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첫사랑 – 반세기를 돌아보며

by Pelex
(고교시절)

지금으로부터 50여 년 전, 여드름 꽃 피던 17살 고등학교 2학년 시절.
가슴 조이며 흠모하던 H라는 여학생이 있었습니다.

나는 밤잠을 설치며 가슴을 불태웠고,
화롯불보다 뜨겁게 달아오르던 그 열정은
차마 주체하기 어려웠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마치 열병에라도 걸린 듯
하루하루가 그저 그녀의 얼굴로 가득했습니다.

어느 겨울방학, 흰 눈이 흩날리던 추운 밤.
무서움도 잊은 채, 혼자 그녀의 집을 찾아가
담장 아래 조심스레 엿본 적도 있었습니다.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도둑고양이처럼 살금살금 창가 근처까지 갔지만
끝내 불러낼 용기를 내지 못하고
수십 번을 그렇게 지켜보다 돌아오곤 했습니다.

혹여 그녀 아버지에게 들킬까
가슴은 방망이질, 발걸음은 조심조심.

그렇게 내 마음은 활활 타올랐지만
결국 한 번도 고백하지 못한 채
냉가슴만 끙끙 앓으며 살아야 했습니다.

그녀 앞에서는 말문이 막히고, 정신을 잃었고
머릿속은 온통 그녀 생각뿐이었습니다.

그러니 어찌 잠이 오겠습니까.

이토록 애타는 마음을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한 채
나는 혼자 가슴을 쥐어뜯으며 지새운 밤이
얼마나 많았는지 모릅니다.

솔직히 말해, 나에게는
뭐 하나 내세울 만한 게 없었습니다.

준수한 얼굴도 아니었고,
좋은 가문도 아니었고,
공부라도 잘했던 것도 아니었죠.

그저 평범한 농사꾼 집안의 큰아들.
어린 동생 다섯에 부모님은 늘 바쁘셨고,
나는 할머니 손에 자랐습니다.

그녀를 향한 사랑은 열렬했지만,
나는 부족했고, 소심했고,
자신도, 용기도 없었습니다.

그래서였을까요.

그녀는 결국 내 군 복무 중에

결혼을 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나는 그 순간, 깨끗이 포기하고
뒤돌아설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내 길을 찾아 나섰습니다.

세월이 흐르며 그녀는 내 시야에서
점차 멀어졌고, 피안의 언덕 너머로
가물가물 사라져 갔습니다.

그런데...

어느덧 쉰을 넘긴 어느 날,
문득 그녀를 다시 한번 찾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행복한지, 궁금해졌습니다.

나는 오늘에 이르기까지
말로 다 할 수 없는 고난 속에서도
꿋꿋이 버텨온 사람이었습니다.

맨땅에 주먹을 내리치며
두 눈 부릅뜨고 살아온 날들을 떠올리며,
마침내 오랜 우여곡절 끝에
그녀를 다시 만났습니다.

하지만... 세월 앞에 장사는 없더군요.

그녀도, 나도... 시간의 풍상 속에서
많이 변해 있었습니다.

하지만 내 기억 속의 그녀는 여전히
예쁜 얼굴, 맑은 눈동자 그대로였습니다.

첫사랑이었기에, 너무도 순수했기에,
나는 아직도 그 시절의 감정을
가슴 깊이 간직하고 있습니다.

왜 그렇게도 그리워했는지,
무엇이 그렇게 내 마음을 뒤흔들었는지.

나는 지금도 그 미궁 속에서
답을 찾지 못한 채 서성입니다.

어쩌면 백 년 묵은 여우에게 홀렸던 건지도 모르죠.
어리어리 취한 듯,
정처 없이 헤매던 그때의 나를 떠올리면,
지금도 웃음이 납니다.

하지만 분명한 건,
그녀는 내 생애에서 결코 잊히지 않을
단 하나의 이름으로
가슴 깊이 새겨져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로부터 반세기가 훌쩍 넘었지만,
그 세월은 내 마음의 회한을 온전히
덮어주진 못했습니다.

그녀가 내게 했던 마지막 한마디—
그 말만은 지금도 생생합니다.

“그래도... 나는 너를 미워하지 않았어.”

그 말을 기억하며,
나는 마음속 어딘가에서
울컥하는 뜨거움을 느낍니다.

그녀는 여전히 내 가슴속
첫사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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