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제자, 소방토끼
시골 신규 교사라면 마주하는 상황들이 있다.
도시에 발령 난 신규 교사들은
보통 큰 학교에 발령이 나기에
업무가 비교적 적어 수업과 학급경영에 집중할 수 있는데,
작은 학교 신규 교사는
업무를 숙지하기 바빠 수업과 학급경영이 후순위로 밀리는 상황.
또, 큰 도시에서 비교적 좋은 인프라를 누리면서
배우고 싶은 것들을 자유롭게 배우고
만나고 싶은 사람들을 자유롭게 만나는데,
시골에 발령 난 신규 교사는
그렇기가 쉽지가 않은 상황.
퇴근 이후의 삶을 내가 스스로 통제하지 못하는 상황.
그러다 보니,
무력감에 빠지기가 쉽다.
내가 교사로서,
교육 전문가로서 성장할 수 있을까?
내가 스스로를 마주하며
내 시간을 나답게 잘 보낼 수 있을까?
.
.
나는 그 무력감을 타파하고 싶었다.
내가 이 시골 작은 학교에 발령이 난 것,
직장이 곧 삶과 직결되는 상황에 놓인 것,
이것이 내 인생의 ‘전환점’이 되기를 원했다.
내가 어떻게 해야
이곳에서의 시간을 잘 보낼 수 있을까?
우선 나는
내가 가진 것이 무엇인지 살폈다.
니체가 한 말,
“네 운명을 사랑하라.”
“자신을 원하라. 그러면 너 자신이 될 것이다.”
라는 말을 되새기며
선물처럼 하늘이 내게 준 재능과 능력을
마음껏 누리고자 했다.
그리고, 이곳이 어디인가?
이곳은 시골의 작은 학교.
업무는 많지만 한 학년에 한 반,
즉 동학년이 없기에
내 교육활동을 자유롭게 펼칠 수 있었다.
따라서 내가 가진 능력,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교육 활동에 녹여내며
내 삶을 즐겨보고자 다짐했다.
나는 첫 해, 6학년인 소방토끼들과 함께하는 한 해를 보냈다.
(*소방토끼: 악의 마음의 불을 끄는 토끼띠 학생들이라는 뜻으로, 학생들 스스로 학기 초에 정했다.)
사춘기에 접어드는 학생들,
그리고 꼭 사춘기 때문이 아니라
살다 보면 누구나 그렇듯
당연히 순풍만 불지 않고 예상치 못한 역풍이 와
인생의 난항을 겪기도 할 것 아닌가?
그 역경의 시기를 겪고 있는 몇몇의 학생들 역시 만났다.
내 모든 것을 주고 싶을 정도로
사랑하는 아이들이
마음이 괴롭고 무너지는 일을 자주 마주했다.
나 역시 살면서
그런 고난의 시기가 있었고,
그때에는 옆에 무조건적인 사랑을 보내는 사람이
한 명만 있어도 큰 힘이 되었음을 알았다.
그래서 나는 그 마음을 나누기로 했다.
나는 공감능력이 정말 높은 편이다.
초등학교 3학년 당시,
이산가족 상봉 영상을 보고 반에서 수업 시간에 혼자 엉엉 울었다.
살면서 누군가에게는 “왜 그렇게까지 생각해?”라는 부정적 시선의 이야기를 들은 적도 있지만, 나는 내가 참 섬세한 시선을 가졌다고 생각했다.
나는 내가 가진 이 높은 공감능력과 섬세함을 활용해 보자고 다짐했다.
그 다짐 이후
학생과 교환일기도 꾸준히 썼고, 상담도 거의 매일 했다.
지원해 줄 수 있는 프로그램은 샅샅이 찾아 신청했다.
부모님들과도 정말 많이 상담했다.
상담 기법 연수를 매주 듣고 학급에 적용하려고 애를 썼다.
모든 건,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 하나로 가능했다.
그런데 4년 차인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의 나는
모든 것들이 처음이었기에 서툴었고
아이들을 사랑하는 엄청난 마음만큼이나
온전히 아이들을 돕지는 못했던 것 같다.
그럼에도,
나는 내가 가진 것을 인지하고
그것을 이용해
아이들에게 조금이나마 실질적 도움을 주고자 했다.
그것이 아기 교사로서
삶을 대하는 태도가 정립되는
첫 번째 발걸음이었다.
나는 교대 재학 당시
댄스 동아리에서 4년간 활동했다.
춤을 추는 것을 굉장히 좋아하고,
연습하며 사람들과 소통하는 것에 큰 재미를 느꼈다.
사실 나는 이 사실을
학교에 1년 정도 숨겼는데,
그 이유는 주변 또래 교사들에게
‘특기를 밝히면 업무가 몰린다.‘
라는 무시무시한 이야기를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그러다 문득
작은 학교 운동회 행사의 장기 자랑 시간에
우리 반 인싸의 손에 이끌려
무대 위에 올라가 버리게 된다.
물론 보는 사람들의 얼굴이 화끈해지는
혈액순환을 돕는 무대를 선사했지만,
그때 느낀 것이
‘생각보다 별일이 안 일어나네?’,
‘지나 보니 너무 재밌는 추억이구나.’였다.
일어나지도 않은 일이 두려워
즐거운 기억을 만들지 못하는 내가
참 아쉬웠다.
그래서, 그 생각이 든 순간부터
반 아이들 7명, 그리고 교사인 내가 함께하는
춤 공연을 준비했다.
처음에 춤을 춰보지 않았던 남학생들은
거부 반응이 있었지만,
이내 여학생들보다 아이돌 그룹 멤버들을 잘 알게 되는 사태에 이를 정도로 춤에 빠져 들었다.
물론, 나는 업무도 해야 하고 수업도 해야 하는 교사이기에,
춤을 다 따고, 동선도 다 정리하고
특수 학생도 있었기에 안무 숙지를 돕는 것은
조금 어려움이 있기는 했다.
하지만 그 해 내가 한 교육 중
춤 공연 준비는
가장 효과적인 교육이 되었다.
자책과 우울감이 높았던 학생에게는
아이돌이라는 꿈을 낳게 해 주었고,
특수 학생이 춤을 잘 춘다는 친구들의 인정을 받는 경험도 만들었다.
또한 다국적 아이돌 그룹 노래에 맞춰 춤을 추었는데, 그 그룹 내에서 중국 멤버와 한국 멤버가 잘 지내는 모습을 학생들이 보게 되면서
다국적 출신의 우리 반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기도 했다.
지식 전달만이 교육적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
교사의 능력과 흥미가
하나의 교육으로 뻗어나갈 수 있다는 것을 경험하였다.
여기까지 첫 해 때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파악하고 나누며
교육 전문가로서 성장하는 과정,
내가 나로서 시간을 유익하게 보내는 과정을
기록해 보았다.
물론 이듬해와 다다음 해에는
더 큰 나눔과 성장이 있었고,
그렇게 될 수 있었던 것은
첫 해 때
“무력함을 타파하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해보자.”
는 태도와 마음가짐 덕분이었던 것 같다.
혹시 이 글을 읽고 있는
시골 작은 학교에 발령 나 무력감을 느끼는 신규교사에게,
나처럼 무력감을 극복하기 위해
스스로가 가진 것을 파악하고 나누어보길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