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가깝다는 이유로 가장 많이 상처 주었던 사람이 있나요? 곁에 있는 소중한 사람의 크기를 너무 늦게 깨닫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부끄러운 고백을 세상에 내놓습니다."
잠든 당신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세월의 풍파를 고스란히 맞으면서도 여전히 고운 얼굴이지만, 눈가에 깊게 파인 주름을 마주하니 가슴 한구석이 미어집니다. 2008년 당신에게 썼던 빛바랜 편지를 꺼내 보며, 십수 년이 지난 오늘에야 비로소 '당신'이라는 사람의 크기를 온전히 실감합니다.
젊은 시절, 당신은 참 예뻤습니다. 그 고운 미소를 머금고 내게 와주었건만, 나는 당신에게 '폭군'과 다름없는 남편이었습니다. 나의 허물을 감추려 애꿎은 당신에게 화를 냈고, 마치 세상의 짐을 나 혼자 다 짊어지고 가는 양 오만을 떨었습니다. 나는 나만의 성(城)에 갇혀, 가장 가까운 당신을 외면하며 살아왔습니다.
돌아보니 당신의 세월은 마르지 않는 눈물이었습니다. 80년대 초부터 스키와 골프를 즐기고 수십 번의 해외여행을 다니며 호화로운 삶을 누릴 수 있었던 것은 결코 나의 능력이 아니었습니다. 희귀병으로 고통받는 딸아이를 기어이 살려내고, 가정을 경제적 풍요의 반석 위에 올려놓은 것은 뒤돌아보지 않고 달려온 당신의 처절한 투쟁 덕분이었습니다. 당신은 꿈을 이루기 위해 매정할 정도로 자신을 채찍질하며 홀로 외로운 길을 걸어왔던 것입니다.
"우리 예쁜 딸아이를 유치원만이라도 다니게 해 주십시오."라고 기도하던 당신은, 결국 아이를 대학생으로 키워내는 기적을 일궜습니다. 하지만 그 기적 뒤에는 4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딸의 병마와 싸워온 당신의 으스러진 몸과 마음이 있었습니다. 이제는 6년째 코마 상태에 빠져 사투를 벌이는 딸의 곁에서, 당신은 매일 아침 들리지 않는 속삭임을 건넵니다. "딸, 잘 잤어? 오늘은 12월 29일이야..."
나는 그 그늘 아래서 풍요를 누리면서도, 정작 당신의 가슴이 시커멓게 재가 되어가는 것은 보지 못했습니다. 7년 전, 인생의 황혼에서 참회록을 썼음에도 나는 달라진 것이 없었습니다. 딸을 지키는 당신을 '천사'라 칭송하면서도 정작 당신의 짐을 나눠 들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당신의 헌신이 짜증스럽다며 화풀이를 했고, 우리가 떠난 뒤 홀로 남겨질 딸의 운명이 두려워 차라리 아이가 먼저 하늘나라에 가길 기도했던 비겁한 아비였습니다.
그런 당신이 보름 전, 불의의 사고로 발목을 다쳐 멈춰 서고 말았습니다. 침대와 의자 사이, 그 좁은 세상에 갇혀 매일 고통을 호소하는 당신을 부축하며 나는 이제야 비로소 당신의 마음을 배웁니다. 아픈 와중에도 혹여 자신을 다치게 한 친구가 미안해할까 봐 말을 고르고, 오히려 그를 위로하는 당신을 봅니다. 내가 평생 기대어 살아온 사람이 얼마나 단단하고 깊은 나무였는지 이제야 깨닫습니다.
당신은 내가 무너지지 않도록 평생 내 곁에서 균형을 잡아준 나무였습니다. 당신을 잊고 살았던 세월만큼 깊은 참회의 글을 적어보지만, 이미 지나간 당신의 눈물을 무엇으로 보상할 수 있을까요. 식어버린 당신의 가슴을 이 뒤늦은 고백이 조금이라도 데워줄 수 있을지 두렵고 미안할 뿐입니다.
이제 당신에게 빌려온 이 화려한 삶의 자존심을 모두 내려놓습니다. 남은 생은 당신의 속도에 맞춰 나란히 걷겠습니다. 예전처럼 앞서 가지 않고, 당신이 내어준 너른 품 안에서 이제는 내가 당신의 지팡이가 되려 합니다.
"사랑합니다. 진심으로 사랑합니다.
그리고 미안합니다.
나의 삶은 처음부터 끝까지, 당신이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