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라는 나무에 기대어 산 줄도 모르고

- 600만 불의 딸아이, 그 후의 이야기

by 펠렉스

프롤로그:

600만 불의 기적, 그 너머의 숨겨진 눈물

사람들은 우리 딸아이를 ‘600만 불의 아이’라고 불렀습니다. 거대한 치료비와 불가능해 보였던 생존의 기적을 일컬어하는 말이었지요. 하지만 기적이라는 화려한 수식어 뒤에는 33년이라는 긴 세월, 그리고 코마 상태로 누워버린 지난 7년의 지독한 투쟁이 숨겨져 있습니다.

이 글은 기적의 주인공이 아닌, 그 기적을 하루하루 숨결로 이어온 한 여인과, 그 여인의 그늘에서 평생을 기대어 살았던 한 남자의 뒤늦은 고백입니다. 600만 불의 후속 편은 환희가 아니라, 묵묵히 서로를 부축하며 걷는 우리들의 남은 생에 관한 기록입니다.

왜 살리셨습니까

이 질문은 의식불명인 딸아이의 고통을 말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숨만 쉬는 아이 곁을, 엄마라는 이유 하나로 24시간 지켜야 했던 늙은 에미의 삶을 말하고 싶었습니다. 엄마이기 때문에 그 모든 고통을 받아들였습니다. 하루 이틀도, 한두 달도 아닌 시간이 흘렀습니다.

중환자실에서는 하루 두 번, 30분의 면회가 전부였지만 의식이 돌아오지 않은 채 일반병실로 나오자 보호자의 삶은 그날로 나락으로 떨어졌습니다. 환자는 숨만 쉬니 그렇다 쳐도 보호자는 매일이 사투였습니다. 간호사의 손을 빌리기 어려운 일들은 모두 보호자의 몫이었고 한 사람이 감당할 수 없어 두 사람이 매달려도 쉴 틈은 없었습니다.

두 시간에 한 번씩 몸을 돌려 욕창을 막고 가래와 침을 빼내기 위해 수시로 석션을 하고 대소변을 치우고, 호스로 죽을 먹였습니다. 쪽잠으로 이어지는 날들, 그 시간을 어찌 말로 다 할 수 있겠습니까. 한 시간만이라도 아무 생각 없이 푹 자고 싶었습니다. 이 소망조차 호사처럼 느껴질 만큼 삶은 이미 무너져 있었습니다.

병원 규정상 일정 시간이 지나면 이 상태 그대로 집으로 돌아가 그 누구의 도움도 없이 병구완을 계속해야 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알았습니다. 이 싸움에는 끝이 없다는 것을. 하루아침에 쓰러져 버린 것은 아이만이 아니었습니다. 보호자의 삶도 함께 무너졌습니다. 늙은 나이에 보호자의 건강은 이미 바닥이었고 나이 들어 언제 잘릴지 모르는 아비는 기죽은 얼굴로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산다는 것 자체가 의미를 잃은 채 혼은 오래전에 빠져나가 있었습니다.

하느님, 딸아이 병구완을 한 지 서른 해가 훨씬 넘었습니다. 이제는 저를 놓아주십시오. 딸아이를 편안하게 해 주십시오. 예전에는 나보다 딸아이가 하루 먼저 갔으면 하고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 기도마저 의미를 잃어버렸습니다. 딸아이가 정신이 있을 때 농담처럼 말하던 그 말, 늙은 에미가 먼저 가게 도와달라는 그 말을 이제는 기도가 되어 되뇝니다. 주님, 이 고통에서 이 삶에서 부디 헤어나게 도와주십시오. (2018년 기록)

33년의 세월, 7년의 사투

딸아이를 장애아로 돌봐온 지 33년, 그리고 아이가 코마 상태에 빠진 지도 어느덧 7년이 흘렀습니다. 길고 긴 간절함 끝에 기도는 어느새 마르지 않는 눈물이 되었습니다.

사실 이 글은 2018년 가을, 곁에서 고통을 견디는 아내를 보며 차마 입 밖으로 내지 못한 아내의 아픈 속마음을 적었던 기록입니다. 정작 아내는 단 한순간도 딸의 손을 놓은 적이 없었고, 오로지 아이가 다시 일어나기만을 간절히 기도해 왔습니다. 그런 아내의 숭고한 헌신을 지켜보며, 남편인 나는 아내에게 한 치의 불편함도 주고 싶지 않은 미안함과 애틋함을 이 글에 담았습니다. 이 기록은 결국 내 삶의 버팀목이 되어준 아내의 세월을 기억하며 쓴, 나의 진심 어린 헌사(獻辭)입니다.


하루를 쉬게 해주고 싶었을 뿐입니다

아내에게 하루만이라도 숨을 돌릴 시간을 주고 싶었습니다. 7년 만에 선택한 1박 2일의 짧은 여행. 하지만 그 선택이 우리 삶의 방향을 예기치 못한 곳으로 이끌었습니다.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었습니다. 원망할 사람도 없었습니다. 다만 되돌릴 수 없는 찰나의 사고가 우리 앞에 놓였을 뿐입니다. 나는 이 모든 과정을 주님의 뜻으로 받아들입니다. 우리가 알 수 없는 더 깊은 섭리가 있음을 믿기에, 닥쳐온 시련 앞에 누구를 탓하기보다 서로의 손을 더 꽉 잡기로 했습니다. 그날 이후 아내의 삶은 새로운 통증과 마주하게 되었고, 나는 그런 그녀를 부축하며 다시 하루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정작 본인의 몸이 부서지는 고통 속에서도 아내는 내 친구를 먼저 걱정했습니다. "혹시 나 때문에 마음 아파하지 않을까"라며 말을 고르고 또 골라 오히려 상대방을 위로했습니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한참을 말없이 서 있었습니다. 그제야 알았습니다. 내가 평생 기대어 살아온 사람이 얼마나 단단하고 깊은 사람이었는지를 말입니다. 나는 늘 내가 가정을 버티고 있다고 착각했지만, 사실은 아내가 조용히 버텨준 거대한 나무였음을 이제야 깨달았습니다. 나는 그저 그 나무 그늘 아래서 편히 쉬기만 했던 철없는 남편이었음을 고백합니다.

다시, 삶이라는 이름의 숙제

딸아이를 지켜낸 것은 의술도, 600만 불이라는 거대한 숫자도 아니었습니다. 매일 밤 쪽잠을 자며 아이의 숨소리를 체크하던 한 여인의 지독한 사랑이었고, 자신의 뼈가 부러지는 고통 속에서도 남을 먼저 걱정하는 아내의 성정이었습니다.

이제 나는 다시 기도합니다. 비록 내일이 기약 없는 사투일지라도, 서로가 서로에게 기댄 이 나무들이 조금 더 오래 버텨주기를 소망합니다. 우리가 서로의 그늘이 되어 이 긴 터널을 끝까지 걸어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내를 부축하며 걷는 이 길 위에서 나는 자주 멈춰 섭니다. 하루를 쉬게 해주고 싶었던 마음이 결과적으로 더 큰 짐이 되었을지라도, 그 마음만은 후회로 남기지 않으려 합니다. 사랑이란 늘 좋은 결과를 데려오지는 않지만, 그 '사랑하고자 했던 진심'은 끝까지 지켜야 할 가치이기 때문입니다.


에필로그:

모든 보호자에게 바치는 위로

이 글은 단순히 한 가족의 불행을 전시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병상 곁에서 조용히 무너지고 있는 모든 '보호자'들의 이름 없는 헌신을 기억하고 싶어 썼습니다.

나는 오늘도 아내라는 나무, 딸이라는 나무 아래서 하루를 살아내고 있습니다. 비록 거창한 기적은 아닐지라도, 주어진 운명에 묵묵히 순응하며 걷는 이 길 또한 주님의 뜻이라 믿습니다. 그 길 끝에 평안이 있기를, 오늘도 기도하며 발걸음을 뗍니다.

아내를 향한 참회와 사랑을 담아,

남편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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