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eunice 유니스 Apr 28. 2022

양장점과 기성복

우리 아버지는 평균 남성 신체 사이즈보다

키가 좀 작으시고,

목은 짧고 굵은 편이시며,

팔과 다리 길이도 짧으시다.


어린 시절 우리 아버지는

양장점에서 양복을 맞춰 입으시곤 했는데

신체 사이즈 때문은 아니고

그 당시에는 기성복 시장이 아직 대중화되기 전 시대라

대부분의 샐러리맨들은 다들 양장점을 이용하던 때였다.


양장점에서 새로 맞춰온 양복은

아버지에게 딱 맞아 보기 좋았었다.


그런데 1980년대 후반부터

대기업이 기성복 시장에 뛰어들면서

양장점은 존폐위기를 맞게 되었다.


양장점에 가서 사이즈를 재고 며칠을 기다렸다가 받아와야 하는 수고로움 대신

이제는 손쉽게 당일 구매가 가능하고,

더욱이 저렴한 가격은 서민들의 발걸음을 돌리기에 충분했다.


우리 아버지도 어느 날부턴가 기성복을 입으시기 시작하셨다.


그런데 영 옷태가 나지 않았다.


재봉틀을 사용할 수 있었던 나는

그때부터 아버지의 바짓단을 수선해 드리곤 했다.


바지 길이는 수선 가능했지만,

어깨와 소매 길이 수선은 내 실력으로는 할 수 없었기에

아버지의 상의는 항상 어딘가가 어정쩡한 모습이었다.


산업화, 분업화로 인해

사람들도 규격화된 제도와 틀에 맞춰 사느라

항상 어정쩡한 모습들이다.


기성복처럼 이미 규격화되어 대량 생산된 옷,

내 몸에 딱 맞지도 않는 옷에 맞춰 사느라

다들 불편해 보인다.


규격화된 교실, 규격화된 사무실, 규격화된 아파트...


결혼식장도 장례식장도 모두 규격화되어있다.


죽어서도 기성복으로 나온 수의를 입고

어정쩡한 모습으로 누워있을 생각을 하니까

참 거시기하다.




* 이미지 출처 : https://m.blog.naver.com/PostView.naver?blogId=neo7030&logNo=221862013586&proxyReferer=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 꽃으로도 때리지 말아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