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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쁜 이야기 Sep 23. 2021

바다 빛 당신 10. 강을 건넌 사람들

10. 강을 건넌 사람들.

1944년 9월.   

 

“일본이 덕원 신학원 폐쇄를 연내에 이루지 못한다면,

 수도원 건물 자체를 징발할 거래.

 원산항을 군사기지로 쓸 계획이라 군인들이 묵을 대규모 숙소가 필요하다고.”     


태주가 일급비밀을 기숙소 학우들에게 전했다. 유박사님에게 흘러드는 정보를 동생 유미옥 아녜스가 정리해 준 내용일 터였다.


다시 해석해보면, 루치오 로트 원장 신부님의 그날 강론은, 신학원의 생존을 위해서, 이미 기울어진 협상 테이블을 조금이라도 유리하게 세우기 위한 기습 포석이었던 거다. 라며, 녀석은 자기 의견을 덧붙였다.    


"결국은 정치였어. 평화마저도."


태주의 쓴 말을  더는 말릴 수 없을 것 같아 동길은 드러누웠다. 모포를 덮고 잘 준비나 하려 했다.    


“세상을 움직이는 건  힘이야. 평화마저도 나라 없는 설움일 뿐이지. 언제나 볼모신세인  조선인에겐.”


“그러니, 이 시국에 우리는 우리나라를 찾아야 할까, 하늘나라를 찾아야 할까?”


“하긴. 일본이나 서양이나 조선 땅에 와서 주인 행세인 건 맞아. 어떤 얼굴로 다가왔든 간에.”     


라며 태주의 말에 동조하는 다른 목소리들이 들려왔다.     


    

경찰서로 끌려갔던 루치오 원장 수사님은 강대국 독일인답게 하루 만에 무사 귀환하셨다. 경찰서장과 무슨 말이 오고 갔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들이 원장님을 돌려보내는 대신 꼬투리를 잡은 것은 원장 수사님의 원고를 한국어 문법에 맞게 교정하고 다듬어 준 치호 형이었다. 치호 형은 참고인 신분으로 불려 가서 삼일 동안 취조를 당하고 돌아왔었다. 일본이 누구를 가시방석에 앉히려 했든 두 분 모두 사제다운 평온함과 침묵으로 일상에 복귀하셨기에, 걱정하며 지켜보던 양성기 수련생들은 그저 구경꾼이 될 수밖에 없었다.

    


치호 형이 돌아온 다음날 [신학원의 미사는 수도 공동체 형제들 안에서만 당분간 집전된다]는 공문을 보았을 때에도, 동길은 덕원 신학원의 정의로움에 대한 일본의 야비한 처벌 따위 맷집 좋게 맞아준다는 감정이 우선이었다. 그러나, 태주는 또 다른 걸 보고 있었다.     


“고래 싸움에 밥그릇 깨지는 소리.”     


녀석이 이 공문을 통해 읽어 낸 것은, 신자들의 한 끼였다.


몇 십리를 걸어와 미사를 드린 후, 수도원에서 차려 낸 밥 한 끼라도 먹고 가던 신자들이 이번 일을 계기로 굶지 않을 수 있는 한 번의 기회를 박탈당했다는 것이다.    


태주의 예민함에, 동길도 동조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요셉 수사님의 보증으로 학자금 비용을 내지 않고 수도원에 업혀 사는 동길이 태주가 꺼내 드는 문제를  해결할 힘은 없었다. 아버지의 엄청난 후원과 의료 봉사에 더해 스스로를 봉헌한 성가정의 모범생인 태주의 당당한 문제 제기는. 주머니에 사정이랄 것도 없는 그야말로 빈털터리 동길에겐 형편 밖의 문제였다.    


" 해결할 수 없는 문제는 해결할 수 있을 때에 생각하자.”    


그저 수련생일 뿐인 우리들이 서로의 어깨를 다독여 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줄 알았던 동길과 달리. 태주는 ‘정의로운 말 한마디에  날려버릴 정도로 가벼운 취급을 당해 온 우리 신자들의 밥 한 끼’를 더욱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럴 의도는 없었겠지만, 여동생 아녜스의 편지는 종교적 일과 안에서도 간간히 올라오는 ‘종교가 삶을 해결해 줄 수 있나?’는 그의 의구심에 대해, 신앙으로 묵인하며 간신히 잡고 있던 천국과 지상 사이의 정신적 균형을 현실적으로 쏠리게 만들기에 충분했고, 태주에게 이제는  ‘잃어버린 밥 한 끼’, ‘우리 민족의 잃어버린 밥그릇’ 문제로 여겨졌다.


 관점으로 원장 수사님의 평화에 대한 강론에서 생존을 위한 정치적 포석이라는 계산을 추출해 내고, 동기들에게 나라 없는 우리들이 진정 찾아야 할 것이 하늘나라인지를 우리나라인지 묻고 있는 내 친구. 저러다 신앙심의 뿌리까지 뽑힐까 걱정이 된 동길이 다시 일어나 끼어들지 않을 수 없었다.     



“그만해. 유태주. 비약이 심하다.

 만약 이 신학원이 정치적으로 평화를 외치는 곳이라면

 너 같으면 일본에 있는 수도원 땅을 팔아서까지

 조선인들을 먹여 살리겠니?”    


2차 세계대전 이후, 스위스 외의 다른 나라에서 선교자금을 한 푼도 받지 못해, 일본의 도노오카 수도원을 팔아서 조선 베네딕도회를 살렸다는 이야기는 학생들도 알고 있다. 수사님들의 금욕적인 생활 방식과 근면한 농장 경영으로 알뜰히 살아왔음에도 지금은 그 돈마저 바닥을 보이는. 그야말로 가난의 수렁에 빠진 덕원 수도원의 목전에.  이제는 일본군이 수도원 폐쇄냐 건물 징발이냐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하라며 날강도 같은 칼을 들이밀고 있었다.     


에 대한 의노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하느님의 참 평화’를 강론했다고 잡아가는 일본이나, 신자들의 밥 한 끼가 너무나 가볍게 박탈당했음에 자존심 상해하는 조선인 수련생이나. 헌신하는 외국인 선교사들 앞에 차라리 부끄러워도 모자를 일이 아니냐는 동길의 말에.    


“하긴, 담장 안의 우리들을 키워내느라 일본 수도원 땅까지 팔아가며 버티시는 선배들에게 담장 밖의 양 떼까지 책임지라고 할 순 없겠지.

그거야 말로 물에 빠진 사람 구해줬더니 보따리 내놓으라는 격 아니겠어?

오해하지 마.

내 말은 가톨릭의 가난이 말이야. 하느님 앞에서의 가난이. 영원히 우리를 물에 빠진 사람인 채로 두고 있지 않냐는 거에 있으니.”    

라고. 태주는 대답했다.    


도돌이표다.

녀석의 의문은.

스스로 결단 내지 않는 한 누구도 풀어 줄 수 없는.    


하지만 어떻게 결단 낼 수 있는 지 조차 동길은 모른다.

고래 싸움에 밥 한 끼의 기회를 두 달 동안 박탈당할 만큼의 가난이. 어떤 자존심에 새겨지는 상처인지를 도무지 모르겠다.


논다니패의 자식으로 태어나. 우리 나라, 우리  땅,  우리 가정에 대한 애착 조차 없이 살아온 인생이라. 동길은 우리나라보다는 솔직히 하늘나라가 훨씬 좋았다. 한편으론, 뿌리내릴 곳도 없이 떠돌다가 이제는 수도원 담장 안에 자리를 잡았다는 이유로 수도원 담장 밖 사람들을 그림 구경하듯 보게 된 것에 양심이 찔리는 사실이어도. 


내가 뿌리내릴 곳을 찾았다는 안도감의 이면에는. 분명 하느님만을 따른다며, 이 평화. 이 세계의 밝음에 익숙해져, 수도원 밖의 고통엔 무감해진 채, 자신은 선한 일에 몰두한다는 자부심으로 가득 차 있었던 마음이 있었다.

자칫 바깥사람들에게 우월감을 가지며 자신은 선한 삶을 살아간다고 착각하기 딱 좋은 그런 어둠에 잠겨 있었으면서. 그런 것도 몰랐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시, 남의 밥 한 끼에 내 뿌리를 뽑고 싶진 않아. 동길은 두 손을 들고 만다.

    

“그만하자.

원장님이 우리들이 이런 사정까지 알고 계시길 바라시진 않을 것 같아.

 덕원은 아직 그럭저럭 버틸만하다고.

어른들이 거기까지 만을 알기를 바라신다면

 우리도 원장님과 치호 형이 무사히 돌아온 것에 만족해야 하지 않을까?”    


그랬더니 녀석이 또 한 마디를 더한다.    


“베드로. 담장 안의 우리만 무사하면 무사한 거냐?”    


울컥, 화가 치민 동길이 태주에게 소리를 치고 만다.

    

“잘났다. 그래!

 그런 거창한 질문은 당사자들에게 직접 해봐.

 자꾸 남의 다리만 긁지 말고!”    



    

그렇게 뒤숭숭함으로 한데 모인 몇몇의 수련생들이, 베네딕도 사제의 방을 찾아 나섰다.   

 

원장 수사님의 강론을 미리 읽고, 문법을 고쳐 주었다면, 그날 하실 말이 무엇인지 치호 형은 미리 알았을 것이다. 그 강론이 어떤 파장을 일으킬 것인지를 예측할 수 있었을 텐데도, 베네딕도 수도원의 첫 한국인 사제인 김치호 베네딕도가 왜 그 강론에 이의를 달지 않았는지. 단지 교정자 일 뿐이었다면, 잡혀간 삼일 동안 심정은 어땠는지, 그리고 일본 당국으로부터 받은 처분 앞에서 느껴지는 소회는 무엇인지, 또 두 분 다 어째서 풍전등화인 수도원 상황에 침묵으로만 소일하는지가 너무나 궁금했지만. 우리들 중 누구도 막상 치호 형의 방 문을 호기롭게 두드리진 못했다.   

  

“역시나, 예의가 아닌 것 같다.”

우린 수련생 주제에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있어.

 수도원의 누구도 알려주지 않은 고급 정보를 말이야.”   

 

결국 일부가 다시 기숙 소로 돌아갔고.

태주와 동길이만 남았다.     


“핵심만 여쭤봐라.

주저리주저리 너만의 의견 따위 늘어놓지 말고.”  

   

마지막 남은 동지로써, 동길이 눈에 힘을 주며 태주에게 경고장을 날렸다. 태주는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마침내 치호 형의 방을 노크했다.     



“네.”     

잔기침 소리와 함께 치호 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문을 열고 들여다본 사제의 방은 좁고 간결했다.


 1인용 나무 침대 바로 맞은편에 책상과 의자 사이엔 한 사람이 지나갈 정도의 틈 밖에 없었다. 정면에 보이는 십자고상 아래 선반으로 쓰고 있는 작은 벽난로. 나무 침대 밑 옷 몇 벌을 개어둔 서랍 상자가 전부인 방안에는 향 내음이 맴돌고 있었다. 치호 형은 책상에 앉아서 등불에 의지 한 채 수도원에 필요한 여러 서류들을 번역 중에 있었다. 고뿔이 심했는지 안 그래도 마른 얼굴이 더 야위어 보이긴 했지만, 안경 너머 뿜어 나오는 은빛 미소는 여전했다.    


형의 침대 위에 나란히 앉아 가까이 마주 보며 태주는 약속과 달리 할 말을 다해 버렸다. 치호 형은 길게도 늘어지는 태주의 말을 넉넉히 받아 주면서. 태주가 궁금해하는 수도원의 속사정에 대해서도 사실대로 말해 주었다.    

 

수도원 건물 징발이 신학원 폐쇄보다는 차악의 선택이겠지만, 원장님께서 한 겨울에 천 막살이는 지나친 처사라고 징발 시기를 내년으로 미루기 위해 일본 당국과 줄다리기 중이라고 하셨다. 무엇보다 신자들과 함께 할 수 있는 미사 재개를 위해 교황청 차원에서 일본의 종교 탄압에 반대하는 국제적인 힘을 실어 줄 것을 호소하는 중이라고 하셨다.    


후배의 호기심에 성실히 대답해 주는 치호 형과

근원의 문제를 가지고 그날의 강론이 정치적 평화였음을 확정 지으려는 태주가 서로의 이야기에 집중하는 동안, 동길은 잠시 방관자가 되어 주변을 둘러봤다.    


우연히 눈에 들어온 책상에는 치호 형이 번역하던 서류들이 있었고, 흘깃 봐도 알 수 있는 삐뚤빼뚤 원장 신부님의 한글 편지가 보였다.  루치오 로트 원장 신부님이 한글로 쓰신 글을 치호 형이 다시 일본어로 수정해 일본 당국에 최종적으로 보내는 협상 문건 같았다.     



“38년 신학교가 전소된 후에, 만사를 다 내팽개치고 싶은 상황에서도 우리들이 더욱 크게 신학원을 세운 것은 재난 안에서도 하느님의 뜻이었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지금의 덕원 신학원은 당신들의 폭압 덕분에 개교 이래 가장 많은 학생 수를 받아 안고 있으니 그 믿음은 옳았습니다.....

...... 비록 우리에게 한 푼의 돈도 남아 있지 않고, 포도주를 판매해 얻는 수익으로만 겨울을 나야  할지라도, 전능하신 하느님께서 이 건물을 전쟁용으로 넘기게 두지 않을 것이고, 한 겨울에 양 떼들을 천막에서 얼어 죽게 하지는 않을 것임을 믿습니다. 당신들의 집요함 위에 항상 더 높은 차원의 은혜가 우리들에게 있어 왔다는 것을 조선인 신자들은 경험으로 알고 있으며...”   


 

가려진 노트 때문에 다 읽지는 못했지만 그 속에는 정치적 평화니, 정의로운 평화니. 내세울 것도 없이 초라한 덕원 신학교의 신세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빈털터리에 식구만 많은 흥부네가 박 씨를 기다리듯 하느님의 은총을 기다리는 심정이 결연하게도 나와 있어서, 되려 할 말 없이 슬퍼졌다.         


백조의 침묵 밑으로 무수히 흔드는 수면 아래 물길질을 알지  못한  태주는 여전히 하느님의 평화가 과연 이 세상 어디에서 실현되고 있는지를 치호 형에게 추궁하고 있었다.    


“우리에겐 며칠 고생하면 또 먹을 수 있는 밥이지만, 수도원 밖에서 근근이 살아가는 조선인에겐 오늘 먹지 못하면 내일은 없을 그런 양식입니다. 그것이 협상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 졸렬상황들과 조선인의 마지막 은신처 마저 없애려고 하는 일본에게, 주님의 은총을 비는 것 말고는, 주님의 평화를 말하는 것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다면! 제가 불안해서. 주님을 못 믿을 것 같다는 말입니다.”    


결국, 몇 달째 수련 동기들을 들볶던 태주의 마음속 깊은 질문이 터져 나왔다. 어둠에 대한 불가피한 수용이라는 것을 모르는 부잣집 도련님 유태주가 담장 밖 안타까운 사정에 이렇게나 불안 해 하는 건 분명 그의 의로움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미 비빌 언덕 없이 난파를 향해 가고 있는 담장 안 사정에도 차분한 치호 형의 태도는. 태주의 의로움이. 김치호 베네딕도와는. 완전히 다른 신앙을 가진 것처럼 보이게 했다.    


 “하비에르.

 삶의 여러 면들을 보게 될 때마다

 놀라기만 한다면 성장할 수 없어.


 불안이 너울 대면  일단 죽어 보렴.


 그럼, 건너야 할 죽음의 강이 매 순간 새로운 모습으로 나타나는 게 삶이란 걸 보게 될 거다.

그때 진정

살길과 죽을 길을  선택하고 책임지는 어른이 되는 거야. ”    


“ 그 정돈 저도 알아요.

  이순신 장군도 죽으려는 자는 살 것이고, 살려는 자는 죽는다. 했잖아요.”    


버릇없는 부잣집 도련님. 지금 너를 응대해 주는 치호 형의 처지가 어떤지를 조금이라도 헤아린다면...    온 삶을 갈아 넣어도 구제불능인 조선의 가난 앞에서 필사적으로 최후의 권리를 방어하고 있는 독일인 원장 신부님의 심정을 안다면....

 

  “저는 다만, 한 명의 사나이로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죽겠다고 여기까지 왔는데...

  막상 이 안에 있으니,

 어디에서 죽는 것이 진짜 그리스도를 위한 죽음인지

  알지 못하겠으니까 묻는 말입니다.”    


순간, 약간은 어린아이 보듯 태주를 보고 있던 동길의 마음 한 구석이 철렁했다.


너는 죽겠다고 여기로 들어왔다고?

나는 살기 위해 들어왔는데...    


그러나 동길의 놀란 마음과 달리 태주의 진심을 다 알고 있다는 듯, 치호 형은 후배가 열지 못하는 그 문을 열 실마리를 차분히 내어 놓았다.    


“죽을 길은...

 네 마음의 중심을 따라 열리겠지?


 그리스도를 위해 죽겠다고 결심한  그때,

 네 마음의 중심에는 뭐가 있었던 거니?”    


“마음의 중심이요?”    


“음.  이 불안에는 그리스도를 위해 죽는 것보다  

  더 근본적인 진원 있는 거 같구나. ”   

 

“형의 말은 그러니까 제가 이렇게나 흔들리는 게

 종교적 맹세 때문이 아니라는 겁니까?

 죽어야 할 이유가 꼭 그리스도에 있지 않아도 된다는 겁니까?

돈에 죽고, 사람에 죽고, 힘에 죽고, 권력에 죽어도...

사람을 살리는 길이면... 그래도 된다는 거냐고요?”     


다소 충격을 받은 듯한 태주의 얼굴에 여전한 미소를 지으며 치호 형이 끄덕였다.    

 

일단 네가 죽기에는 너무 자존심이 상할 것 같은

 그것들 앞에 먼저 죽어 보면.

 하느님은 어디에나 계시다는 것을 느끼게 될거다.

 여기가 조선인의 마지막 은신처가 아니란 걸 알게 될 거고.

 우리 민족이 밥 한 끼의 기회를 잃었다고

 굶어 죽는 약골은 아니란 것도 보게 될 거다.”    


치호 형의 말에 태주는 이제야 폭풍이 걷힌 듯 명쾌해진 얼굴을 했다.   

 

 “ 이 수도원이 조선인들의 마지막 은신처가 아니라면,

   제가 이곳에서 새 빠지게 고생할 이유도 없겠네요.

   내 마음의 중심은 사람들을 살리는 데에 있으니까요.


태주의 고백에 치호 형이 태주를 안아 도닥여 주었다.     


“두려움의 강을 건넜구나.”   

하느님은 어디에나 계실 테죠?”

“너의 길을 축복한다, 하비에르.”    


동길로써는 선뜻 이해되지 않는 대화를 주고받으며 두 사람은 누구보다 가까운 형제가 된 듯 서로를 감싸 주었다.

    


방금. 

태주는 수도자의 길을 걷지 않겠노라고 의사를 표시했다. 그런데, 선배 사제인 치호 형이 그걸 축복해 주고 있다. 동길은 이번에야 말로 정말이지 방관자가 된 기분이었다.

두 어른 사이에 혼자 꼬맹이로 남은 기분이란 게 더 적절할 것이다.  아니, 소용돌이 속에서 이미 강을 건넌 사람들을 보고 만 있는 표류자 신세가 된 기분이었다.



하느님이 어디에나 계시다면, 치호 형은 어째서 사제복을 입고서 수도원 안에서 졸렬한 일본의 강탈에 대응해 하느님이 우리 편임을 외치는 원장 수사님의 눈물 나는  편지나 번역하고 있는가? 능력 면에서나 인품 면에서 독립군 외교관으로 나서서 민족의 등불이 되고 원산경찰 서장쯤은 제거 버려도 모자랄 것 하나 없는 치호 형이.

그리스도를 위해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죽겠다고 서약한 사제가, 실은 그리스도보다 더 안에 든 마음의 중심을 찾아야만 죽을 길이 열린다는 말을 다니?        



태주가 죽음의 기쁨을 맛 본 그날 밤.

죽기 위해서가 아니라. 제대로 살기 위해 이곳까지 찾아든 동길은. 솔직히 힘이 빠졌다.     


이 수도원의 수도자와 사제들은 하느님의 뜻에 따라 살기 위해 속세에서는 죽겠다고 서약했다. 우리 모두 그 영광스러운 죽음을 희망하며 수행의 고단함에

선배들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단맛으로 그리스도께 감사 드리며 살았던 것이다.


외향적 품위 유지를 위해 끝없이 타인을 갈취하며 탐욕의 물을 마셔대던 지옥에서, 사막의 한가운데서도 목이 마르지 않는 천국으로 건너왔다고 믿었다. 아무리 포장해도 추함을 들키고 마는 속세에서, 아무것도 포장하지 않아도 아름다움이 드러나는 천상으로의 탈출. 확실히 믿을 만한 살길을 찾아 마침내 이곳으로 들어왔다고 믿은 동길에게.


곧 난파를 앞둔 수도원이란 배는.


시시각각 두려움의 강은 모습을 바꾸어 언제든지 나타나며, 그 강에서 죽기를 결단할 때에 꼭 종교적 틀이 해답은 아니고, 하느님은 어디에나 계시다고 안내 했다.


 ‘방향도 가늠할 수 없는 소용돌이에 빠진 것을 왜 알려주지 않느냐.’고 묻는 수련생에게 스스로 죽을 데를 찾으라니. 


거기서 끝이 아니다. 죽고 나면 또 다른 죽음의 길이 계속해서 열릴 것이라고..... 그때 마다 해온 선택과 짊어진 책임으로 인해 비로소 어른이 된다고.  


말귀야 알아 들었지만 정말이지 어쩌라고다.

내 마음의 중심에 따라 짊어메는 멍에야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동길은 그저 한 수도자를 닮고 싶어 이곳에 왔을 뿐이라 그리스도 보다 더 깊은 중심이 무엇인지도 몰랐고 제 마음의 한 가운데에서  끌어 다 멜 멍에는 아무리 들여다 보아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영원한 천국을 희망하기에 무한성에 대한 두려움을 끊임없이 시험당해야 하는 길. 그것이 수도자의 길이라면? 선배들을 따랄 갈 수 있을 법도 해보였다.


그러나 그 보다 더 한 중심에서.

나와 그리스도를 동여멜 허리띠를 찾아야 한다면?

뿌리 없이 표류하고 말 것 같은 두려움이 먼저다.


죽기를 각오하고 이곳에 들어와.

평생을.

어디에.

충실할 것인지를.

담장 밖에서 찾아낸 친구를 보면서.

살길을 찾아 담장 안으로 들어 온 동길은.

동해문화 집에서 처럼  다시 무력감에 휘감길 것 같았다.


 전능하시고 무한하신 하느님과 하는 ‘어렴풋한  보물찾기’를 나약하고 유한한 인간이 죽기까지 할 수 있을까?


없다.


일단은 거기까지.

인정하자.

난파를 눈 앞에 둔 배라도 멋들어진 형제들을 보는 기쁨은 충만하였으므로. 여기나 동해문화집이나는 아닐 것이다.


그나마 스스로의 키를 인정하고 나니 조금 편하다.


오늘  그 강을 건너지 못했데도.

김동길은.

다 자라지 못했기에 품고 있는 실낱같은 희망을

다시 하늘에 걸어두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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