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느린 아이

by 송주하

"엄마!!! 나 압사 할 것 같아!!!"
올해 초등학교 3학년이 된 아들이 다급하게 하는 말입니다.

아들은 학교 수업을 마치고 방과후 수업을 듣고 태권도 학원으로 갑니다. 그러면 아들의 스케줄(?)이 끝납니다. 아침에 8시 반쯤 학교에 갑니다. 요일에 따라 차이가 조금 나긴 하지만, 오후 4시에서 6시 사이에 집으로 옵니다.

제가 일 때문에 집에 없는 날은, 한 시간정도 혼자 잘 있습니다. 물론 유튜브라는 강력한 무기 덕분이지요. 예전 같았으면 엄마를 애타게 찾았을 녀석이지만, 마인크래프트라는 프로그램에 빠진 이후로는 저를 찾지를 않습니다. 인사를 해도 눈은 텔레비젼에 가 있습니다. 혹시 엄마가 없어서 찾지는 않았냐 물어보면 '네'라는 영혼없는 짧은 대답이 돌아옵니다.

그날은 6시쯤 집으로 왔습니다. "다녀왔습니다" 큰 소리를 인사를 하고는, 옷을 갈아 입습니다. 집에서는 보통 내복을 입고 있는데, 하루가 다르게 크는 중이라 금방 타이트해집니다.
노란색 내복을 입고 나타났습니다. 아이는 내복을 입었을 때가 젤루 귀엽습니다. 엉덩이가 얼마나 탱실한지 모릅니다. 그새 또 키가 컸구나 싶기도 하고 허리가 어쩜 저렇게 가늘까 싶기도 합니다.

노란 내복 차림으로 저에게 후다닥 달려옵니다.
"엄마 엄마, 나 압사할 거 같아!!!!"
"응??"
"나 완전 압사라구"
배가 고프다는 말이었습니다. 어디선가 '아사'라는 말을 들었던 모양입니다. '아사'라는 말은 굶어 죽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친구들이 쓰는 걸 들었을 수도 있고,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말을 기억했을 수도 있습니다. 암튼 그 단어가 가진 '배고픔'에 대한 단어를 이해했다는 거겠지요.


아이는 말이 느렸습니다.

제 기억으로 4살이 되도록 제대로 된 문장을 구사하지 못했습니다. 그 전에는 간단한 단어조차 말을 하지 않아서 애를 태웠습니다. 왜 말을 하지 않는 걸까. 무던히도 애를 태우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결국 병원에 가서 언어 검사를 받아 보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특별히 도움이 되지는 않았습니다. 그냥 언어발달이 느리다 정도로만 말해줬을 뿐이니까요. 언어 발달이 느려서 데려왔는데, 언어 발달이 느리다는게 결론이니 힘이 빠지는 거지요. 더 지켜보자는 게 의사선생님의 제안이었습니다.

11월에 태어난 아이라 또래보다 늦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혼자 이해하고 있다가도, 말 잘하는 또래 아이들을 보면 괜히 심각해지기도 했습니다. 아이가 사회 적응을 잘 못하면 어떻게 하나.. 다른 아이들로부터 놀림을 받지는 않을까.. 이런저런 걱정들을 했습니다.

아들은 유치원에 가면서부터 말이 조금씩 늘었습니다. 하지만 아이의 문장력은 크게 좋은 편은 아니었습니다. 기본적인 대화가 될 뿐이고, 문장을 조리있게 말한다거나 자신의 감정을 여러가지 단어로 표현하는데는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도 감사했습니다.

말이 조금 느린 아이가 있다면, 설소대 문제를 생각해 볼 필요도 있습니다. 우리 아이도 발음이 조금 정확하지 않은편인데 원인을 알아보니, 혀 밑에 있는 근육인 설소대가 짧아서 온전한 발음이 힘든거였습니다. 자신이 하는 말을 사람들이 잘 못 알아 들으니까, 점점 자신감을 잃게 된 거지요.
그 사실을 알고 부랴부랴 병원에 가서 상담을 받았더니, 의사 선생님이 수술을 하기에는 조금 어중간하다고 하십니다. 조금 더 클때까지 지켜보자 하셔서 그냥 두기로 했습니다.


다그치지 않기로 했습니다.

" 사람은 각자의 속도가 있습니다. "

조금은 빠르게 나아가는 사람도 있을테고, 천천히 가지만 꾸준히 가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그때는 꽃이 피는 속도를 생각합니다. 개나리는 봄에 피지만, 내가 좋아하는 코스모스는 가을에 핍니다. 자신이 꽃을 틔우는 시기가 있다는 뜻입니다.

아이는 비록 말이 좀 늦기는 했지만, 튼튼하게 잘 자라고 있습니다. 아빠가 쇼파에서 자고 있으면 이불을 덮어줄 줄 알고요, 엄마와 아빠가 같이 손을 벌리면 두명의 손을 꼭 잡고 "둘다 좋아"라고 배려할 줄도 압니다. 아이만의 속도로 클 수 있도록, 있는 그대로 볼 수있도록 오늘도 노력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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