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함께 사는 연습
언제부터인가
나는 항상 내가 어려웠다.
다른 사람들은 따뜻한 시선으로
정말 살뜰히 보살피려고 노력하지만
나 자신에겐 항상 엄격하고 가혹했다.
내가 무너지고, 지치고, 힘들어도 말이다.
그래서인지
나는 그동안
나 자신을 돌보지 못했다.
모르겠다.
‘나 자신을 돌본다는 것’은 무엇일까?
내가 이 일에 서툴다는 것은 알겠는데
대체 어디서부터 어떻게
나 자신을 돌보아야 하는지 모르겠다.
그러니까 이제
운동을 가기 싫어하는 나,
누워서 늘어지게 자고 싶어 하는 나,
누군가에게 상처를 받으면 미워하고 싶은 나,
내가 먹고 싶은 것을 마음껏 선택하고 싶은 나,
약속에 나가기 싫은 나, 등
몰랐던 나라는 존재에 대해서 인지하기는 했으나
대체 어떻게?
어떻게 친해져야 하는 건지,
어떻게 다뤄야 하는 건지.
어색하고 두렵다는 말이다.
그때 문득 생각이 났다.
상담사 선생님과의 대화 말이다.
상담사 선생님께서는
나 자신을 인정하고 친해지는 방법에 대해서
’내 기분이 어떤지 관찰하고, 어떻게 하면 편해질 수 있는지 하나씩 생각’해보라고 하셨다.
내가 늘 학생들의 마음을 관찰하고,
편해질 수 있도록 돕듯이 말이다.
그때 한 번 생각해 보았다.
만약, 솔직한 마음으로 운동을 가기 싫은 ‘나’가
우리 반 학생이라면?
그 학생의 이름을 햇살이라고 해보자.
”햇살아, 왜 기분이 좋지 않아 보일까? 무슨 일이 있니?”
“선생님, 저는 사실 운동이 가기 싫어요.”
“아이고 그렇구나, 햇살이가 왜 운동이 가기 싫을까?”
“학교에서 일도 많고, 사춘기인 학생들에게 계속해서 에너지가 쓰이는데 운동을 하러 가면 웨이트도 쉬지 않고 50분을 해야 하고요. 유산소도 30분 이상 해야 해요. 건강해지는 건 좋은데 저 사실 힘이 들어요.”
“아이고, 그렇구나. 정말 힘이 들만 하네. 선생님이어도 그건 에너지가 소진되어서 못할 것 같아. 그럼 가지 않는 것이 어떨까? 오늘만 쉬는 거야.”
“선생님, 근데 저는요. 쉬는 건 이상하게 죄책감이 들어요. 집에만 있는 건 마음이 불편해서 몸도 편하지 않고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음, 그러면 이렇게 해보는 건 어떨까? 웨이트는 20분만 하고 유산소도 땀이 살짝 날 정도로만 하는 거야. 이 정도만 하면 아예 안 하는 것보다 몸도 마음도 편안해지지 않을까? 원래 하던 것처럼 힘들지도 않을 테고.”
“와 선생님, 좋은 것 같아요. 그럼 저 조금만 하고 올게요.”
여기까지 사고회로가 미치고 나자,
순간 멍해졌다.
뭐야?
평소 같으면
이것도 못하면 어떻게 해?
해 내야지, 해야 돼. 선택지는 이것밖에 없다며
나 자신을 닦달했을 텐데
그리고 할 때 제대로 하라며
타협점도 찾지 않았을 텐데,
학생이라고 생각하니
절대 함부로 할 수 없었다.
이상했다.
오랜만에, 아니
처음 느껴보는 따뜻함이었다.
무뚝뚝한 자녀가 부모님에게 처음 사랑을 표현하듯,
어색했다.
그리고 그것이 나쁘지 않았다.
나는 서둘러
햇살이를 다시 데려오기로 했다.
이번에는,
상처를 받았는데도 다른 사람의 기분을 더 생각해서
끝내 자기편이 되지 못했던 햇살이를 데려왔다.
“햇살아 무슨 일 있니? 표정이 어두워 보이네.”
“선생님 사실은요, 제 친구가 저에 대해서 함부로 이야기해서 너무 속상해요.
그런데, 사실 너무 속상했는데 제가 똑같이 뭐라고 하면 친구도 속상할까 봐 무어라 말하지 못했어요.”
“아이고 햇살이가 많이 속상했겠네. 그 친구가 뭐라고 해서 햇살이가 속상했을까?”
“친구가 제가 쓸데없는 걱정이 많대요. 왜 맨날 심각하냐고 했어요. 사람들은 다 원래 힘들대요. 저만 힘든 게 아니라고 했어요.”
“햇살아, 사람들이 다 힘들다고 해서 햇살이가 힘든 게 가벼워지는 게 아니야. 햇살이 인생에서는 햇살이가 가장 중요해. 그래서 햇살이가 힘든 것이 햇살이에게는 가장 무겁고 중요한 거야.
그리고, 쓸데없는 걱정이라는 건 없어. 햇살이가 생각이 많은 건, 그만큼 섬세하고 진중한 성격이라는 거야. 햇살이의 그런 성격은 훗날 다른 사람이 모르는 것을 알아차리는 섬세함이 될 거야.”
“선생님 감사해요. 저 사실 친구가 그렇게 이야기했는데도 아무 말도 못 한 이유 중 다른 하나가, 사실 제가 부족해서 그 친구가 그렇게 이야기했다고 생각했거든요. 내가 부족하기 때문에, 그 친구가 그렇게 이야기한 건 잘못이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선생님 말씀 들으니까 그게 아닌 것 같아요.”
“(쓰다 보니 화남•••) 햇살아, 햇살이는 결코 부족하지 않아. 충분하고 완전해서 그 에너지가 오히려 주위에 흘러넘치지. 누군가를 쉽게 판단하고 평가하는 사람의 오만함이 잘못인 거야.
사람들의 성격은 다양하고 사람들이 살아온 환경 역시 천차만별이야. 그 사람이 그렇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은 살아온 것들에게서 다 이유가 있는 거야. 그런 것들을 알지도 못하면서 쉽게 판단하고 평가하는 것은 옳지 않아.
선생님은 햇살이에게 항상 배우는 것이 많은걸? 그런 가벼운 평가에 흔들리지 말고, 햇살이만의 빛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
“네 선생님. 다음부터는 저한테서 문제를 찾지 말고 그 친구에게 서운하다고 단호하게 이야기할 수 있도록 노력해 볼게요. 사실, 제가 솔직하게 이야기함으로써 관계가 틀어질까 봐 걱정이 되긴 하는데 이제 단호하게 이야기해야겠다는 용기가 생겼어요.”
“좋아. 햇살이가 말한 대로 실제로 이야기할 때에는 조금 어렵다고 느낄 수 있어. 선생님은 햇살이가 어떤 모습이든 언제나 곁에 있어줄 거야. 그러니까 걱정 말고, 햇살이가 햇살이를 지키는 방법을 주저 없이 선택했으면 좋겠다.”
이상한 마음이 들었다.
말로 형용하기 어려웠다.
발령이 나고 나서부터
내가 아이들에게 ‘선생님’이라는 존재가 되었을 때부터
나에게도 나 같은 선생님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의 기분을 세심하게 살펴주고,
기분이 나아질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하고,
힘든 일이 있으면 해결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항상 사랑을 표현하는 선생님.
그런데,
왜 나는 학생들에게는 그런 선생님이면서
정작 내가 내 자신에게
그런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은 하지 못한 걸까?
나는 내가 아픈 것도 제일 먼저 알고,
행복한 것도 제일 먼저 안다.
내가 나인 건 내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꽤 마음에 들어] 책, 시인의 말 부분)
시인의 말이 맞다.
세상에서 제일 나 자신을 잘 아는 사람
나 자신을 가장 사랑할 수 있는 사람
항상 내 곁에 있어줄 수 있는 사람
‘나’였다.
타인을 나보다도 소중히 여겼던 내가,
그리고 학생을 누구보다도 아끼고 사랑하는 내가
나 자신을 내가 아닌 타자로서 대하니
아이러니하게도
평생 느끼지 못했던 따뜻함을 느꼈다.
사실 조금 슬프긴 하다.
내가 아닌 학생이라고 생각하니,
나 자신을 돌보는 일이 조금은 쉽게 느껴진 것이 말이다.
그러나 어쩔 수 없는 것이 아닐까?
내가 살아온 환경에서 나를 지키는 것은
나 자신을 통제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일단은,
나는 나의 가장 솔직한 내 모습인 ‘햇살’이를
우리 반에 전학시키려고 한다.
우리 반 학생을 따뜻하게 보살피듯,
매일 기분도 살피고,
이유 없이 그리고 대가 없이 사랑하다 보면
나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 익숙해지지 않을까?
그동안 힘들었을 햇살이를
꼭 안아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