가족이니까. 만나 서랍처럼 닫아두었던 마음이 열릴 줄 알았는데, 이미 새로워진 아버지는 그런 서랍  없는  해서였다.

 

기차처럼 떠난 아버지지만, 엄마의 유품을 보증서처럼 들고 온 자식들 앞에서 혹시  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소년의 풋내 나는 기대는 새엄마가 틀어 버린 레코드로 끝이 났다.    

     

“화류 춘몽” 기생들의 애련한 팔자를 노래한 음악.   

   

꽃다운 이 팔 소년 울려도 보았으며

철없는 첫사랑에 울기도 했더란다.

연지와 분을 발라 다듬는 얼굴 위에

청춘이 바스러진 낙화 신세

마음마저 기생이란 이름이 원수다.    

     

소년에게도, 구성지면서 애절한 가수의 심정이 가슴에 박혔다. 처음 듣는 노래인데도, 무슨 내용인지 알 것 같았고, 삶이란 자체로 서러운 그 무엇일 거라는 느낌도 들었다. 그 막연한 공감에 동길은 이 노래를 조용히 틀어 준 그 여자가 놀랍기까지 했다. 마치 우리 엄마를 다 알고 있는 듯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때 아버지는. 남의 물건 돌려주듯 무심히.

새엄마가 따르는 술잔을 받아 마신 후 소금을 동길 앞에 내어 놓았다. 여기까지 오느라고 고생했다며 앞으로 더 고생 않으려면 새어머니 말을 잘 들으라 했다. 그 순간, 동길의 마음깊이 간직했던 슬픔이 사라졌다.  그때 말라버린 눈물이 어디로 가셨는지 아직도 모른다.         


하지만 새 집에서 지내다 보니 절로 알게 되는 게 있다. 문어 엄마는 사실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 그렇지만 이 세상을 막연히 살아가기에 충분한 것을 가지고 있다는 것.


하루 일과의 대부분을 위생과 치장에 보내는 문어 엄마는 일본인들의 집보다 더 깨끗할 것 같은 목욕탕과 나누어 먹지 않는 국그릇, 피아노로 생활한다. 이모가 잘 다려주는 원피스에 진주 목걸이를 걸치곤 하얀 얼굴로 사람들의 아픔을 다 안다는 듯이 노래한다. 처음 한 두 번이면 몰라도, 계속해서 듣게 되면 저절로 알게 된다. 아픔을 노래하는 당사자는 사실 아픔을 연기 중일 뿐이라는 걸.         


“술은 눈물인가, 한숨인가." 동해문화집의 단골 노래다. 일본인 어른은 타향살이의 외로움을, 조선인 공직자 어른은 식민지인의 서러움을 한탄했다. 그러나 그들은 이내 웃어 젖히기도 했는데, 문어 엄마가 피어 올리는 분위기에 따라 그렇게 하는 것이다. 사는게 먼저라 뜻하지 않게 면서도. 그래도 인간이고 싶을 때, 웃음과 눈물이 필요한 것뿐이란다.


아버지에게만큼은 그 사실을 알려야 한다고 생각했던, 동길이가. 문어 엄마의 노래가 연기라고 알려주었던 날. 아버지로부터 들은 대답이다. 


아버지가 그렇게 사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그게 좋아서. 좋아서 살면서 사는 게 먼저라는 두껍까지 쓰셨다. 아버지는 모르고. 속아서 그러고 사는 게 절 대 아니었던 것이다.


그날. 동길은 어른이 되면 절대로 술을 먹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똥강아지처럼 밀크카라멜을 받아먹다 보면 술도 그렇게 받아먹게 될 것 같아서, 문어 엄마의 밀크 카라멜도 더 이상 받지 않았다. 동순이처럼 방방 뜨지는 않았지만, 조용히 집어 먹었던 밀크카라멜을 처음 거부했을 때. 동길은 잠시 우쭐해지기도 했다.     


자신이 문어 엄마의 속내 따위는 다 알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신문화인이고 싶어서. 아주 잠시만 필요한 눈물과 웃음을 팔아서. 문어 엄마는 박람회에서 나오는 진기한 물건들을 사고, 30원은 거뜬히 넘는 구두와 100원도 더 하는 여우 목도리와 얼마인지 알 수도 없는 벽돌집을 산 것이다.     


라멜을 먹지 않는 동길을 보는 문어 엄마의 눈빛에서 웃음이 사라졌을 때, 동길은 내심으론 더 당당해졌다. 그러나, 소년의 자부심은 현실 앞에서 초라해질 뿐이다.


이 집에서 나오는 흰쌀밥과 건강한 반찬을 먹고, 풀 먹인 옥양목 교복을 입고 일본어로 수업을 하고 있는데, 밀크 캬라멜 따위로 결백하려는 꼴이 우습다. 그 사실을 알고 나자 동길은 문어 엄마와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서로 간에  말해봤자 남사스러운 속내. 굳이 꺼내지 않겠다는 선이 그어진 것이다.        

 

어느 날, 아버지는 따로 방에 불러 난데없이 진지한 분위기를 잡았다. 집안의 삭막한 분위기를 조정해 보려는 시도를 한 것이다.


아버지는 동길이가 삶에 대해 번민하기 시작한 것은 사춘기가 되었다는 표시라고 했다.


 ‘질풍노도의 시기’.

누구나 지나가는 그 시기를 마음껏 발산해 버리라며 동길에게 북을 가르쳐 주려고 했다. 그러나 동길은 북을 치지 않았다. 아들에게 억지로 북채를 넘겨주며 함께 밤을 나는 법을 배우라는 아버지는. 이 집안에서 문어 엄마보다 확실한 약자였다.


그것을 깨달은  순간에  마음 깊은 어디가에서는  가셨던 눈물이 다시  돌아 오는 듯도 했다. 그러나  끝내. 동길은 아버지를 따라 하고 싶지  않았다.

   

학교는 마쳤지만, 집으로 들어가기 애매한 저녁 어디쯤. 바닷가 방파제 위에서 엄마의 소금을 불었다.  태풍처럼 질풍, 바다처럼 노도한 적 없는 동길의 가늘고 여린 사춘기는 우물처럼 깊고 좁은 대나무 관을 따라 바다로 흘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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